[원숭이를 사로잡는 방법] 
 
재주가 많기로 유명한 원숭이를 잡을 때 사람들은 나무상자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채우고, 입구는 원숭이 손 하나가 겨우 드나들 정도의 구멍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리고 자리를 떠나 그 상자 주위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맛있는 견과류 냄새를 맡은 원숭이들이 몰려와 이 상자 안에 무슨 마술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탐색을 하다가 한 마리의 원숭이가 구멍에 손을 넣고 견과류를 움켜쥐면 그는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다가가서 원숭이들이 도망을 친 자리에 홀로 남은 원숭이를 포획한다고 합니다. 
 
손에 움켜쥔 견과류만 내려놓으면 만사가 오케인데, 그 집착심 하나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 원숭이의 다음은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견해나 생각, 또는 대상이나, 물질 직책에 대한 집착 등이 자기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올가미가 되는 것인데, 그 올가미는 바로 남이 내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서 그것에 속박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견과류 한주먹만 내려놓으면 온 숲이 바로 나의 동산이요, 쉼터이며, 먹을 것이 가득한 낙원이요, 보배 창고인데 그 한주먹의 견과류 때문에 자유를 잃고, 창살 아닌 창살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합니다. 
 
인간이 낙원을 잃어버림도 한순간의 쾌락과 작은 이익 앞에서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이 그 원인이 된다 할 것이니 손아귀의 몇 개 견과류와 온 우주를 바꾼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버린 사람은 나 이외 전체와의 조화를 상실하게 되지만, 물방울이 저 스스로를 고집하지 않아서 커다란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를 내려놓는 이는 대우주의 근본정신과 하나로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내려놓으면 만 가지가 다 내 벗이 되고, 하나에 집착하면 만 가지가 내게 등을 돌리니 들고 놓는 한자리에 행복과 불행의 단초가 있습니다. 내려놓는 순간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기고, 감사하는 순간 행복이라는 큰 선물이 주어집니다.  
 
다만 선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해월 스님- 
 

저는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활동을 하면서 원숭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살았습니다.

나무 위에 지어진 원숭이 집도 거기서 처음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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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마음가짐은 하늘이 푸르고 햇빛이 밝은 것과 같이 하여

남들이 모르게 해서는 안되며,

군자의 재화는 구슬이 숨어 있고 진주가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이 하여

남들이 쉬 알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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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변호사 통해 메시지 전달.."하나 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

'박근혜 자필 편지' 공개하는 유영하 변호사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4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zjin@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은 4일 "나라가 매우 어렵다. 서로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메우기 힘든 간극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이날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5년 등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유영하 변호사가 보여준 박근혜 전 대통령 친필 서한

 

 

훈구와 사림


훈구(勳舊):

 

세조 집권 시기에 다섯차례의 공신 책봉으로 그의 가족 및 인척들이 대거 정계로 진출하였는데, 이들은 세조 대 이래로 정권을 독점하고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면서 지배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들을 흔히 훈구파(勳舊派)`라고 부릅니다 훈구파 가운데에서도 한명회, 신숙주, 구치관 등은 당대 최고의 정치권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사림(士林):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의리로써 배격하고 초야에 묻혀 성리학에 몰두했던 이들이 서서히 지방의 지주층으로 성장해 가면서 다시 일어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길재의 학통을 이어받은 이들은 성종대에 이르러 먼저 영남 일대를 배경으로 크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들을 흔히 `사림파(士林派)`라고 부릅니다 .



간단히 말해 훈구란 정치 지배세력이며 사림은 야권또는 재야 세력이라 보면 됩니다

 

그 시작은 훈구는 세조(수양대군)의 왕위찬탈게획에 가담한 정치 세력이 조선조 오백년동안 지배계급으로 지탱해온 대규모 정치 집단 이며 사림은 정치 지배권에서 밀려난 지방 지식계층으로 이루어진집단 입니다



사림이 한일



사림은 대부분이 조선의 건국에 협력하지 않고 지방에 내려간 학자들로, 중소지주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훈구세력과는 달리 생업에 힘쓰면서 학문을 해야 했기 때문에, 훈구 세력에 비해 경제적 기반이 취약했다.



16세기이후로 농사직설과 같은 농서가 간행되고, 목화와 약초 등의 재배가 널리 퍼지면서, 농산물을 사고 파는 장시가 발달하여 전국적으로 형성되었다.

