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통(憤痛)이 터진다.

 

 인권기자 손승호

 

2016 6 4일 오후 3, 인권기자단 일행은 인권기관 방문을 목적으로 중부경찰서 앞에 모였다. 오늘은 오후부터 이슬비가 내려 촉촉하게 대지를 적신다. 가까운 거리에 지붕이 검은색 기와로 된 일본식 목조 가옥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관 입구에서 무심코 천장을 쳐다보고는 놀랐다. 시공된 자재가 불탄 흔적이 역력했다. 아무리 역사보존도 중요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오고가는 다중이용시설인데 이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갔다. 그러나 지나친 과민반응인지도 모른다고 자제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안내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몰랐던 사실도 알고 큰 감동과 울분을 품으며 비교적 세세하게 관람(觀覽) 할 수가 있었다. ‘희움의 의미가 희망을 모아 꽃피움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서 이루어진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순수 민간시설임을 알고 그분들의 애정 어린 노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김순악 할머니의 원예압화 작품

 

우리는 1층 전시실에서 그날의 기억을 비롯한 생생한 역사를 조명한 내용을 보았고, 2층 기획전시실에서 유품과 평화이야기 등을 관찰했다.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여 복도에도 피해자 분들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 액자로 걸려 있어 한 동안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하벙커에 내려가서 할머니의 조형물 손을 잡았을 때는 가슴이 울컥했다. 한편 2층 옥외에는 공연 등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고 차양막이 쳐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역사관을 방문한 소감은 멍하다는 느낌이었다. 귀가 길에 지하철 역사에서 안심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내 발걸음은 대곡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귀 기우리면 할머니들의 절규가 들린다. 눈 감으면 나라 잃은 약소국의 딸로 살아 온 그날의 비참한 생활상이 보인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남 것 손 안 대고 남한테 해코지 안 하고 내 몸뚱이로 이제껏 살아왔다 말이다! 그런데도……. 가슴에서 불이 올라온다 말이다. 이런 불이!” 김순악 할머니를 비롯한 증언은 절규(絶叫) 바로 그 자체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의 만행을 견디며 고통을 감수한 숭고한 삶에 저절로 고개가 떨어진다.

 

      

             ▲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대구경북 지역 피해자 할머니는 26명이지만 현재는 5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파헤쳐 그들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범죄를 인정하여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완전한 사과를 받고 합당한 배상을 비롯한 7가지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가일층(加一層) 힘을 모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리라.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 다시는 약소국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리라.

 

가해자는 이웃나라 일본, 그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작태(作態)를 이어가는 한, 우리 국민 모두가 분노를 넘어 불타는 적개심(敵愾心)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여기 역사관에는 일본정부가 일본군인들을 위하여 일본군인, 행정요원, 순사들에 의한 집행으로 강제 연행당한 꽃다운 소녀들의 가련(可憐)한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강제라는 말이 누락된 위안부라는 말은 틀린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된다.

 

      

                       ▲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이 있었던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잊지 못할 역사적 비극을 되새겨 새로운 다짐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진실에 근거하여 용의주도하게 기획된 전시실을 이동하는 동안 켜켜이 쌓인 할머니들의 피맺힌 한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중 일부나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한 역사관 관계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건물의 이면에는 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라일락 한 그루가 한 많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대변하듯이 그렇게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봄에는 하얀 꽃을 피운다고 했다. 내년에 라일락꽃이 만발하여 흩날리는 봄날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리라 약속하며 분통 터지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개소10주년 기념 특강에 참석하기 위하여 설레는 마음을 품고 대구인권센터로 서둘러 출발했다. 교육장에 들어서니 깨끗하게 정돈된 실내 분위기와 온화한 대화 속에서 향기로운 사람의 냄새가 났다.

