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

창원 아파트 뒷편 고요한 저수지에서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아 물결을 바라보던

어느날이 생각납니다.

 

한참을 걸어 오다가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이쁜 손수건이 생각 났습니다.

뒤돌아 서서 막 달려가

그 고운 수건을 잡으려 할 때

심술굳은 바람이 훽 불어왔습니다.

 

바람에 휘감겨 춤을 추는 그 손수건이

그렇게도 아름다웠습니다.

 

봄비가 내리면 

오리가 헤엄치던 용호지가 생각나고

바람에 날리던 향기나는 아름다운 손수건이 떠오릅니다.

 

영원히 영원히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녹색문법,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에 손승호 씨 ‘어항 속의 교훈’ 외 2편 당선

[뉴시스와이어] 2009년 04월 02일(목) 오후 03:52    가 | 이메일| 프린트 

【뉴시스와이어】

녹색문법을 지향하는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에 손승호(사진) 씨가 작품 ‘어항 속의 교훈’ 외 2편으로 당선되었다.

   박인과 녹색문학평론가는 “손승호 씨의 수필 ‘어항속의 교훈’은 어항 속에서 점점 자라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어항 속을 황폐화 시키는 악어거북의 난폭함을 보면서 말없이 오물청소를 수행하는 청소고기, 그리고 온 가족이 협력하는 물피고기의 생활을 보여주며 우리의 생태계를 조명하고 있다. 그런 그의 문장 속에서 어울림의 생태계를 향한 문학적 사명의식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수필은 맛이 있다. 한 올, 한 올, 직조하듯 잘 구성한 작품들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이야기를 끌어와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오버랩 시키면서 작품 속에 교훈적 가치를 부여한다. 이 작품은 그가 그렇게 그려낸 생태적 녹색수필로서 잘 짜여진 그린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라고 단평했다. 다음은 손승호 씨의 당선작 ‘어항 속의 교훈’, ‘균형’, ‘새옹지마’ 중에서 ‘어항속의 교훈’ 전문이다.