또한 저수지와 같은 농업 기반시설 확충으로 남부 일부 지역에만 보급 되었던 새로운 중국의 논농사 기술인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모작이 널리 퍼지면서 농업생산성이 향상 향촌에 살면서 중소 지주로서 학문과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유향소를 구성하여 지방의 백성들을 교화하고 수령의 자문에 응하는 등 향촌의 행정을 도왔다.

사림은 향약을 보급하는 데에도 힘썼다. 계의 운영방식을 향약 속에 흡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 안정에도 힘썼다.


조선 붕당정치의 시작은 세자책봉도 하지 못한채 서거한 명종 이후 선조가 급작스럽게 즉위하면서 외척에 의한 척신정치가 사라지고 사림(士林)이 정계에 대거 진출하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진 붕당은 이후 여러가지 정치 사안에 대립하면서 동인은 북인과 남인, 북인은 다시 소북과 대북으로 나눠지게 되며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러다 인조 반정 이후 대북이 완전 몰락하고 서인과 남인 소북의 3당 연립 정권이 유지된다. 붕당정치 초기에는 붕당간 적절한 견제와 조화가 이루어 졌으나 시간이 흐르고 광해군, 인조, 효종에 걸쳐 여러차레 판국이 바뀌는 환국(換局)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는 오늘날로 말하며 정당 정권의 교체라 할 수 있다.) 일당 독재의 형태로 굳어지게 되고 이로인해 붕당간 치열한 권력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숙종때 이르러서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자 탕평책이라 하여 붕당간의 정쟁을 타파하고자 하는 정책이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인 즉 노론과 소론이 조선 정권의 중심이 된다.

 

영조 초기에는 소론이 정권을 잡고 있지만 영조 후기에는 노론이 정국을 주도하게 된다. 영조는 탕평책을 썼으나 노론 중심의 외척을 중신에 배치함으로 척신정치의 재도입을 유발하고 이 들은 사도세자를 중심으로 다시 북당 남당으로 나뉘어 대치하게 된다. 이 들은 정조의 즉위까지 끝없이 대립하며 사도세자의 사사를 일으킨 남당은 정조를 세손때부터 끝없이 위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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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종~명종까지의 당파:

 

대윤:장경왕후의 가족 윤임이 만든 당파

 

소윤: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만든 당파

 

2.선조~광해군까지의 당파:

 

동인:"임진왜란이 일어난다"라고 주장한 당파

 

서인:"임진왜란이 안 일어난다"라고 주장한 당파

 

대북파:광해군을 따르는 당파

 

소북파:영창대군을 따르는 당파

 

3.현종~숙종때의 당파:

 

남인:우두머리의 집이 남쪽에있는 당파(장희빈편을 듬)--->남인 패

 

서인:우두머리의 집이 서쪽에 있는 당파(인현왕후편을 듬) --->서인 승

 

4:경종~영조때의 당파

 

노론:old한 당파

 

소론:new한 당파

 

5.정조~헌종때의 당파

 

시파: 천주교를 믿는 당파

 

벽파: 유교를 믿는 당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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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남학파

 

영남 지방은 지리가 아름답고, 인심이 순후하고 전통적으로 학문을 좋아해 예로부터 장상(將相)·공경(公卿)·문장·덕행·절의로 유명한 이들과 선도(仙道)·불도(佛道)·도교(道敎)에 정통한 이들이 많이 나와서 세인들이 영남을 인재의 고장이라 불러 왔다. 그러한 탓인지 영남 지방에는 조선조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여러 학맥이 생겨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선 초기의 김종직(金宗直)을 영수로 하는 영학파, 중기의 조식(曺植)을 중심으로 하는 남명학파, 이황(李滉)을 종주로 하는 퇴계학파, 그리고 장현광(張顯光)을 주축으로 하는 여헌학파라 하겠다.



영남학파의 학맥은 정몽주(鄭夢周)에서 비롯해 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를 거쳐 김종직에로 계승된다. 김종직은 도학과 문학으로 유명해 당대 유학의 조종이 되었다. 그는 문하에 많은 제자를 두었다. 저명한 학자로는 현풍의 김굉필(金宏弼)·곽승화(郭承華), 함양의 정여창(鄭汝昌)·유호인(兪好仁)·표연말(表沿沫), 경주의 손중돈(孫仲暾), 선산의 강백진(康伯珍), 성주의 김맹성(金孟性), 안동의 이종준(李宗準), 청도의 김일손(金馹孫), 밀양의 박한주(朴漢柱) 등이다.