 

   나는 좌측 가장자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귀를 기울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강사는 ‘가위, 바위, 보’로 마을의 의사를 결정한 사례를 들어 차분하게 인권에 대하여 간과했던 부분을 일깨우는 열띤 강의를 이어갔다. ‘가위, 바위, 보’ 게임은 연달아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으므로 공평하게 보였다. 그러나 마을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 주먹을 펼 수가 없어 항상 주먹만 내는 자가 있었는데, 이를 알고 있는 상대방이 보자기를 내어 늘 패배하던 그는 이러한 방식은 불공평하니 왼손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촌장은 규칙은 신성하기 때문에 오른 손으로 해야 한다고 묵살한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돼지 축사에서 분뇨를 치우던 외국인 노동자가 올해만 4명이 유독가스에 의해 사망한 이야기를 접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지저분하고 힘든 일을 대신하다가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슬픈 사건의 내면에 인권을 무시한 양돈주의 무지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박진 강사의 강의에 몰입하다 보니 한국사회의 인권침해가 적지 않음을 실감하였다. 삼성전자 근로자의 백혈병 산업재해 사건, 구의역 청년 스크린도어 사건,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3000명해고 사건, 밀양송전탑 사건. 세월호 민간잠수사 2명 사망 사건, 군이나 직장에서 상사에 의한 성추행 자살 사건 등 우리가 좌시하는 오류에 기인하여 인권침해는 연일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르웨이 교도소 실내모습, 사진출처: 중앙일보 joins 뉴스>

 

   “인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는 것이다.” 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교육의 말미에 노르웨이 교도소의 실태를 영상으로 보고는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죄인들이 생활하는 창살 없는 교도소가 시설 등 다방면에서 여느 호텔의 시설보다 더 좋았던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자아 존중감이 재범률을 낮추는 것일까? “인간다운 대접이 인간다운 생각을 만든다.”는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 본다.

 

   강의의 말미에 주어진 질문시간에는 국가보안법 제7조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문제점 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2시간여 진행된 강의를 진지하게 들으며, 인권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70억 인구가 다 다르게 생겼듯이 생각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타인의 삶과 사상을 인정하는 것이 인권의 출발점이다.

 

오늘따라 인권이란 어휘가 긴 여운으로 내 마음에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끝)

 

 

 

 

소중한 생명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유가 없다.

2017년 6월 들어 연달아 자살시도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한층 우울하게 한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6월 1일 16:33분경 광주 북구 어느 아파트 12층에서 A씨가 자살을 시도 하였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보도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내용을 알아보니 지적장애 3급에 정신병원 입원경력이 있는 딸이 외출을 제지하는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고 베란다로 뛰어내리는 순간 필사적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손을 잡은 것이다.

 

  한 시민이 아파트 고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하여 소방관과 경찰관이 출동하였으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15분이나 경과한 후 아버지로부터 비밀번호를 알아 어렵사리 들어가니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의지한 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구급대원의 도움으로 끌어 당겨 사실상 죽은 목숨을 구한 기적적인 사건이다.

 

  20살이 넘는 사람의 몸무게를 15분 넘게 버틴다는 것은 “내 딸은 내가 살려야 한다.”는 초인적인 모성애가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7년 6월 14일에는 김해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78. 여)씨와 아들(45)이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하여 안방에서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모자가 주식투자에 실패(失敗) 했고 더군다나 보이스 피싱 까지 당했다는 사실관계를 확인중이라는 점을 추정해 볼 때 실망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의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의 다세대 주택에서 농아 임모(65)씨도 2층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한 많은 인생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이 또한 알고 보니 농아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수백억 원대의 투자 사기사건, 세간에 떠도는 ‘행복팀’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에 불과했다.

 

  어디 이 뿐인가?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자살사건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요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순간을 버티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도 있으련만...

 

   사람은 모름지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인권 중에서 생존의 권리를 포기할 때의 허망한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하지만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자기의 생명도 함부로 내동댕이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

 

  자살은 예방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자살은 위의 사례가 증명 하듯이 사기 등 타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예방장치와 그 활동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이 보듬고 위로하는 파수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자살은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참으로 곤란하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는 자살의 슬픈 소식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남의 일로만 보고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보내면 결코 안 될 일이다.