♣ [수필] 어항속의 교훈 / 손승호

나는 지금 투명한 사각의 유리창 너머로 어항속의 괴물을 훔쳐보고 있다. 괴물은 거북과 악어 그리고 용이 혼합된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산 태생임을 입증하는 검은 원형반점이 분명하게 배 중앙에 표식 되어있다. 사람들은 이 괴물을 가리켜 오랜 세월을 산다는 악어거북 또는 밀림의 괴물이라 부른다.
날카로운 이빨이 길게 늘어서 있는 크고 긴 무서운 입, 굵은 발톱이 있는 힘센 앞발, 돌기가 나있는 긴 목, 힘이 엄청 센 길고 두꺼운 꼬리, 딱딱한 등은 악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래바닥을 기어 갈 때는 거북이, 내가 넣어준 미꾸라지를 단숨에 삼킬 때는 악어, 그리고 목을 길게 수면 밖으로 뺄 때는 마치 용같이 보인다.
지난해 겨울, 양육하고 있던 외로운 고슴도치와 악어거북을 교환했었다. 아마존 강이나 필라델피아의 호수에서 사람을 헤치는 밀림의 괴물이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까지 왔는지 나는 조금도 알지 못한다. 이미 몇 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세탁과정을 거쳤으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악의 없이 트렁크 밑에 숨겨서 왔을지 모른다고 추측을 해 본다. 나는 처음에는 보통거북으로 알고 감마루스(거북, 자라용 필수먹이)를 먹이며 별빛같이 영롱한 눈을 가진 이 거북을 귀여워했다. 침대 옆 남쪽 창가에 수족관을 자리 잡고 큰 돌을 놓아 거북이가 오수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모래와 자갈, 수초를 넣고 물속 공기통과 은은한 불빛도 설치하여 맑고 밝은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각종 물고기 가족을 이주 시켰다. 우선 가재 두 마리를 옮겼다. 그다음은 가시고기도 넣고, 물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고기를 이동한 다음 마지막으로 청소고기 다섯 마리도 합류시켰다.
나는 이렇게 어항이라는 소우주를 만들어 놓고 매일 괴물과 고기들을 예의 주시하며 마치 신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가시고기를 관찰해 보고 싶었다. 엄마가시고기가 알을 낳으면 그냥 도망가는지, 아빠가시고기가 마지막까지 그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물고기나 적들이랑 싸우는지, 부화되면 새끼들이 아빠가시고기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 버리는지 결국 홀로 남은 아빠가시고기는 돌에 머리를 쳐 박고 죽는지 가시고기의 일생을 검증하고 싶었다.
어항에서 서로 뒤엉켜 노는 고기들의 모습이 도심의 중심 거리처럼 활기가 넘친다. 살펴보니 물 상층부에는 자기들의 영역을 오가는 피라미 고기들이 있고, 수위의 중간층은 가시고기와 물피 고기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 층은 거북과 가재가 활개치고 있었으며, 가무 짭짭하고 납작하게 생긴 청소고기는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배설하는 다른 고기들의 오물을 부지런히 먹고 마시며 깨끗이 청소하고 있었다.
사람이나 고기나 층을 이루어 무리 지어 사는 양상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몇 달의 세월이 흘러가자 고기들의 평화는 깨지고 어항은 공포의 도가니로 변해가고 있었다. 보통 애완용 거북이는 일정한 크기로 자라면 아무리 먹여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악어거북은 점점 돌기가 생기고 힘이 세지며 큰 형체로 변화되어 갔다. 이제 내 손바닥보다 더 크게 자랐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가재와 전쟁을 하듯 싸우는 모습은 험악하였다. 긴 더듬이를 가진 붉은색 가재는 특히 화려하게 생겼다. 악어거북의 돌변에 당황하며 암수 두 마리 가재가 동시에 협공을 하는 것이 보였다. 가재는 다리가 부러져 없어져도 허물을 벗으면 그 없어진 다리가 본래 대로 멀쩡하게 생겨나는데 애석하게도 그 성스런 허물 벗는 장면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약육강식의 냉엄한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듯이 강자에 의해 잡아먹히는 참혹한 가재의 최후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어제 보이던 고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가시고기와 물피고기 그리고 청소고기를 다른 어항으로 옮겼다. 평화로운 어항에서 가시고기는 소라껍질 속에 알을 낳았다. 아직은 엄마고기와 아빠고기가 교대로 문 앞을 지키고 있다. 나는 언제 엄마가시고기가 아빠가시고기를 배신하고 도망가는지 똑똑히 볼 참이다. 물피고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고기이다. 나는 유독 물피고기에 정이 가서 무심코 먹이를 듬뿍 뿌려 준다. 엄마 물피고기가 알을 낳으면 안전한 부화를 위해 부모고기는 물론이고 숙모, 이모, 고모 등 모든 친인척이 더불어 부화를 지킨다는 사실이다. 핵가족으로 분화된 오늘의 삭막한 사회에서 점점 메말라 가는 인간의 세태를 비웃는 모습이다.
한편, 악어고기는 엄청 커졌다. 어항속의 모든 고기들을 차근차근 잡아먹어 이제는 외롭게 자기 혼자만 남았다. 꼬리 하나의 힘으로 서서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고 무거운 돌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교만하기 짝이 없다. 솔직히 감당하기 힘이 든다. 내가 만약 악어거북을 강에 풀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이 지나면서 석 자 이상 자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거니와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옛날에는 물장구치며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 다녔던 강물에 지금은 이렇게 위험한 괴물이 노리고 있다는 분명한 현실을 보통 사람들은 까마득하게 모를 것이다. 세계화가 가져다준 작지만 무서운 선물이다.
오늘도 식성 좋은 악어거북의 생존을 위해 주둥이에 수염 여섯 개가 예쁘게 달린 미꾸라지를 하루에 열 마리씩 어항 속에 넣어 준다. 미끄러운 장점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쳐 보지만 단숨에 허리를 잘리어 희생당하는 모습이 역겹다.
어항 속을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 귀엽기만 하던 악어거북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무서운 괴물로 변하듯이 온화한 성품의 사람도 권력을 소유하면 무소불위의 괴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비록 미물이지만, 자기의 미천한 운명을 수용하고 말없이 오물 청소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청소고기와 온 가족이 서로 협력하여 부화를 지키는 물피고기의 아름다운 생태를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끝.


