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陵君의 境遇

楚나라와의 军事同盟을 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魏나라와의 군사 동맹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平原君은, 魏나라와의 교섭만은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魏王은 아우인 信陵君을 누구보다도 신임하고 있는데, 王의 신임이 그토록 두터운 信陵君은 平原君의 손아래 同婿가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평원군은 신릉군의 고매한 인격에 매혹되어 자기 妻弟와 结婚을 시켰던 것이다. 

평원군은 신릉군을 찾아와 군사동맹의 重要性을 강조하니, 신릉군은 즉석에서 찬동하고, 위왕의 허락을 간단히 받아 내었다.
 "晋鄙(진비)장군으로 하여금 국경 지대인 업(邺)에 10만 대군을 주둔시켜 두었다가, 秦이 귀국을 침략해 오기만 하면 즉각 출동시켜 귀국을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로써 평원군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귀국하였다.

그러면 위의 신릉군이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던가. 

신릉군은 본시 兵学家로써, 그 역시 食客들을 3천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어서, 국민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겸손하였고, 어딘가에 贤士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리를 멀다 않고 몸소 찾아가 자기 집으로 모셔 오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大梁城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侯生이라는 70객 老人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일부러 그를 찾아가 자기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애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侯生 老人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말한다.
 "다 죽게 된 내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공자께서는 나를 데려 가려고 하시오. 
나 같은 늙은이를 찾아 주신 뜻은 고맙지만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어 주시오."
 신릉군은 자기 집으로 같이 가 줄 것을 재삼 호소했으나, 후생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신릉군은 어쩔 수 없이 목록 집에서 술이라도 한잔씩 나누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신릉군은 그 자리에서도 후생 노인을 깍듯이 상좌에 모셨다. 
후생 노인은 신릉군의 겸허한 태도에 깊이 감동되어, 술이 한잔 들어가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 자신은 공자를 따라갈 생각이 없지만 그 대신 좋은 친구 한 명을 소개해 드릴테니, 그 사람을 한번 만나 보시면 어떠하시겠소."
 신릉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오나, 先生께서 천거하시는 분이라면 꼭 찾아가 만나 뵙겠습니다. 
그 어른이 지금 어디 계시옵니까?”  

"여기서 동쪽으로 십리쯤 가면, 푸주간이 하나 나올 것이오. 
그 푸주간에서 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朱亥라는 사람이 있소. 
세상 사람들이 그를 몰라 주어서 칼잡이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그 사람이야말로 쓸 만한 인물일 것이오." 
푸주간에서 칼잡이로 있다면 白丁이라는 소리다. 백정이란 누구나 멸시하는 贱民이다. 
그러나 신릉군은 평소부터 직업에 대한 贵贱观念 같은 것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정신이 썩어 빠졌으면 그 사람이 바로 천민이요, 아무리 천민이라도 정신이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귀족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백정이라는 직업은 전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후생 노인이 천거하는 사람이라면 예사 인물이 아닐 것 같아서. 
信陵君은 그 길로 주해라는 사람을 찾아 나셨다. 동쪽으로 십 리쯤 말을 달려가니 말하던 푸주간이 나왔다. 
40쯤 되는 건장한 청년이 고기를 썰고 있었다. 
"말씀 좀 물어보겠습니다. 
이 가게에 혹시 주해라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朱亥요, 무슨 일로 찾아 오셨소?" 
주해라는 사람은 대답이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마치 발길로 차기라도 할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주해의 인상이 무척이나 순박하게 느껴져서 신릉군은 웃으며 말했다. 
"실은 侯生 노인의 소개로 선생을 일부러 찾아 뵈러 온 것입니다." 
하고 말하며 자기 소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자기 집으로 가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주해는 코방귀만 뀔 뿐 상대를 하려 하지 않았다.
 "후생 노인이 망령이 드신 모양이구료.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오? 그렇게 할 일이 없거든 집에 돌아가 낮잠이나 자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
 애시당초 근접을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신릉군은 어쩔 수 없이, 코방귀만 맞고 돌아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주해라는 인물에 이상한 매력이 느껴져서 신릉군은 그 후에도 사오 차례 찾아갔다.
 그러나 주해는 번번이 퉁명스럽게 내쏘더니 나중에는 숫제 대답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는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秦나라의 庄襄王은 魏나라가 趙나라를 위해 魏军을 자기네의 국경 지대에 10만명이나 군대를 주둔시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노하면서, 
魏王에게 다음과 같이 무시무시한 협박장을 보내 왔다. 

"우리는 머지 않아 군사를 일으켜 趙都 邯郸城을 점령할 생각인데, 
당신네가 趙를 돕기 위해 邺에 10만 대군을 두고 있다니, 
만약 당신네가 조를 돕는다면, 우리는 방향을 돌려 당신네부터 정벌할 것이오. 
그런 줄 알고, 멸망하지 않으려거든 군사 행동을 일체 삼가하시오." 
선전 포고와 다를 바 없는 협박장을 받아 보고, 
위왕은 몸을 떨며 일선에 나가 있는 晋鄙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엄명을 내렸다.
 "趙를 도와 주려다가는 우리가 秦에게 멸망할 판이니, 
말로만 도와 준다고 하면서 군사 행동은 일체 삼가하도록 하시오." 
일종의 伪装外交였다. 

그런데 信陵君은 그 사실을 알고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신릉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魏王에게 直谏한다. 
"秦은 六国을 송두리째 말아 먹을 생각에서 우선 趙를 정벌하고, 그 다음에는 우리를 정벌하려는 各个击破(각개격파)의 전법을 쓰고 있는 것이옵니다. 
秦은 예의도 모르고 신의도 없는 이리 같은 오랑캐 족속들이온데, 
우리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어찌 생명인들 유지할 수 있으오리까!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趙를 비롯하여 韩, 燕 등 모든 국가들과 힘을 합하여 秦을 철저하게 응징시켜 버려야 하옵니다."

 그러나 魏王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秦에게 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나하나의 힘은 약할지 모르오나 여섯 나라가 힘을 합하면 秦을 멸망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옵니다. 
军事同盟까지 맺은 이 마당에 와서 그것을 배신하면 국가 간의 신의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焦土化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내일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내일은 내일인데, 내일을 위해 오늘의 멸망을 자초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魏王은 끝끝내 军事同盟을 배신할 결심이었다.
신릉군은 안타깝고 괴롭기 짝이 없었다. 

마침 그때 趙나라에서 急使가 平原君의 편지를 가지고 달려왔다. 
"나는 신릉군은 信义있는 사람인 줄로 믿고 처제와 결혼까지 시켰던 것이오. 
우리는 지금 秦军에게 도성이 함락될 판국에, 당신네는 軍事同盟까지 맺어 놓고도 우리를 도와줄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正义智士로 자처해 오던 신릉군이 이렇게까지 배신을 할 줄은 몰랐소. 

만약 우리가 이리 같은 秦나라의 노예가 된다면, 당신네도 머지 않아 우리와 똑같은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니
应援軍을 긴급히 출동시켜 주기 바라오. 

마지막 부탁이요."

...♡계속 22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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