 

  생명은 고귀하다. 그리고 중(重)하다. 종교적 측면에서도 불교, 기독교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종교에서 자살은 죄악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도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참지 못하고 자살하는 행각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하여 매우 경멸하였다.

 

  미세 먼지는 온통 하늘을 덮고, 새장 같은 아파트에 인정이 메말라 버린 척박한 사회구조..., 심지어 바로 옆집 이웃 간에도 모르고 지내는 인정 없는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사회가 그 얼마나 메말라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의 현장검증이 지난 6월 15일 경남 양산의 한 15층 아파트에서 있었다. 이달 8일 힘든 외벽 공사를 즐겁게 하기 위해 B씨가 틀어 놓은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순간적으로 분노 조절을 못한 서모(46)씨가 공업용 카터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에 의지하여 아파트 외벽작업을 하던 그 생명줄을 잘라 버림으로 인하여 엉뚱한 김모(46)씨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현장 재현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분노했고 어떤 사람은 “김모씨와 아내, 다섯 자녀 등 일곱 식구의 단란했던 행복과 남은 가족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거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해자가 사람이기를 거부한 행위를 뒤늦게 뉘우치고 눈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했지만 이미 죽은 자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이것이 서글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오늘날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일각의 지도층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유명인의 자살을 미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이 안 되면 한강 물에 빠져 죽자.” 또는 “~을 못 이기면 우리는 모두 낙동강에 빠져 죽자.”라는 무책임한 말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할 것이다.

 

  최근 10년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자살 통계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차제에 자살예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 연구, 생존의 권리에 대한 인권 홍보, 그리고 자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상담서비스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자살예방센터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자살은 인권 즉 생존의 권리를 저버리는 일이다. 인권의 파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점진적으로 인권을 회복하여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은 막아야 한다!

 

이 글은 2017년 인권기자로 활동할 때 소인이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상 부국강병을 이루어 우리 국민들을 잘 살도록 해 주신 은인이신

박정희대통령님 서거 39주기 추도식이 열리는 뜻 깊은 날이다.

난 사천비행장에서 열리는 중요행사를 포기하고 국립현충원에 참석하기로 작정했다.

새벽 오전 4시 30분에 기상하여 목욕재계를 하고 탑승하라는 지정 장소에 나갔다.

정확하게 5시 40분 버스는 육교 아래에 정차하여 나를 기다렸다.

탑승했다.

요소 요소에 정차를 하여 참여자를 태운 다음 평화관광은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달렸다.

차내에서 김밥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인솔리더가 회비를 받고 있었다.

이 때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이 발생했다.

그 자는 회비를 못 내겠다는 것이었다. 차안의 분위기는 일 순간에 흐려졌다.

의사소통이 불가한 사람이 탑승한 것이었다.

휴게소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를 기다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양심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그는 회비도 내지 않고 물, 떡, 김밥 등은 챙겨 먹었다. 아무도 그와 말을 걸지 않으려 했다.

그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동행해 주신 모든 분들이 너무 너무 고맙게 생각 되었다.

버스는 지체를 거듭하여 행사직전 11시경 충혼당 근처에서 우리들을 내려 주었다.

마침 하늘에서 박대통령님 양위분께서 피눈물을 흘리듯이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우리는 레지스탕스 천막에서 행사를 했다. 그리고 추모를 위하여 묘소로 올라 갔다.

일동 묵념을 하고 좌로 돌아 나오는데 노신사가 엉엉 울으셨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추도 행렬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충혼당 앞으로 이동하여 버스에서 중식을 해결했다.

회비를 내지 않고 깽판을 친 그 자도 밥을 먹고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도시락을 걷어차고 일순간에 달려들어 조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도 전체에 누를 끼칠까 싶어 꾹꾹 참았다.