♣ 당선소감

저는 당선 소식을 듣고 왠지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가슴의 한켠을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보다 진솔하고 겸손의 미덕을 두루 갖춘 글을 쓰는데 매진하여 독자의 공감을 얻도록 배가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오늘은 각고의 단련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겠습니다.
문득 생각이 납니다. 어린시절, 저는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산촌에서 차가운 겨울을 이기고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야생화의 신비로움을 바라보았습니다. 토끼와 노루, 그리고 꿩과 종달새와 함께 야산의 솔밭과 초원의 들판을 달리고 날아보며 마치 어린 짐승처럼 살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여름날에는 못둑 위에 모락모락 모기불을 피우고 멍석 위에 반듯이 누워 시시각각으로 하늘에서 펼쳐지는 찬란한 별빛의 유영을 응시하며 가슴이 울렁거리는 진동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내면의 감흥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도 부족한 필력을 두려워하여 그때마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지나간 후로는 진실한 삶의 흔적을 토로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저를 수필의 광장으로 이끌어 주신 수필창작대학 홍억선 선생님과 동기생, 한국낭송문학회 이병훈 회장님과 다정다감한 문우님들께 심심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직 저의 글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부족함을 차근차근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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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읍 승격 60주년에 부쳐

 

 

 

2009년 5월 20일은 안강읍으로 승격하여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이다.

이날 안강읍사무소를 찾았을 때,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분위기로 자축 애드벌룬이나 축하행사는 보이지 않았고, 거리에는 어래산 철탑 반대와 읍승격 60주년 경축현수막이 간간히 걸려 있어 가을들판 같은 황량(荒凉)함마저 느껴져 씁쓸하였다.

이호우 총무계장은 “가뭄이 겹친 농번기로 행사를 당장 치르는 것이 부적절해 오는 6월27일 공설운동장에서 초청인사 강연회, 문화행사 등 기념행사를 거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안강은 그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삼한시대 음계 대국으로 성립하여 신라시대 파사 이사금 23년에 비화현이라 칭하였고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현으로 개칭 의창군(영일군)으로 귀속되었으며 고려시대 현종 9년 경주군 안강현으로 복현 되었다가 조선시대 태조때 귀성현으로 개칭하였으며 정종때 다시 안강현으로 복현하였고, 고종32년 경주부를 경주군으로 개칭했다.

근대에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서면으로 개칭되었다가 광복 후 1949년 5월 20일 안강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55년 경주읍이 경주시로 승격되면서 군 명칭을 월성군으로 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안강읍이 있었다.

1973년에는 천북면 청령리를 안강읍으로 편입했으며 1995년 경주시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안강은 면적이 138.69㎢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시인 군포시(36.4km2)보다 3배이고, 수원시(121.05km2)보다 조금 넓고 45개의 행정동이 있다.

현재 인구는 3만2843명(1만2626세대)으로 전성기인 1998년 5월경 3만8776명보다 6000여명이 감소되었다. 광활한 안강 평야의 쌀과 전국 최대의 한우(530호, 4398두) 및 젖소 그리고 찰토마토와 단감 그리고 좋은 인심은 우리고장의 자랑거리로 꼽을만하다.

또한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 안강은 동해남부선 철도를 비롯하여 대구-포항간 28호선 국도, 68번 국지도, 건천 포항간 20번 산업도로, 최근 개통된 안현선 도로 등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된다. 더군다나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4차선 도로가 완공되면 포항 신항만의 물류단지와 연결되어진다.

뿐만 아니라 <주>풍산 안강공장을 위시한 70여개의 기업체가 현재 공장의 연기를 내뿜고, 검단리 일대에 36만여 평의 일반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어 도농 복합도시로서의 잠재적 기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형산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곡창지대, 흥덕왕릉과 옥산서원 등 문화재가 있고, 많은 인재가 전국 각지에 산재한 것은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안강은 특히 전쟁과 자연재해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6.25전쟁 때는 국군과 학도의용군이 필사적 각오로 적과 싸운 무공의 현장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유서와 함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유품으로 남기고 결사대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1300여명의 적을 사살하는 등 최대의 전과를 올린 국군백골부대 18연대의 전사(戰史)는 가슴을 찡하게 한다.