 

이 학파의 특징은 조선 초기의 학문적 경향이 그러하였듯이 여말의 영향을 받아 유학의 요소 중에서 한편으로는 주로 실제적인 정치·경제·법률·문장을 학문의 대상으로 하는 한당류(漢唐類)의 학풍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성리학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송학류(宋學類)의 학풍을 혼합한 것이었다.

 

이 학파에서 정여창과 김굉필은 특히 도학에 정진하여 후세 한국 성리학이 발전할 수 있는 학문적 토양을 조성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정여창은 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3년 동안 나오지 않고 오경(五經)을 연구해 그 심오한 뜻을 탐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가장 치중하였고, 궁리(窮理)함을 위주로 하였다. 그리하여 『중용』의 주자장구(朱子章句) 중에서 ‘기이성형, 이역부언(氣以成形, 理亦賦焉)’의 설을 따르지 않고 ‘안유후기지이호(安有後氣之理乎)’라 하여 기(氣)에 뒤지는 이(理)가 있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뒤에 퇴계학파에서 주리설(主理說)을 주장하는 단서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김굉필은 존양(存養)을 학문의 목표로 삼고 그것에 도달하는 수단으로는 성경(誠敬)을 주로 하였다. 이것은 당시 유학에서 새로운 학문 경향이었다. 그의 학통은 조광조(趙光祖)·김안국(金安國)에게로 계승되었고, 조광조의 학통은 다시 성수침(成守琛)·성혼(成渾) 부자에게 이어졌으며, 김안국의 학통은 김인후(金麟厚)에게 전수되었다.

 

또 이언적(李彦迪)의 스승이 김종직의 제자 손중돈이었으니 동방의 사현(四賢: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은 이 영학파의 이학자(理學者)와 그의 후예들이었다. 그런데 이 영학파는 연산조에 이르러 훈구파와의 반목 갈등으로 위세가 침몰되었는데, 학술·문장·절의로 정계와 재야에서 대활약을 했던 당대의 유일한 학파였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영남우도(嶺南右道)를 중심으로 조식의 학식과 덕행을 존숭하고 추종하는 학파가 새로이 형성되었다. 이를 남명학파라 하였다. 이 학파의 저명한 인물로는 오건(吳健)·김우옹(金宇?)·정구(鄭逑)·최영경(崔永慶)·김효원(金孝元)·곽재우(郭再祐)·정인홍(鄭仁弘)·정탁(鄭琢)·하항(河沆)·하진(河?) 등을 들 수 있다.

 

이 학파의 특징은 반궁체험(反窮體驗)·지경거의(持敬居義)·충신진덕(忠信進德)·독행수도(篤行修道)라 하겠다. 천길 절벽 같은 기상을 가진 조식은 ‘경의(敬義)’ 두 글자에 힘을 쏟아 공리공담을 배척하고 실천궁행함으로써 학문과 덕행을 쌓아 갔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의 학덕에 영향을 받아 기절(氣節)과 의리를 숭상하고 추종하였다.

 

오건은 자질이 순후하고 기상이 홍대하며 의연하고 효행이 타인의 모범이 되었다. 학식에 있어서는 『대학』과 『중용』에 밝아 이황도 경탄하였다. 최영경의 청백하고 의로운 절개는 세인을 감복시켰다. 그는 의리가 아니면 한 개의 터럭도 취하지 않았다.

 

김우옹은 당대 제일의 강관(講官)으로 알려졌으며 ‘사무사(思無邪)’·‘무불경(毋不敬)’·‘무자기(毋自欺)’·‘신기독(愼其獨)’의 네 구를 진학의 지표로 삼았다. 정구는 경학에 밝았으며 특히 예학에 정통하였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정유재란 때에 공이 크며, 정탁은 경사(經史)·천문·지리·병가에 정통하였다. 이들 중에서 김우옹·정구·정탁은 이황의 문하에도 출입했던 학자들이다.