우리는 바로 버스에 타고 다음 행선지인 구미 상모동 생가로 향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줄기차게 달렸다.

어디쯤 왔는지 가늠할 수 없는 지점에서 또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앞에 탄 어떤 노인이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나는 더욱 그를 주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노인은 운전석 쪽으로 엉금 엉금 가더니 버스는 잠시 간이정유소에서 정차하고 노인은 내렸다,

그리고 "가라"고 기사에게 소리 쳤다.

버스는 다시 한 참을 달려 구미 상모동에 접어 들었다.

비도 오고 날이 어두워 골목길로 잘 못 진입하여 빠져 나오느라 기사님이 십겁을 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애로를 극복하고 그래도 무사히 생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무리지어 국화 송이로 참배를 하고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어떤 분은 울면서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성 행동으로 보인다.

돔 영사기 앞에서 황당하게 내린 그분을 만나 깜짝 놀랐다.

배탈이 났었다고 말했다. 그 분은 양심이 고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간이 정류장에서 내린 후 숲속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다시 그 곳에서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오신 것이었다.

난 갑자기 존경심이 발동했다. 그는 또 기사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음료수를 전해 주었다.

짧은 시간에 관람을 완료하고 야외 화장실 근처에서 석식으로 시레기국밥을 먹었다.

이슬비 뿌리는 저녁에 오직 박정희대통령님을 추도하는 마음으로 모인 우리 일행은 한솥밥을 먹으며 끈끈한 정이 들었다.

원로에 서울까지 수없이 다니는 과정에 돌이켜보니 사연도 가지가지다.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리라. 차만 타면 대한문 앞에 혹은 광화문에 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리더들의 갖가지 애로사항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똑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회비마져 내지 않으려는 놈과 전체를 배려하는 배탈 난 분의 처사는 확연히 대비가 된다.

이윽고 버스는 목적지에 도달하여 역순으로 애국동지님들이 하차하시고 내가 마지막으로 내렸다.

기사님이 말했다.

"너무 너무 힘들요. 말도 많고 탈도 많고요. 솔직히 다음부터 다시는 오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사님 오늘 수고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내리는 순간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오늘 하루 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또한 배웠다.

깜깜한 밤이다.

박근혜대통령님! 부디 건안하십시요.

오늘도 속히 님을 구출할 수 있기를 염원해 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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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대구에서 명사초청 특별 강연회가 덕영치과 7층 강당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도 제가 참석해서 둘러 보니 몇가지 문제점이 보입니다.
우선 국민의례에서 애국가를 1절만 제창하는데 불만입니다. 4절까지 불러도 5분여초만 소요 됩니다. 박사모 의식은 꼭 4절까지 애국가를 제창해 주시길 정히 건의합니다. 또 장내를 둘러 보니 젊은 사람은 없고 대부분 초대된 인사가 60-80대 입니다. 우리는 어렵지만 젊은 사람도 균등하게 초대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내빈소개는 39도의 기온속에 완전 짜증 납니다.
민족중흥대학의 위장된 비지니스가 아닌지 심히 의아스럽습니다. 우리는 절대 이러지 맙시다.
솔직한 제소견을 감히 올립니다.
이런 구태의연한 행사는 역설적으로 부작용이 더 클 뿐입니다.

중의적 표현이란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두 개 이상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표현을 말한다.

중의적 표현의 종류

1. 어휘의 중의성~   한 단어의 의미가 두 가지 이상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동음이의어나 다의어에 의하여 보통 나타난다. 예를 들면, (겨울에 내리는 눈과 얼굴의 일부분인 눈), (낮의 반대어인 밤과 과일나무의 일종인 밤)  (선박과 복부의 배 그리고 과일의 배)등 많은 수의 어휘가 중의성을 나타낸다.

 

1) 동음이의어의 경우 ~ 소리는 같지만 뜻이 다른 단어를 이른다.

예시) 저 말을 보아라.

. 저 말(동물)을 보아라.

. 저 말(언어)하는 꼴 봐라!