또한 그 유명한 1959년 사라호 태풍을 비롯하여 1987년 셀마, 1991년 글래디스 등 거의 해마다 자연재앙으로 농경지 침수, 주택파손, 인명피해 등을 감당하여야만 했다. 이제는 안강수해대책연구회(이중길)가 결성되어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읍민들의 가슴에 따뜻한 희망을!

이러한 질곡의 역사를 지닌 안강의 미래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읍승격 6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발전의 속도는 미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서술한 바와 같은 상당히 양호한 조건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의 변방으로 지역발전이 침체 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고, 옛 지명인 강서(안강)와 강동을 통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모두가 지역발전의 침체가 빚은 답답함에서 기인된 하소연일 것이다. 포항과 경주의 중간에 위치한 안강은 생활권으로 포항이 가깝고 시내버스나 택시요금도 오히려 저렴하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양 도시의 샌드위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슬기로운 지혜를 발휘하여 공생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의 답은 읍민들의 몫이다.

양성자가속기 사업부지 유치와 도청유치의 실패에 대한 절망감도 점점 아물어가는 안강.지금부터는 읍민들의 뜻을 결집하여 긴긴 겨울을 이기고 경칩 시즌에 튀어 나오는 개구리의 비상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전설의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둠이 내리니 넓은 평야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개구리의 합창소리가 요란하다.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오고 있다. 60년의 짧지 않는 역사를 담고 차곡차곡 준비한 기반시설을 발판으로 안강의 발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안강은 목숨바쳐 지켜온 옥토의 땅이다.안강 들판을 뚜벅 뚜벅 걸어가는 황소의 충직함같이 살아온 읍민들의 가슴에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가 오월의 훈풍을 타고 좀 더 가까웠으면 좋겠다.

손승호기자 ssh305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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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호 기자 ssh30529@hanmail.net

어래산 정상에 올라 초록으로 물든 산야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조국을 위해 산화(散華)하신 국군과 학도병의 모습이 보인다.
귀를 기울이니 스치는 바람결에 그분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고, 산새도 슬픈 역사를 아는지 서글프게 우짖는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일은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54회 현충일이다. 우리 고장에서도 집집마다 반기(半旗)를 게양하고, 오전 10시 사이렌이 울리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묵념의 예를 갖추어 감사의 마음을 표할 것이다.

6.25 전사(戰史)를 예기할 때, 북한군의 남쪽 진격을 저지하고 전세에 영향을 끼친 전투로 다부동전투와 더불어 안강전투를 꼽는다.
그 당시 전격적으로 남침한 북한군은 수도 서울을 점령, 작전주도권을 장악하여 7월말에는 진주-김천-안동-영덕에 이르는 선까지 진출하였다. 반면 아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 최후의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같은 해 7월 20일 수안보에 위치한 전선사령부를 방문한 김일성은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를 따르고자 북한군 12사단은 8월 공세를 전개하면서 동부전선 안동일대에 방어배치가 없는 공백지대를 확인하고 태백산맥 남단 산악지대를 이용 청송-죽장-기계-안동 축선으로 침투해 8월 9일에는 기계를 점령한 후 선봉대를 포항으로 전환시키고 주력을 경주 축선에 지향시켰다.

특히 안강전투는 국군 1군단(수도사단, 3사단)이 기계 안강 영덕 포항 일대에서 유격대(766부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5사단,12사단)의 침공을 온힘을 다해 싸워 격퇴한 방어전투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전 · 사상자의 희생이 동반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한시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군번 없는 학도병들이 자진 입대하여 분전감투(奮戰敢鬪)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한국전쟁 전투 목록을 보면 안강전투는 1950년 8월 9일-9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 안강지역 전투시 작전명령서(작전명령 제157호)에 민간인을 전쟁에 이용하여도 가하다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도 노역 등으로 참여한 희생자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안강전투 결과 북한군은 동부지역 돌파작전에 실패하게 되었고, 아군은 기계 포항 북방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다음 단계의 반격작전을 이행하게 됐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분들의 고고한 뜻을 되새겨야 한다.