 

같은 시기에 영남 좌도(嶺南左道)에서는 이황의 덕행을 숭모하고 그의 학문 사상을 추종하는 유파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퇴계학파라 하였다. 특히, 이 학파는 기호학파(畿湖學派)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 영남학파로서 이황에게 수학해 도학·문장·덕행·사업으로 일세의 공명이 된 자가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저명한 인물을 약술하면 조목(趙穆)·기대승(奇大升)·김성일(金誠一)·유성룡(柳成龍)·남치리(南致利)·이덕홍(李德弘)·황준량(黃俊良)·권호문(權好文)·김륵(金?)·홍가신(洪可臣)·정사성(鄭士誠)·김사원(金士元)·유중엄(柳仲淹)·조호맹(曺好孟)·박광전(朴光前) 등의 퇴계문도들과 정경세(鄭經世)·허목(許穆)·이현일(李玄逸)·이재(李栽)·이상정(李象靖)·유치명(柳致明)·김흥락(金興洛)·이진상(李震相)·곽종석(郭鍾錫)·김황(金榥) 등의 사숙들을 들 수 있다.

 

이 학파는 이황을 ‘동방의 주부자(朱夫子)’라 칭하고 그의 철학 사상 중에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사칠이기분대설(四七理氣分對說), 그리고 물격설(物格說)을 지지·옹호하다가 마침내는 주리설로 발전하였다. 이황의 철학은 원래 주희(朱熹)의 이기이원론에 근거하고 있다. 주희에 따르면,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질 수도 없는 것이고(不相離), 또한 서로 섞일 수도 없는 것(不相雜)이다. 그런데 이황은 이와 기를 서로 섞일 수 없는 것, 다시 말하면 이물(二物)이라는 견지에서 이는 이일 뿐 결코 기가 아니며, 기는 기일 뿐 결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理自理, 氣自氣).

 

주희는 이와 기의 작용에 있어서 기에는 응결 조작 능력이 있지만 이에는 정의조작(情意造作)이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황은 이와 기에 똑같이 실질적 작용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이를 순전히 추상적 개념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를 사물(死物)로 보지 않고, 태극에 동정(動靜)이 있다는 것은 태극이 스스로 동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이황의 이발이동(理發理動)의 관념을 보게 된다.

 

이황은 또 가치론상으로 이에는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기에는 상대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서로 간에 가치의 차등을 두었다. 때문에 이황은 기대승과의 사칠논변(四七論辨)에서 “사단(四端: 惻隱·羞惡·辭讓·是非)은 이가 발하면서 기가 따르는 것이고(理發而氣隨之), 칠정(七情: 喜怒哀懼愛惡欲)은 기가 발하면서 이가 타는 것(氣發而理乘之)”이라 단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이(李珥)는 이황의 이기호발설과 사칠이기분대설이 논리적으로 모순된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의 설에 의하면, 이와 기는 이물(二物)도 아니요 일물(一物)도 아니요, 다만 하나이면서 둘이요(一而二) 둘이면서 하나인 것(二而一)으로서 일체양면적(一體兩面的) 관계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또,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은 이이므로, 기발이승(氣發理乘)은 가하나 이발기수(理發氣隨)는 불가하다고 이를 부인하였다.

 

그리고 사단칠정에 있어서 사단은 칠정을 포함할 수 없지만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단은 칠정 중에서 선한 부분만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양분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보았다. 이이는 이와 기의 불상잡(不相雜)보다는 그 불상리(不相離)의 관계성을 중요시하였고, 이는 기에 내재한 존재자로서 활동성이 없는 정물(靜物), 현실적이 아닌 추상적·사유적 표상일 뿐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이기심성론에 대해 이황과 이이 사이에 견해의 차이를 보이자 이이를 ‘동방의 대현’이라고 칭송하는 기호학자들은 율곡설을 옹호하면서 영남학자들과 논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퇴계학파의 이현일은 이황의 사단칠정설은 백세를 기다려도 불혹(不惑)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이이의 그것은 의리상으로 불명한 것이라고 논박하였다. 그의 설은 사단이 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선불선(善不善)의 견지에서 볼 때 사단은 선일변이요 칠정은 선악을 겸비하고 있으므로 분대하여 불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의 아들인 이재는 이발설(理發說)의 합리성을 역설한 나머지 기의 작용을 기다리지 않고 이만으로도 일용행사의 체용(體用)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의 제자 이상정에 이르러서는 이가 단순히 무위무력(無爲無力)한 정지체(靜止體)가 아니라 이 자체로써 능히 발위운용(發爲運用)할 수 있는 활물(活物)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다시 유치명에 이르러서는 이에 능동능정(能動能靜)하는 신용(神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의 자발적 동정으로부터 음양오행의 기가 생출한다고 주창하는 동시에, 이는 우주의 주체이며 마음의 본체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렇게 발전한 이의 개념이 이진상에 이르러서는 더욱 확충되어 이기호발설이 드디어 주리설로 변환하게 되었다. 특히, 이진상은 『이학종요(理學綜要)』와 그 밖의 논설에서 이단주기(異端主氣)의 그릇됨을 역설하고 성현주리(聖賢主理)의 참됨을 주창해 배우는 이로 하여금 주리설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깨우치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

