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눈을 감는다.

멀쩡하던 건물이 일순간에 붕괴되는 잔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고층건물에서 근무할 때였다. 하늘에서 흰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문에 기대어 아름다운 우주의 조화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곤 했었지. 그날도 창가에서 첫눈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저 아래 건물신축 현장에서 소란하게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곳으로 갔다.

지하공사를 하는 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집수정에 모여지는 지하수를 수중모터로 퍼내느라 현장소장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고, 인접 건물주는 빌딩이 기울고 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빌딩을 한 바퀴 돌아보며 세로줄의 틈이 깊게 발생 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고 무서웠다.

도시는 이미 만원이었다.

동서남북 지하철이 횡단하고 허접한 비탈에도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 쇼핑건물 등 대형 구조물이 숨 막히게 들어서고 있다. 봄날 같은 겨울, 여기 저기 공사장 지하에서는 물 올리는 양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건물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활동하고 건물아래의 지하수가 요물처럼 움직이고 옮겨 다닌다는 원리를 군대 생활에서 처음 알았다. 공학에 대한 지식이 미약하였으나 어깨 너머로 기초 지식을 배웠다. 건물이 전도되는 고통스러운 경험도 했다. 그런 다음 세상만사는 균형이 깨지면 기운다는 진리를 엿보기 시작했다.

보통 땅의 침하가 건물 바닥 전체에 균일하게 일어나면 구조물이 파괴 되거나 변상(變狀)을 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지반이 불균형하게 어느 한쪽만 침하가 이루어지면 필연적으로 건물이 기울어지거나 변형이 일어난다. 균열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부등침하(不等沈下)라고 고참이 알려 주었다.

땅속의 물을 퍼내면 주변의 지하수가 다투어 몰려오게 되고 땅속에 있던 공극(공간)을 지하수가 있어 평형을 유지하고 있던 건물 바닥의 토질이 지하수가 빠져 나감과 동시에 침하현상이 진행한다.

수십 년간 땅이 움직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공사 주변 거주자들은 가라앉고 있는 자신의 건물을 보게 되면 그때부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게 된다. 만약 건물이 300분지 1이상 기울게 되면 이미 창문이 안 닫히거나 방문이 저절로 열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물은 지하에 숨어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른다. 움직이는 것은 틀림이 없다.

나는 복잡한 도시에서 주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였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역을 오가며 습관처럼 공사장옆 건물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틈이 생기더니 시간이 경과 할수록 그 틈의 간격은 점점 넓어져 갔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을 때는 손가락이 드나들 만큼 큰 틈이 생겼다. 급기야는 건물의 기울기가 육안으로도 확인할 정도가 되었다. 세입자가 모두 떠나가자 스산하게 변하더니 이듬해 그 건물은 결국 먼지를 내며 붕괴 되고 말았다.

나는 부동침하의 진행과정을 나날이 바라보며 균형감각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이 부동침하(不同沈下)를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건물 바닥의 지반이 연약할 경우와 건물기초가 이질 지층에 걸쳐 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동쪽은 암반이고 서쪽은 모래땅 일 경우에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균형을 잃고 약한 지층을 눌러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를 방지하려면 건물의 하중이 최대한 골고루 기초에 분포 되도록 하고 기초 상호간을 연계하여 연결 시켜야한다.

 

나는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양극화의 문제가 건물의 틈처럼 벌어져 가는 양상이다.

요즈음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도 심화되어 더불어 살아가는 이상적인 복지국가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재벌이 마치 적군처럼 여기니 이것이 어디 자유 민주 사회에서 가당한 말인가?

귀 기우리면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건물이나 구조물의 지반이 힘의 균형이 깨질 경우 처음에는 작은 틈이 생기고 다음은 건물자체가 기울어 극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노와 사의 분쟁,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등의 경고음이 울려 퍼진지 오래 되었다. 더 늦기 전에 균형감각을 찾아 조화로운 사회로 다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초지반의 국부적인 흐트러짐도 가차 없이 건물침하의 원인이 되듯이 우리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기심이 모이면 가정과 사회를 붕괴시키는 암적인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가난하고 약한 지층의 사람들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복지시설에서 만난 한센 병 환자인 할머니의 절규가 들려온다.

“저는 팔도 없어요. 다리도 없어요. 눈도 없어요. 돈도 없어요.

추워요 배고파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바람이 차다. 누군가 바람이라도 막아 주었으면 참 좋겠다.

(이글은 본인이 국립공원관리공단본부에 근무할 때 11층에서 내려다 보며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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