2007년 1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MAKRI)이 창설됨으로써 발굴 작업은 보다 진전을 보이고 있다.
최후의 순간까지 유해발굴에 성심을 다해야한다. 이는 목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직 조국을 위하여 용감무쌍(勇敢無雙)하게 적과 싸운 전몰장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일 것이다.

또한 경주지역에는 전몰유족 430명, 전상자584명이 있다. 현충일날 기념식도 중요하지만, 이분들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예사롭지 않은 요즈음 유비무환의 교훈을 명심하고, 전몰장병이 지킨 우리 고장을 우리가 지킨다는 각오로 흐트러진 안보의식을 다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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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눈을 감는다.

멀쩡하던 건물이 일순간에 붕괴되는 잔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고층건물에서 근무할 때였다. 하늘에서 흰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문에 기대어 아름다운 우주의 조화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곤 했었지. 그날도 창가에서 첫눈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저 아래 건물신축 현장에서 소란하게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으로 갔다.

지하공사를 하는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집수정에 모여지는 지하수를 수중모터로 퍼내느라 현장소장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고, 인접 건물주는 빌딩이 기울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빌딩을 한 바퀴 돌아보며 세로줄의 틈이 깊게 발생 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고 무서웠다.

도시는 이미 만원이었다.

동서남북 지하철이 횡단하고 허접한 비탈에도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 쇼핑건물 등 대형 구조물이 숨 막히게 들어서고 있다. 봄날 같은 겨울, 여기 저기 공사장 지하에서는 물 올리는 양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건물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활동하고 건물아래의 지하수가 요물처럼 움직이고 옮겨 다닌다는 원리를 군대 생활에서 처음 알았다. 공학에 대한 지식이 미약하였으나 어깨 너머로 기초 지식을 배웠다. 건물이 전도되는 고통스러운 경험도 했다. 그런 다음 세상만사는 균형이 깨지면 기운다는 진리를 엿보기 시작했다.

보통 땅의 침하가 건물 바닥 전체에 균일하게 일어나면 구조물이 파괴 되거나 변상(變狀)을 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지반이 불균형하게 어느 한쪽만 침하가 이루어지면 필연적으로 건물이 기울어지거나 변형이 일어난다. 균열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부등침하(不等沈下)라고 고참이 알려 주었다.

땅속의 물을 퍼내면 주변의 지하수가 다투어 몰려오게 되고 땅속에 있던 공극(공간)을 지하수가 있어 평형을 유지하고 있던 건물 바닥의 토질이 지하수가 빠져 나감과 동시에 침하현상이 진행한다.

수십 년간 땅이 움직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공사 주변 거주자들은 가라앉고 있는 자신의 건물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게 된다. 만약 건물이 300분지 1이상 기울게 되면 이미 창문이 안 닫히거나 방문이 저절로 열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물은 지하에 숨어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른다. 움직이는 것은 틀림이 없다.

나는 복잡한 도시에서 주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였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역을 오가며 습관처럼 공사장옆 건물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틈이 생기더니 시간이 경과 할수록 그 틈의 간격은 점점 넓어져 갔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을 때는 손가락이 드나들 만큼 큰 틈이 생겼다. 급기야는 건물의 기울기가 육안으로도 확인할 정도가 되었다. 세입자가 모두 떠나가자 스산하게 변하더니 이듬해 그 건물은 결국 먼지를 내며 붕괴 되고 말았다.

나는 부동침하의 진행과정을 나날이 바라보며 균형감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이 부동침하(不同沈下)를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건물 바닥의 지반이 연약할 경우와 건물기초가 이질 지층에 걸쳐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동쪽은 암반이고 서쪽은 모래땅 일 경우에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균형을 잃고 약한 지층을 눌러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건물의 하중이 최대한 골고루 기초에 분포 되도록 하고 기초 상호간을 연계하여 연결 시켜야한다.

 

나는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양극화의 문제가 건물의 틈처럼 벌어져 가는 양상이다.