. 저 말(연못에 자라는 식물)좀 보아라.

 

2) 다의어의 경우

예시) 손 좀 봐야 되겠다.

.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봐야 되겠구나.(중심의미로 사용된 경우)

. 기계가 고장나서 손 좀 봐야 되겠구나.(수리하다의 주변의미로 사용된 경우)

. 그 놈 손 좀 봐야 되겠구나.( 혼이나다라는 주변의미로 사용된 경우)

 

3) 사동문의 경우

예시) 어머니께서 동생에게 직접 약을 먹이셨다.

. 어머니께서 동생의 입속에 약을 털어 넣어 주셨다.(직접사동)

) 어머니께서 약을 동생에게 주어 동생이 먹게끔 했다.(간접사동)

 

어휘적 중의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문맥에 필요한 정보를 더 첨가하는 방법이 있다.

예시) 저 아주머니의 뚱뚱한 배를 보아라.

) 저 바다 위에 떠 있는 통통배를 좀 보아라.

) 저 먹음직스러운 배를 좀 보아라.

 

2. 구조적 중의성

문장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하여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으로 주로 수식어나 접속어에 의하여 중의성이 나타난다.

 

 

1) 수식어에 의한 중의성

수식어의 수식 범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에시) 예쁜 숙희의 동생을 만났다.

) 숙희가 예쁘다.(예쁜이 숙희를 수식)

) 숙희의 동생이 예쁘다.(예쁜이 동생을 수식)

 

2) 접속어에 의한 중의성

접속어의 의미 기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예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

) 나는 아버지와 둘이서 어머니를 만났다.

)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모두를 만났다.

 

3) 관형격 조사의 다의성

예시) 철수의 사진

) 철수가 찍은 사진

) 철수가 찍힌 사진

) 철수가 소유한 사진

 

4) 안 부정문의 중의성(,못 부정문의 중의성)

부정의 초점에 따라 부정 대상이 달라 짐

예시) 나는 영수를 몽둥이로 때리지 않았다.

) 영수를 몽둥이로 때린 사람은 내가 아니다.(나를 부정)

) 내가 영수를 때린 도구는 몽둥이가 아니다.(몽둥이를 부정)

) 나는 영수를 몽둥이로 때린 것은 아니다.(때린 것을 부정)

 

5) 부사어에 의한 중의성

, 모두, 많이 조금, 등의 부사어가 쓰이면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예시) 손님이 다 오지 않았다.

) 온 사람이 하나도 없다.(전체부정)

) 일부만 왔을 뿐이다. (부분 부정)

 

6) 중의적 이어짐

주어진 정보에 따라 홑문장이 되기도 하고 겹문장이 되기도 하는 경우

예시) 지난주에는 철수와 민수가 교실 청소를 했다.

) 함께 날마다 교실청소를 했다.(분해 불가능-홑문장)

) 둘이서 번갈아 날마다 교실 청소를 했다. (분해가능- 겹문장)

 

구조적 중의성을 제거하는 방법

1) 어순을 조절한다.

예시) 숙희의 예쁜 동생을 만났다.

) 철수와 민수는 나를 만났다.

 

2) 쉼표(,)를 사용한다.

예시) 예쁜 숙희의 동생을 만났다.

 

3)필요한 정보를 더 첨가한다.

예시) 나는 철수와 민수를 둘 다 만났다.

 

이 외에도 중의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 문맥을 통한 방법, -강세를 통한 방법,-부정하고자 하는 단어에 보조사 는, , 만을 결합하여 해소하는 방법도 있다.

 

 

6) 비유적 중의성

은유나 직유 등 비유적인 언어 표현으로 인해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해석 되는 것

예시) 그는 곰이다.

) 그는 미련한 놈이다.

) 그는 마 순박하고 듬직하다.

) 그의 별명은 곰이다 로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 진다.

 

비유적 중의성을 제거하는 방법

문맥에 필요한 정보를 더 첨가한다.

