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 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 이런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 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1946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에 현인이 부른 이 노래는 일제 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젊은이들의 슬픔과 한(恨)을 담은 노래로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노래였죠. 

고모령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자그마한(?) 고개인데 이에 얽힌 두 가지 버젼의 전설이 있죠.

하나는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의 전설이고, 하나는 거의 실화로 봐야겠죠.

먼저 전설의 고향으로 가볼까요.

옛날 고모령에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가 살고 있었죠. 

하루는 스님이 지나가다가 혼잣말로 한마디 했죠.

“이 집이 가난한 것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아서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계속 산을 쌓았는데,

그 산봉우리가 바로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 세 개의 산봉우리라고 하네요. 

그런데 그후 산을 쌓던 두 남매가 서로 높이 쌓으려고 시샘하여 싸우게 되고, 

이 모습에 실망한 어머니는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에 집을 나와버렸죠. 

집 나온 어머니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 길이고, 고개 정상에서 집을 뒤돌아 본 것이 ‘어머니가 뒤돌아봤다’고 해서 고모령(顧母嶺)이 되었다는 것이죠.
(顧 :돌아볼 고)

이번에는 실화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일제 강점기 때 고모역은 징병으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의 집결지였고, 이들이 탄 열차는 반드시 고모령 고개를 넘어가야만 했는데··

그 당시 증기기관차 성능으로는 높은 경사의 고모령을 한 번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고모령에서는 열차가 더디게 고개를 넘어야 했고, 이 때 징병가는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든 어머니들로 그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하네요.

바로 불후의 명곡 ‘비 내리는 고모령’의 탄생 계기가 된 것이죠.

1991년 수성구 의회에서 이곳에 노래비를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에 이 노래비를 취재하다 열차를 피하지 못해 순직한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문호(당시 29세)의 불망비도 함께 세워져 있죠.

참고로 1925년에 문을 연 고모역은 1970년대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기차역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열차는 정차하지 않고 화물차만 머무르는 간이역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봄날이든,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여름날이든,

언제 기회가 되시는 회원님들은 이 고개를 걸어 넘어가 보면서 전설과 노래에 얽힌 어머니의 한(恨)과 애틋한 민족 정서를 느껴보는 것도 어떨지··

사람들의 추억 한켠에 자리하던 옛 서울역은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옛 남원역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옛 반야월역은 작은 도서관으로 재탄생하여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철조망에 갖힌 고모역 또한 '비내리는 고모령'을 동기로 한 노래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바람을 가져보네요.

'비내리는 고모령'뿐만 아니라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베사메무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한국 대중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故현인 선생의 노래 박물관으로··

마지막으로 박해수 시인의 '고모역'이란 시 한 수 소개하고 마칠까요.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 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열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역이다

깊어가는 만추에 고즈녁한 고모령의 추억을 한번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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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던졌던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 
 
첫째
질문의 정답은
'지금 이 순간'이고, 
 
둘째
질문의 정답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고, 
 
셋째
질문의 정답은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
이라고 합니다. 
 
-‘톨스토이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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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영국 병사 두 명이 끙끙대며 커다란 통나무를 옮기고 있었다. 통나무가 워낙 무거워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병사들의 지휘관이 바위에 걸터앉은 채 호통을 치고 있었다.

“젊은 녀석들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어서 옮기지 못해!”  

바로 그 때 말을 타고 지나던 웬 신사가 지휘관에게 물었다.

“이보시오, 당신이 함께 병사들을 거들어 주면 금방 옮길 텐데 왜 가만히 있소.”  

그러자 지휘관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상관입니다. 일은 병사들 몫이오.”  

“흠, 그런가? 그럼 나라도 도와 줘야겠군.” 
 
신사는 윗옷을 벗고 병사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통나무를 옮겨 놓았다. 그러곤 다시 말에 올라탔다.  

그제야 지휘관이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오?”  

그때 신사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또 통나무 옮길 일이 있으면 총사령관을 부르게”  

그 순간 지휘관과 병사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신사는 바로 영국 군대의 총사령관 '웰링턴' 장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말단 병사들과 함께 통나무를 날랐다. 그렇게 함으로써 게으른 지휘관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 준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신분이나 권력을 내세우며 한껏 거들먹 거리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아무리 계급이 높고 신분이 고귀해도 구태여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인다. 그럼으로써 더욱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책 읽은 남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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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 ‘벨라미’, ‘죽음처럼 강하다’와 같은 인생의 참된 가치를 일깨우는 소설들로 명성을 얻은 작가입니다.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쓰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커다란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습니다.