요즈음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도 심화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이상적인 복지국가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재벌이 마치 적군처럼 여기니 이것이 어디 자유 민주 사회에서 가당한 말인가?

귀 기우리면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건물이나 구조물의 지반이 힘의 균형이 깨질 경우 처음에는 작은 틈이 생기고 다음은 건물자체가 기울어 극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노와 사의 분쟁,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등의 경고음이 울려 퍼진지 오래 되었다. 더 늦기 전에 균형감각을 찾아 조화로운 사회로 다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초지반의 국부적인 흐트러짐도 가차 없이 건물침하의 원인이 되듯이 우리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기심이 모이면 가정과 사회를 붕괴시키는 암적인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가난하고 약한 지층의 사람들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복지시설에서 만난 한센 병 환자인 할머니의 절규가 들려온다.

“저는 팔도 없어요. 다리도 없어요. 눈도 없어요. 돈도 없어요.

추워요 배고파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바람이 차다. 누군가 바람이라도 막아 주었으면 참 좋겠다.

(이글은 본인이 국립공원관리공단본부에 근무할 때 11층에서 내려다 보며 적은 글입니다.)

 

 

안강의 발전은 요원한 일인가?
회갑맞은 안강읍승격 61주년에 부쳐
 
 

2010년 5월20일은 안강이 읍으로 승격한지 61주년이 되는 의미 깊은 날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뜻하는 61세가 되는 생일이다.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회갑(回甲)잔치가 성대하게 열리는 날이지만 안강읍에서는 아무런 기념식도 없었다.

 

안강읍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기념식은 10년마다 한 번 열린다고 했다.
다만 여느 도시의 동(洞)사보다 못한 초라한 읍사무소 건물이 쇠락(衰落)한 안강의 오늘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일부러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강으로 향했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상가마다 학생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경산시 하양을 지나니 제4경마장을 유치해 연간세수 900억원의 기대수치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에 들뜬 희망의 함성이 진동하는 영천시에 정차했다.

그리고 3사관학교가 위치한 고경면을 지나니 어느새 안강의 경계를 알리는 시티재가 나타났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안강 들판의 농수를 책임지는 하곡저수지의 파구가 바람에 순응하여 찰랑거렸다.

 

길옆의 옥토에서는 성질 급한 감자꽃이 피었으며 간간히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뒤편의 논에는 농번기를 알리는 황토색 물에서 윤기가 났다. 웃자란 수목과 잡초, 그리고 산새들만이 이 고장이 편안한 安康(안강)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강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읍내로 접어들면 상가는 한산하기 짝이 없고, 사람들은 그 표정에서 무언가 침울함이 풍긴다.

 

왜? 무엇 때문에 안강은 발전이 안 되는지? 심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가까운 흥해읍은 1956년 곡강면과 흥해면을 합쳐 의창면으로 개칭 됐다가 안강읍보다 20여년 늦은 1973년에 흥해읍으로 승격됐으나 오늘날은 대형국책사업으로 전국의 투기꾼이 득실대는 곳으로 변화해 바다와 함께 흥한다는 그의 이름값을 하지 않는가.

 

같은 경주시 서부에 위치한 건천읍은 또 어떤가?  건천 강물이 배수가 잘 되어 물이 고이지 아니하고 건조하여 한발이 심해 건천이라고 하였다지만 이제는 경주 신역사가 들어서고 양성자가속기 부지를 유치하여 발전의 기폭제를 마련하지 않았는가.

 

때마침 안강 거리에는 지방선거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저마다 안강의 발전을 목청 높게 외치며 관심을 촉구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안강의 발전은 그때마다 구호로 끝나고 말았다.

 

경주의 변방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되돌아보면, 안강풍산금속 폭발사고, 쌀값하락에 절망한 농민들의 벼논 뒤엎기, 오리·닭 살처분 매몰, 구제역예방 등 우울한 사연들이 많다.
“미안하다. 다시 기회를 달라.”는 확성기의 유세소음에 그저 쓴웃음이 나온다.

 

정녕 안강의 발전을 충심으로 기약한다면, “제발, 가까운 읍민등산로 근계산에 올라가서라도 안강읍 전체를 한 번 쯤 세세하게 내려 보세요.”
그리고 얼마나 안강이 정체되고 있는지 되짚어 보았으면 참 좋겠다.