예시) 박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우 엄하시다. 그래서 학생들은 “박선생님은 호랑시다”라고 말한다.

 

* 중의적 표현의 특징

1) 해학이나 풍자 등에 활용된다.

2) 의미의 다양성으로 인해 문학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3) 의미를 한정하는 문맥이나 상황이 주어질 때는 중의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

 

소감문

 

 새마을 봉사단으로 파견 된지  1, 되돌아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충심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큰 꿈을 안고 여기 탄자니아에 왔지만

초기에 너무 낙담하여 중도귀국을 결행하려 다르살람 공항까지 갔다가 회귀했던 나는 확고한 신념에 역행하는 일들을 접하고는 좌절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짐승처럼 아우성쳤다.

 

  생각해보라!

봉사라는 이름으로 이국 만 리 타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도 부족한 시

간인데,

5주간 현지어 배우고, 임지에 오면 일을 해야지 일할 생각은 접고, 집을 구 한다는 명목으로 1개월 출근하지 않고, 귀국 1개월 전에 업무를 마치라고 하는데, 나머지 기간 동안 코이카에 정식 보고한 출장 및 휴가를 손꼽아 보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보라!

여기 봉사를 위해 일하러 왔는지? 아니라면 피크닉을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출근부까지 거짓으로 기재하는 그들에게 시니어들을 통제하여 확인 서명을 하라고 경상북도에서 지시 할 때는 솔직히 죽고 싶은 심정이었음을 회고한다.

 

  1주에 한 번 출근, 그것도 선교사 집에서 장시간 지내고 밥을 먹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1주에 한 번만 출근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할 때만 출근하고 퇴근해요!”라고  말하는

사진만 잘 찍어 잘 보고하면 믿는... “수고 하시죠...하고 비위만 맞추는...

정녕 이것이 봉사란 말인가?  

 

 

 사정이 이러하니 제대로 사업이 될 리가 없다.

 

비근한 예로 1주에 1회 시행하는 급식활동을 보면서 과거에 내가 받았던 60년대 매일 매일의 정성스런 급식(옥수수 죽, 우유)에 새삼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공법을 모르는 공사로 일시에 블록기초가 붕괴되는 현장을 바라보며 한국인임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프리젠테이션이나 당초 사업계획에 없던 사업을 살그머니 집행하는 공사내역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 할 이야기가 많다.

 

심지어 축구 선수단을 버스와 배를 태워 멀리 잔지바르 섬에 데리고 가서 숙박을 시키고 경기를 시키는 예산낭비를 왜?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새로 오는 봉사단원들은 다시는 이런 행동에서 탈피하여 근면한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

 

  나는 부임 이튼 날부터 순서에 준하여 도청과 군청에 인사를 마치고 바로 봉사활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20110810일 마지막 전 일까지 일한다.

예산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부지기수다.

 

 

  다만 내 생각과 내가 한 모든 일만이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다. 하지만도 진실은 언제인가는 통한다는 강력한 신념으로 운동화를 6 개나 소모할 정도로 노력은 했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는 없다.

 

  나는 5432그루의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녹화사업을 집행하였다. 부수적으로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그리고 진입도로를 개설했으며 배수로 작업을 구축하여 완전무결한 농장으로 만들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또한 나머지 시간에는 간호보건 사업을 도와 기초인구조사, 산악 오지를 돌며 방문 진료를 했었고,

삼삼오오 현지인들이 모인 곳이면 찾아가서 새마을 전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시행하는 나네나네 농기계박람회가 국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지게 20, 물지게 2, 벽돌지게 1, 모래지게 1, 과일운반용 지게 1, 모심기 논을 고르는 서래 1, 타작용 도리깨 1개 등을 제작하여 출품하였고, 자원봉사자로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새마을 세대로서 피부로 체험한 노하우를 모두 전수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자살은 막아야 한다. (인권과 직결된다)

                                 인권기자단 10기 손승호

 

 소중한 생명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유가 없다.