 

당시 학계에서 이기사칠논변 외에 논제의 대상이 된 것이 『대학』의 격물(格物)·물격(物格)과 주자주(朱子註)의 현토 문제였다. 이는 인식론상의 문제인데,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간의 논쟁점은 물격에 대한 주희의 주석 ‘물리지극처무부도(物理之極處無不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현토에서는 대체로 율곡학파는 ‘물리지극처(物理之極處)’를 주격(主格)으로 보는 데 반해 퇴계학파는 처소격(處所格)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율곡학파는 물리(物理)가 극처(極處)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본 데 대해, 퇴계학파는 물리의 극처가 나의 마음(吾心)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보았다. 이 논변은 정경세와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과 곽종석 사이에서 특히 격론하였다.

 

영남의 다른 한 학파는 장현광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헌학파다. 장현광은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배척하고 기발이본설(氣發理本說)을 내어 이를 만대불역의 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와 기를 이물이본(二物二本)이 아니라고 보고 다만 서로 체와 용이 될 뿐이라고 했으며, 따라서 사단과 칠정에 있어서 사단도 정인 이상 이발기발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의심이 가는 것이라 하였다.

 

이 학파에 속하는 저명한 인물로는 김응조(金應祖)·전식(全湜)·유진(柳袗)·조임도(趙任道)·노형필(盧亨弼)·신적도(申適道)·정극후(鄭克後)·선우협(鮮于浹)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장현광은 평소 퇴계학파인 정구·정경세와 교유했을 뿐 아니라 퇴계학을 묵수하였다. 또한, 그의 문도들 중에서도 장현광의 학설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퇴계학설을 수용하면서 스승의 설도 존중하는 경향이었다. 따라서 거시적 견지에서 보면 여헌학파는 퇴계학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초기 김종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영남학파는 당대의 사림을 대표한 학파로서 학계·정계·문학 분야에서 혁혁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때는 훈구파와의 반목으로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지만 그 도학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한 갈래는 조광조를 통해 기호 지방으로 전해졌고, 다른 한 갈래는 이언적을 거쳐 이황·조식으로 전승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황은 영남좌도에서, 그리고 조식은 영남우도에서 영남학파의 영수로 추앙 받아 많은 문도를 거느리면서 저명한 학자들을 배출시켰다. 이황이 조식을 경우(敬友)로 여겼듯이 조식도 이황을 외우(畏友)로 대해 조식의 문도들이 이황의 문하에 출입했고, 이황의 문도들이 조식의 문도와 교유하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였다. 한때 정인홍 사건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부덕의 소치로 묻어 버리고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화합하여 친목을 더해 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식학파는 그 학맥이 쇠잔해지고 퇴계학파는 그 학맥이 날로 성해지면서 우도·좌도의 구별이 흐려지고 영남의 학자들은 퇴계학파로 흡수되어 급기야는 퇴계학파가 영남학파의 대명사로 바뀌었던 것이다. 영남학파를 계승하면서 성리학상으로 계승·발전시킨 학맥은 김성일(金誠一)의 문맥을 꼽을 수 있다.(시치)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개소 1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2017년 인권상담 네트워크 제2차 현안발표회 HIV감염인의 인권 “에이즈, 터놓고 말해요”의 행사가 091419:00부터 인권교육센타에서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 되고 있었다.