그의 삶은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지중해에 요트가 있었고, 노르망디에 저택과 파리에는 호화 아파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도 많은 돈이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1892년 1월 1일 아침,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병자가 된 그는 1년 동안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다가 43세를 일기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말년에 반복해서 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객관적인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돈, 명예, 권력…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해도,
모두가 부러워한다 해도,
본인 마음에 만족이 없고 공허하기만 하다면...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삶일 뿐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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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대답" 
 
사자가 양을 불러, 자기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착한 양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자는 "이 바보 같은 놈!" 하고는 양을 잡아 먹었다.  
 
사자는 늑대를 불러 또 물었다. 앞에서 양을 보았던 늑대는
"아뇨" 하고 대답했다. 이에 사자는 "이 아첨꾸러기 같은 놈!" 하고는 늑대도 잡아 먹었다. 
 
마지막으로 사자는 여우를 불러 물었다.
여우는 양도 보고 늑대도 보았다.
바보같지도 않으면서 아첨꾸러기 같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걱정하던 여우는 사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감기에 걸려서 전혀 코가 말을 듣지 않아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사자는 이쪽도 저쪽도 모두 듣기 싫은 말이지만 전혀 새로운 대답을 한 여우의 말에 일리도 있고, 듣기 싫은 말도 아니고 해서 보내주고 말았다. 
 
살다보면 말하기 불편할 때가 있다.
양쪽다 좋지않은 답을 요구하면서 이거냐, 저거냐 물어 볼 때가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꼭 대답을 할 필요는 없다.
대답을 해서 오히려 손해보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때에는 네, 아니요, 보다 여우처럼 지혜롭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지혜로운 대답은 모두가 사는 길이다." 
 
옛날 어떤 나라에 사람들을 웃기며 사는 어릿광대가 있었다.
그는 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으로 왕과 신하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공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왕이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려버렸다.
왕은 그의 경솔한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왕은 자기도 모르게 그 광대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왕은 마음에 진정을 찾은 뒤 자기의 명령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왕은 이미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 명령을 다시금 돌이키는 것은 왕의 권위에 어긋나는 일이라 어쩔수 없었다.  
 
왕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사형에 처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줌으로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로 했다.
어릿광대가 왕 앞에 불려왔다.
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너의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 그러니 네가 죽을 방법을 스스로 선택해서 내게 말하도록 하라.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잘 생각해서, 네가 죽을 방법을 내게 말하도록 하라!" 
 
어릿광대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해가 서산에 자취를 감추었다.  
 
어릿광대는 다시금 왕 앞에 불려왔고, 왕은 그에게 물었다.
"자, 이제 죽을 각오가 되었지? 어디 죽을 방법을 말해보아라." 
 
그때 어릿광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저는 폐하의 은혜로 제가 죽을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늙어서 죽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만일 어릿광대가 왕앞에서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고 불평을 말했다든지, 원망을 했다든지, 살겠다고 도망을 쳐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왕의 노여움을 사서 정말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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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Belgium)의 브뤼허(Bruges)시의 그루닝 미술관(Groenings Museum)에는 네덜란드 자연주의 화가 제라드 다비드(Gerard David)가 그린 참나무 판넬의 "캄비세스의 재판" 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 몇점이 있다.

이는 1487~1488년경 벨기에의 브뤼히시 당국이 재판관 사무실(그당시 부시장실)에 걸어둘 그림을 화가 제라드 다비드에게 요청해 그린 그림이다.

그림속의 내용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os 기원전484~425경)의 역사" 라는 책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B.C. 6세기의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한 그림인데 페르시아왕 캄비세스(Cambyses)는 뇌물을 받은 부패한 당시 왕실 재판소의 판관인 시삼네스(Sisamnes)가 캄비세스왕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형벌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이다.

왕은 시삼네스에게 "생피박리형" 을 명령하는데 이 형벌은 사람이 살아있는 형태에서 가죽을 벗기는 참아 눈으로 볼 수 없는 형벌이다.

그 당시 캠비세스왕은 이렇게 벗긴 가죽을 말린다음 재판관 의자에 깔아놓고 시삼네스의 아들인 오타네스를 재판관으로 임명한 후 이제는 네가 판관이니 죽은아비의 말린가죽위에 앉아 아비의 상황을 거울삼아 항상 고민하고 다시는 비리와 의혹이 없는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왕의 명령이었다.

어쩌면 그당시 이러한 잔인한 그림을 그리게하여 벨기에 브뤼허 재판관사무실에 걸어두게한 것 또한 그 당시에는 부르군디 마리의 갑짝스런 죽음이후 왕위계승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질서와 함께 잠재우기 위한 방편일수도 있었다.
 
캄비세스왕이 내린 형벌은 참혹하기 그지없는 것인데 이는 재판관의 부정 부패를 그 당시의 국가와 사회에서 가장 악랄한 범죄로 봤기 때문이고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국가에서 가장 공정하고 공평해야할 조직이 사법부와 준사법부 기관들이다.
이와함께 언론과 공영방송 또한 사실을 바탕으로 공정한 보도가 이루어져야한다.
요사이 현정권의 청와대는 물론 여당의 실세들과 윗선의 권력들의 부패는 도를 넘고있다.