20176월 들어 연달아 자살시도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들의 마음을 한층 우울하게 한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6116:33분경 광주 북구 어느 아파트 12층에서 A씨가 자살을 시도 하였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보도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내용을 알아보니 지적장애 3급에 정신병원 입원경력이 있는 딸이 외출을 제지하는 어머니에게 불만을 품고 베란다로 뛰어내리는 순간 필사적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손을 잡은 것이다.

 

한 시민이 아파트 고층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하여 소방관과 경찰관이 출동하였으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가 문을 열어 주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15분이나 경과 후 아버지로부터 비밀번호를 알아 어렵사리 들어가니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의지한 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구급대원의 도움으로 끌어 당겨 사실상 죽은 목숨을 구한 기적적인 사례이다.

 

20살이 넘는 사람의 몸무게를 15분 넘게 버틴다는 것은 “내 딸은 내가 살려야 한다.”는 초인적인 모성애가 아니고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금주 수요일 2017,06.14에는 김해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78. )씨와 아들(45)가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하여 안방에서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이 모자가 주식투자에 실패(失敗) 했고 더군다나 보이스 피싱 까지 당했다는 사실관계를 확인중이란 점을 추정해 볼 때 실망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의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같은 날, 서울 동작구의 다세대 주택에서 농아 임모(65)씨도 2층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한 많은 인생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이 또한 알고 보니 농아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수백억 원대의 투자사기 세간에 떠도는 ‘행복팀’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에 불과했다.

 

어디 이 뿐인가?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자살사건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요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순간을 버티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도 있으련만...

 

 사람은 모름지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인권 중에서 생존의 권리를 포기할 때의 허망한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하지만도 생명은 고귀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자기의 생명도 함부로 내동댕이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

 

자살은 예방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자살은  위의 사례가 증명 하듯이 사기 등 타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예방장치와 그 활동이 필요하고 주변 사람들이 보듬고 위로하는 파수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자살은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는 참으로 곤란하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는 자살의 슬픈 소식을 강 건너 불 보듯이 남의 일로만 보고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보내면 결코 안 될 일이다.

 

생명은 고귀하다. 그리고 중()하다.

종교적 측면에서도 불교, 기독교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종교에서 자살은 죄악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도 힘든 인생을 살았지만 참지 못하고 자살하는 행각은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하여 매우 경멸하였다.

 

미세 먼지는 온통 하늘을 덮고, 새장 같은 아파트. 인정이 메말라 버린 척박한 사회구조.

심지어 바로 옆집의 사람들 간에도 모르고 지내는 인정머리 없는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사회가 그 얼마나 메말라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의 현장검증이 06.15일 경남 양산의 한 15층 아파트에서 있었다. 힘든 외벽 공사를 즐겁게 하기 위해 B씨가 틀어 놓은 음악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순간적으로 분노 조절을 못한 서모(46)씨가 공업용 카터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에 의지하여 아파트 외벽작업을 하던 그 생명줄을 잘라 버림으로 인하여 엉뚱한 김모(46)씨가 바닥으로 추락하여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현장 재현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분노했고 어떤 사람은 “김모씨와 아내, 다섯 자녀 등 일곱 식구의 단란했던 행복과 남은 가족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거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해자가 사람이기를 거부한 행위를 뒤늦게 뉘우치고 눈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연발했지만 이미 죽은 자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이것이 서글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오늘날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일각의 지도층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는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유명인의 자살을 미화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이 안 되면 한강 물에 빠져 죽자.” 또는 “~을 못 이기면 우리는 모두 낙동강에 빠져 죽자.”라는 무책임한 말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할 것이다.

 

최근 10년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분석해 보면, 자살 통계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차제에 자살예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 연구, 생존의 권리에 대한 인권 홍보, 그리고 자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상담서비스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자살예방센터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자살은 인권의 문제이다.

인권의 파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점진적으로 인권을 회복하여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살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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