평소 뒷자리를 선호하던 나는 그날은 앞자리에 앉아 비교적 생생하게 교육내용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훌륭한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김지영 강사님은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관심결핍증으로도 불리는 에이즈에 관하여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셔서 귀에 속속 들어왔다.

국내의 한 설문조사에서 “~ 과는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97%라는 것은 우리사회가 에이즈 감염환자를 얼마나 혐오하고 소외시키며 부정적으로 보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에이즈는 나와는 무관하며 멀리할 대상으로 생각하며 불치병, 무서운 병, 도덕적 지탄, 등의 어휘를 연상하면서 동성애자가 걸리는 천형으로 배척의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 에이즈 누적 감염인 수는 15,000여명으로 본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발견하지 못한 감염인 수가 최소 3배 많게는 10배로 추정한다고 하니 실로 심각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관련 신약의 개발보급으로 에이즈 환자 신규발생 수나 사망자 수가 감소하는 것이 세계적인 통계치 임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정반대로 국내 감염인수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뿐만 아니라 연령별 발생현황을 살펴보니 20대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재고할 문제라 생각한다.

 

차제에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고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에이즈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치명적이지 않다. 약만 잘 복용하여도 증상의 악화를 차단할 수가 있다. 또한 선제적 예방조치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에이즈 감염인 수의 감소는 시간문제라는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에이즈의 감염원은 혈액, 정액, 질 분비액, 모유의 순이다. 이러한 감염원은 성 접촉에 기인한 발생이 99.3%라고 한다. 우리는 다시금 성문화 전반을 통찰하고 예방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원인이든지 간에 일단 감염된 에이즈감염 인에 대한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우리는 성한 사람도, 어떤 병에 걸린 사람도 모두가 소중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오히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병약한 자국민을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의 확실한 구축이 절실하고 그것이 바로 국가의 책무인 것이다.

 

 

이어서 HIV/AIDS 감염인 탄체 러브포원 박광서 강사님께서 감염인의 인권침해 사례를 실증적으로 진지하게 알려 주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육생들의 시선은 빛이 났다. 에이즈에 관하여 너무나도 무지했던 사항들을 오늘의 열강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었다는 일종의 희열(喜悅)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이 연결 되었다.

나는 아프리카 봉사활동 중 정말로 궁금했던 사항, 즉 가위나 면도기 등으로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상세한 답변에 고무되어 많은 질문과 응답이 이어졌다.

 

교육은 21시까지 2시간의 예정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45분이 초과된 2145분에야 마무리 되었다.

강사의 일방적 교육이 아닌 강사와 교육생이 혼연일체가 된 열정 그 자체인 교육현장을 오랜만에 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오늘의 에이즈교육에 대한 만족감이 철철 넘쳐흘렀다.()

 

 

“청소년도 인권은 있다.

 

2017.08.26. 인권영화상영 마지막 날이다.

영화관 입구에 들어서니 준비 점검 차 미리 오신 권혁장 소장님과 참관한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며 그 누구도 차별 없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유쾌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아 진중(鎭重)모드로 스크린에 집중했다.

 

옴니버스 영화의 첫 편은 “사람이 되어라”로 만화가 박재동 감독의 작품으로 입시위주 및 경쟁교육을 비판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전인교육에서 멀어진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시사점은 던져 주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 영화는 “릴레이”로 “푸른소금” “살벌한 로맨스” 등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의 작품이다. 여고생이 선생님 몰래 아기를 학교에 데려가 친구들과 함께 돌보는 미혼모의 애절한 사연을 다루는 영화로 학생 희수역을 박보영이 데뷔작답게 열연했다.

학교는 사안을 비겁하게 회피하지 말고 전면에 서서 보다 진지하게 미혼모의 아픔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마지막 영화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로 “여고괴담4”로 유명한 최익환 감독의 작품으로 정예녹, 박지수, 박진수가 출연하였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지수와 그의 친구들이 기껏해야 떡볶이를 먹고 싶은 작은 바람을 가졌을 뿐이다. 학교 앞 분식점을 드나드는 소소한 행복감으로 학교에 다니는 여고생들의 일상은 학교가 성적향상이라는 피상적 목적으로 학교 교문을 폐쇄하는 조치가 내리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은 욕망은 더욱 간절해진다.

학생들이 “학교를 위한 조치입니까? 우리들을 위한 조치입니까?”라고 항변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으로 마음에 다가 왔다.

