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실록(31)> 제6대 성종 2

 

- 다져지는 나라의 기틀

 

국가체제 정비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경종은 우선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하여 토호들의 횡포가 잦은 지방의 제도부터 정비를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983년 성종2년에 이루어진 12목 설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국을 12개 목으로 나누고 임금이 파견한 관리가 다스리도록 하였으니 이는 고려가 개국한 이래 바야흐로 임금이 지방까지 완전히 장악한 정치를 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후 995년에는 전국을 10도제로 개편하여 절도사 체제를 구축하고 지방호족들을 더욱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서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됩니다. 또한 지방교육과 경제정책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醫學博士)를 1명씩 뽑아 12목에 각각 파견하는 등 지방교육과 의술의 증진에도 힘을 썼습니다.

 

특히 괄목할 만한 관제는 993년 상평창(常平倉)을 12목에 설치하여 물가조절을 하도록 하였다는 점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비록 중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기는 하지만 중앙정부의 직제를 3성6부로 개편하여 국무를 분장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종의 국가체제의 정비는 중앙과 지방에서 동시에 추진되어 그 효과가 더욱 컸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부강한 나라나 발전하는 기업을 보면 인재의 발굴을 절대 개을리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종 또한 나라의 기틀을 견고하게 다지기위하여 항상 인재를 기르고 발굴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재위기간 동안에 유교의 주요 덕목이라 할 효도와 절의를 강조하여 나라 안의 풍속을 아름답게 가꾸었으며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휼하고 태학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에게는 재물을 넉넉히 보내주어 살림걱정 없이 학문에 더욱 정진하게 하였고, 종묘를 세우고 사직을 정하여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으며 튼튼한 고려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때 성종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대외관계였습니다. 당시 중원을 차지한 송나라와 발해를 멸망시키고 강자로 부상하여 송나라와 패권을 겨루던 거란과의 사이에서 고려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이쪽저쪽 눈치를 보아야하는 처지였습니다. 특히나 기마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거란의 군대는 송과의 전쟁마다 큰 승리를 하는 용감무쌍한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삼한을 통일한 태조시절부터 거란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광종 때 30만 군대를 조직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하겠습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었기에 거란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언젠가는 회복해야 할 고토라고 여기고 있었고, 게다가 고려로서는 같은 민족국가라고 여기던 발해를 기습하여 멸망시킨 거란인지라 더더욱 미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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