사회에서 사법부와 준사법부인 검찰 언론의 부패는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하며 대다수 국민들을 힘들게하고있다

그런 권력들은 요사이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정부기관의 각종예산에 빨대를 깊게 꽂아 마구빨아들이고 있으며 먼저보는게 임자인듯 재산을 불리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와 그 실세들의 부패는 법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이는 모두 한통속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때문이다. 이러한 비리들이 계속 이이지고 수많은 게이트성 사건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법무장관 추미애를 앞세워 윤석열총장 죽이기에만 매달려있는 현정권 속에서 윤총장인들 힘을쓸수 있겠는가

비리의 중심에 있는 윤미향 최강욱 등이 국회의원으로 버젖이 앉아있는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캄비세스 재판의 그림을 떠올리며 우리법정과 대법원과 청와대 국회에도 이 그림의 복재판이라도 걸어놓고 판사들과 위정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어야 할 때다.

-靑松愚民 松軒-

 

지조있는 위인을 그리며코로나19가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국내외로 문제가 산적했는데 해결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신뢰받는 인사도 마땅히 보이지 않아 답답한 때 옛 고사가 생각나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오롯한 품성으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지조있는 위인을 그리며 함께 나눕니다.

 조선 말기의 왕족인 이하응은 조선왕조 제26대 고종의 아버지입니다.
이하응의 아들 명복이 12세에 제26대 고종으로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하였습니다.

그런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금군 별장(종2품 무관) 이장렴이 말렸습니다.화가 난 이하응이 소리쳤습니다.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 일개 군관이 무례하구나!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추태를 부리고 외상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뺨을 때린 것이니 그리 아시오.

"세월이 흘러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되어 이장렴을 운현궁으로 불렀습니다.
이장렴은 부름을 받자 죽음을 각오하고 가족에게 유언까지 했습니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물었습니다.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

"이에 이장렴은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대감께서 지금도 그때와 같은 못된 술버릇을 갖고 있다면 이 손을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그리고 자기 오른손으로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좋은 인재를 하나 얻었다.

"흥선대원군은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가 돌아갈 때는 친히 문밖까지 나와 배웅했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위대장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으로 모시도록 하여라."무장답게 목숨을 걸고 지조를 지킨 이장렴도 대단하지만 인재를 알아본 흥선대원군 또한 훌륭합니다.

작금에 우리의 현실을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류에 편승하여 눈치나 보는 현대판 아부군상이 설쳐대는 현실 정치를 마주하면서 폭 넓은 아량과 위민정신으로 국론을 통합하고 국민을 단결시킬 진정한 정치를 펼칠 분을 기대해 봅니다.



오래 전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런던의 템스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귀퉁이에 한 거지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신통치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거지노인이 벗어놓은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웬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거지노인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거지노인은 다 떨어진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신발도 떨어져서 너덜너덜했습니다.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해서 덥수룩한 상태였습니다.
보기에도 처량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측은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하지만 지금 제 수중에 준비된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잠시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거지노인은 잠시 쉬기도 할 겸해서 그 낯선 외국인에게 낡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외국인은 그것을 손에 쥐고서
천천히 활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걸음을 멈추고서는 외국인이 연주하는 음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두 곡이 끝난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거지노인은 자기가 벗어놓은 모자를 들고서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모두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돈이 수북히 쌓였습니다.
그것도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이 아니었습니다.
돈의 단위가 높았습니다.
모두가 지폐를 꺼내어서 모자에 넣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서 경찰관이 놀라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경찰관마저도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어 그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거지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이제 연주가 끝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곳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파가니니이다, 
그 유명한 '파가니니'다!"

이탈리아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바이올린의 마술사'라고도 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명연주가입니다.

그 사람이 런던에 연주차 왔다가 호텔에 머물러 있으면서 잠시 시간을 내어
템스 강변을 산책하기 위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쌍한 거지노인이 바이올린을 힘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 대신 몇 곡을 연주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명연주자 파가니니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이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잡혀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는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거지노인이 그것을 연주할 때는 형편없는 소리였지만,
파가니니의 손에 그것이 들려져서 연주되어질 때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악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연주하려 들지 말고
전능하신 분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멜로디는
지극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비록 볼품없는 악기라 할지라도  
전문가의 손에 들려지면
그것의 존재가치는 이처럼 180°로 달라져 버립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누구의 손에 맡겨지고 연주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과 행복 그리고 미래가 결정됩니다.

내 악기를 탓하지 마십시오.
참으로 명연주자이신 우리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깁시다.

주님은 우리의 생애를 연주하시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주님 앞에 여러분의 생애를 맡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못난 모습이 남김없이 드러나도록 
내 스스로 연주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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