 

영천시민들은 경마장 유치를 위해 신청서 접수와 함께 단 3일만에 무려 2만6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마사회에 제출하는 결집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안강읍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강읍 승격 61년의 침체된 역사의 뒤안길에서 향후 안강의 발전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대오각성하여 발전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회갑(回甲)은 과거, 진갑(進甲)은 미래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년에는 현실의 안주 의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비약적 안강발전의 청사진이 제시되어 읍민들의 보다 밝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말못하는 나무의 아픔

   오늘 근오사 카페를 둘러보다 갤러리마당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근오사직제운동기구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살아있는 (생)소나무에  밧줄을 칭칭 묶어 두줄을 늘어 뜨린후 두줄을 잡고 흔들거나 외줄로 운동을 하는 기구를  누군가가 직접 나무에 올라가  무심코 만들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한다고....

 

  운동을 하는 우리 사람들은 건강상 참 좋겠지요. 기분도 좋고요

하지만 곧게 서있는 나무는 말은 못하지만 얼마나 아프겠어요? 특히 고운 마음을 지닌 여성들이 한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그 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아 아주 서서히 결국은 말라 죽게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가랑비에 옷 적시듯이 한사람 두사람 메달리고 당기고 하는 즐거움 뒤로 힘겨워하는 나무의 아우성이 있습니다. 사람을 밧줄로 묶어 고문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제 그나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풀어 줍시다.

 

   근오사에서 관계기관에 건의한다면, 그 옆의 공간지역에 사람들이 와르르 타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콘크리트 기초판을 만들고 그 다음

파이프를 세우고 볼트로 고정시킨 다음 그네줄 같은 적당 크기의 줄을 내린 후 우리 읍민들이 마음데로 운동을 하면 해결 될 문제라 여겨집니다. 나무는 솔바람을 불어주고 그늘도 제공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만나는 운동기구인데, 오죽 하고 싶었으면 만들었겠어요. 두줄 또는 외줄로 완력도 기르고 척추도 세우고 또 여러가지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십견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들었어요.

 

카페지기님!

그 사진은 내리는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읍민들 사이에서는 이 사실을 이해하지만 외부인이 보면 야만적  비자연적인 행동으로 보여 즉각 신문등 매스컴에 오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근오사에서 한 그루의 나무라도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 제 개인적 소견이오니 한번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근계산은 우리 안강읍민 다수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보편적으로 시설은 남향으로 정치시키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들이 사는 아파트나 주택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시야에 바로 와 닿는 친근함을 고조 시키는 뫼일 것입니다.

 

  문화시설이 열악한 중소도시에서 정서적으로 마음의 풍요를 주는 산을 오르는 것은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참 좋은 선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계산은 읍민들의 건강 지킴이로 오래 오래 그 명성을 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자연환경을 보존하며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그런 산입니다.

 

 근계산은 비록 나지막하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봄이 되면 안강의 광활한 들판의 기를 받아 유난히도 짙게 피는 참꽃이 여기 저기 군락을 이루고, 특히 마치 순후한 인심의 안강에서 살다 가신 어느  훌륭한 사람들처럼 이름없는 초화가 소리 소문 없이 고운 자태로 피었다 지기 때문에 자연의 감미로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안강의 앞산, 근계산 등산로는 점진적으로 더 확장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읍민들의 건강생활을 보다 활기차게 개선시키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너무도 멋진 코스가 연결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근계1리(가마실)에서 출생하여  근계2리 안막골 근처에 선영을 넘나들며 소년시절을 보냈기에 근계산 일대는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가슴 한켠에 보석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 드리는데요 근계산 등산로에서 그치지 말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근계산방향과 가마실과 곤실(용화사) 그리고 무릉산 쪽으로 가는 네 갈래 길 소로가 나오고, 계속 더 올라가면 산대리(수일)에서 올라오는 산줄기 소로와 만나게 되고 좀 더 올라가면 무릉산 능선의 허리에 다다를 수가 있습니다.

 

 시간관계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다음에 또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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