 

오늘 상영된 영화의 공통주제는 청소년 인권이 차별 받는 것이다.

마치 공부벌레처럼 또는 공부하는 기계처럼 부단하게 공부해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부당하게 차별 받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각자 다른 개성은 무시 되고 오직 획일적인 입시경쟁의 틀 속에서 당연히 누릴 인권이 외면 받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정녕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과 동법 제11조 평등권은 왜? 청소년들에게는 작아진다는 말인가?

 

 

오늘도 영화 상영 후 후속행사가 별미였다.

 

대구 중구에 위치한 사단법인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팀에서 영화에서 인권침해와 관련된 키워드를 미리 나눠준 필기구로 적게 한 후 한통에 모아서 개봉하며 함께 생각해 보는 유의미한 시간을 잘 진행하였다.

 

먼저 “학교급식”은 메뉴판의 자기선택권이 외면 받고 있으며, 이어서 “학교 학생화장실”의 키워드는 휴지도 없는 열악한  시설환경의 문제이다. 그 다음 “미혼모 및 연애”, “교복디자인문제”,“무심코 저질러지는 성희롱”, “휴식권과 휴대폰 사용금지”, “인문계와 실업계 그리고 예능계로 분류한 차별”, “참정권”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는 공통적으로 개성추구와 행복권 보장에 역행하여 일방적인 강요에 의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현실 생활을 반증하는 것이다.

제기된 문제들은 교육당국이 보다 세세하게 검토하여 점진적으로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욜로와봐”팀의 백건우(실용음악)와 손진웅(랩음악)이 무대로 나와서 멋진 춤과 노래를 선물하여 우리를 감동시켰다.

나는 마지막 음악 “요즘것들”이라는 랩가사를 들으며 잠시나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무쪼록 대구인권사무소 1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시네마수다”를 개최하여 차별 없는 인권을 다시 일깨워 주신 권혁장소장님과 수고해 주신 관계자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본인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언어체험을 한 경험으로 볼 때,

비언어는 각 문화권마다 소통방식이 다르고, 같은 비언어도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비언어적 소통도 그 사회적 문화 내에서 학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급 학습자를 위해서 비언어 교육도 언어교육과 함께 병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의사소통으로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정보가 전달되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인간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흔히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3분의 1만이 언어적 수준에서 전달되고, 3분의 2 정도는 자세나 눈 빛 등 비언어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단어보다는 몸짓이나 얼굴 표정, 자세, 음성, 목소리 등을 통한 사람들의 정보 교환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언어적 의사소통은 언어로 의사소통이 행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그나마 언어적 의사소통은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으나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침묵에도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절대 간과하면 안 된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표정이나 제스쳐와 같은 비언어로 의사소통이 진행되는 것을 말하는 데 간간히 오해가 발생하여 오해가 풀리지 않을 때에는 의사소통이 불통된다.

메르비안(Mehrabian 1973)에 의하면 메시지의 총체적 영향을일상적 면대면 상황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언어가 0.07%,  음성적 요소가 0.38%, 얼굴 0.55%로 비언어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예의범절(관혼상제 포함)은 주로 비언어적 요소로 이루어진다. 비근한 예로 윗사람을 뵙고 절을 하고 조문을 가서 조의를 표하는 경우 거의가 비언어적 요소로 이루어진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기능을 살펴보면,

1) 정체성 확인의 기능, 2) 관계설정 기능, 3) 감정 표현의 기능, 4) 정보교환의 기능이 있다.

 

1) 정체성 확인의 기능~ 외모, 나이, 인종, 성별, 사회관계,  얼굴 생김새, 체격, 목소리, 직업 등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능을 말한다.

2) 관계설정 기능~ 접근+ 회피 행위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설정 기능이다.

3) 감정표현의 기능~ 얼굴, , 몸 등 정서 상태를 나타내는 기능(감정강화, 과장, 중화작용)

4) 정보교환의 기능~ 반복, 상세한 설명, 반대의미의 전달, 언어메세지의 일부를 대체하는 기능이다.

 

다음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유형을 살펴본다.

 

몸짓은 생각과 의도 느낌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몸(혹은 몸의 일부분)의 움직임을 말한다. 몸짓은 대화 도중이나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을 시에 말을 대신할 수가 있다. 상호작용의 진행과 리듬을 조절하고 주의력을 유지하며 말에 대한 강조나 명확성을 더 해 준다.

 

1) 몸짓과 자세

몸의 움직임 보다는 상황을 고려한다.

한 가지 몸짓이 때로는 문화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또는 상이한 몸짓이 한 가지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1993년 부시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하여 시민들에게 손등을 보이며 빅토리의 V자를 표시 하자.부시의 의도와는 반대로 “부시가 호주를 모욕했다.”고 신문에 보도된 것이다.

자세(Posture)도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메시지도 다양하다. 문화적으로 표현 방식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다. 동양권과 서양권이 다를 경우도 있다.( 서양권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 감정으로 다리를 벌리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서로 눈길을 교환하는 반면 동양권은 그렇지 않다.)

 

2) 신체접촉

인간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접촉은 때로는 용기를 북돋우고 친절함을 표현하며 감성적 지원뿐만 아니라 그 외 많은 것을 표현한다.

접촉행위는 참으로 민감한 사항이다. 접촊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문화권마다 긍정이나 부정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3) 얼굴과 눈

) 얼굴은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제일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다. 표정은 물론 선천적이지만 많은 부분 학습되어 진다. 표정을 통해서 감정을 강화하고 억제하며 그리고 중화하거나 감정을 감춘다.

) 눈길은 사람이나 대상물을 쳐다보는 행위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거리, 성별, 상황, 사회규범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가령 서양권은 눈을 마주보며 대화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여긴다.

 

4) 공간과 시간

) 공간~ 개인 공간의 영역 내에 타인이 들어오면 어떤 위협을 느끼거나  반대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일련의 미묘한 공간조정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꽉찬 EV 안이나 지하철에서 웅크리는 행동이다.

대화거리는 성별이나 상호작용, 상황, 태도와 감정, 사회규범 등의 영향으로 조정 된다.

문화권마다 사람들의 욕구와 규범이 다른 만큼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적합한 거리도 다양하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은 서로 다른 이용 패턴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시간

사람이 시간을 이용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이에 따른 메시지 또한 다양하다. 시간에 대한 관점의 차이도 크다. 본인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있을 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 한국인은 빨리 빨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지만 적도 부근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한 참 후에나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천하태평인 그들을 몹시도 미워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퇴근 시간이 15 30분인 것을 알고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리학적 시간지향

과거 지향적 사회나 문화, 현재 지향적 사회나 문화 그리고 미래 지향적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조상을 섬기는 한국이나 영국은 과거 지향적 사회 문화이고 필리핀이나 멕시코는 현재 지향적 사회 문화라고 볼 수가 있다.

 

문화적 시간 지향

) 상이한 문화권들이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과 시간 이용 패턴이이 다르다.

) 기술적 시간 (문화 간 의사소통과 관련이 없음) 공식적 시간과 비공식적 시간에 따라 다르      .

 

끝으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의 방법을 생각해 본다.

1) 우리나라 속담 및  수수게끼 게임(스무고개)을 통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

2) 드라마를 이용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

3) 영화를 통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

4) TV 및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

 

초급 학습자를 위한 비언어 의사소통 교육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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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우한 폐렴이라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세상이 온통 어지럽다.

참 희한하게도 현 정부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구와 경북 청도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신천지가 원흉이라고 몰고 가는 당국자의 변명이 몹시도 얄밉다.

"말도 안돼" 라고 중얼거리는 시민을 물끄러미 본다.

그렇다. 신천지는 나는 무교라서 모르지만도 마! 그들의 실수는 있었다고하더라도 곁가지에 불과하다.

중국유학생, 중국인관광자, 수학여행단등의 입국을 치밀하게 통제 했다면 오늘날 30여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온 국민이 타의에 의하여 방콕하며 답답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현실이다.

어디 살아가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

이런 참혹한 시대에 그 옛날 세계 마라톤을 재패한 손기정 선수로 인해서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어쩌면 국민들은 또다른 영웅의 탄생을 갈구하고 있다.

 

그런 큰 이벤트는 없더라도 우리 국민들은 일상에서 토트넘 흥민이의 축구를 통하여 시원함을 느끼며 대리만족 하였다.

그러나 경기중 부상을 당하여 서울에서 수술을 받고 가료 중이다.

조용히 흥민이의 쾌유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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