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어쨌건 어느 날 吕不韋는 莊养王의 부름을 받고 입궐을 서둘렀다.
"大王殿下! 불러 계시옵니까?."
여불위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자, 장양왕은 반갑게 맞아 말한다.
"丞相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王이 臣下에게 부탁이란 당치 않는 말이었다. 그렇건만, 어려서 쫓긴 병아리 같아, 吕不韋에게는 王의 행세를 하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무슨 분부이시온지, 하명하시옵소서."
"승상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내가 볼모로 잡혀 가서 趙王에게 7년 동안이나 가혹하게 박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오.
따라서 다른 나라는 내버려 두더라도, 趙나라만은 기어이 원수를 갚아야 하겠소.
丞相은 나의 심정을 짐작하여, 趙나라를 정벌하기로 합시다."
荘襄王이 趙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러면 어명에 따라 곧 군사를 일으켜, 趙나라를 치기로 하겠습니다."
吕不韋는 물론 武将은 아니다.
그러나 승상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려면 무엇인가 뚜렷한 공적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다행히 秦나라에는 기라성 같은 名将들이 수다하다. 여불위는 그들을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미리 주물러 두었으므로 军事를 일으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싸우면, 우리가 승리할 자신은 있겠지요."
"趙나라를 송두리째 멸망시키기는 당장은 어려울 것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국경 지대의 城邑 몇 개쯤 빼앗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원한을 다소나마 풀어 주면 고맙겠소이다."
吕不韋는 머리를 조아리며, "조속히 군사를 일으켜, 宸襟(신금)을 평안하게 해 드리겠나이다."
여불위는 물러나오는 길로 蒙骜, 章邯, 王剪 등의 세 장수를 한자리에 불러 놓고 명한다.
"우리는 어명에 의하여 趙나라를 쳐야 하게 되었소. 몽오蒙骜 장군은 元帅가 되고, 章邯 장군과 王剪 장군은 左右翼 사령관이 되어, 军事 20만을 줄테니 趙를 치도록 하시오.
세분이 합심하면 승리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세 사람에게 각각 前祝金을 두둑하게 건네 주며 이렇게 격려하였다.
"나는 세 장군의 풍부한 지략과 탁월한 전술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그래서 세 장군에게 특별히 중책을 맡기는 터이니, 일치 단결하여 기필코 승리하도록 하오.
이번에 승리하고 돌아오면, 세 분의 명성은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자자손손까지 무한한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오."
吕不韋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재주가 남달리 비상하여, 엄격할 때에는 秋霜烈日같이 엄격하다가도, 怀柔策을 쓸 때는 어머니 보다도 자애로운 일면이 있었다.
세 장수는 과분한 知遇에 크게 감동되어,
"丞相의 뜻을 받들고, 신명을 다해 기필코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굳은 맹세를 남기며 장도에 올랐다.
秦나라의 20만 大军은 3 부대로 나누어 趙나라로 쳐들어가는데, 骑马는 산야에 넘치고, 旌旗는 하늘을 덮어서, 그 위풍이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다.
趙나라는 戦国七雄 중에서 齐, 楚 등과 함께 비교적 강한 국가이기는 하지만, 秦나라와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을 두고 秦에게 수없이 시달려 왔기 때문에, 秦军이 또다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趙의 军事들은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집어 먹었다.
그리하여 秦军은 이렇다 할 싸움조차 하지 아니 하고, 불과 한 달 남짓 사이에 37개 城을 무혈점령하고, 趙나라의 要冲인 太原城을 포위해 버렸다.
태원성이 함락되는 날이면, 도성인 邯郸이 위태로와질 형편이었던 것이다. 태원성을 포위하고 십여 일이 경과하자, 이번에는 태원 성주가 백기를 들고 제 발로 걸어 나와, 蒙骜 장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趙王은 그 비보를 받고, 대책 회의를 긴급히 열었다.
"태원성이 함락되어, 이제는 도성이 위태롭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승상 蔺相如가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城垒를 높이 올려 쌓고, 외곽으로 못(池)을 깊이 둘러 파서, 적이 접근을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적은 도성을 포위하더라도 식량 관계로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오니, 우리는 그 사이에 魏와 楚에 사신을 보내 應援军을 청하도록 해야 합니다."
왕은 그 말을 옳게 여겨, 军事를 총동원하여 늪을 파고 성누를 높이 올려 쌓았다.
秦军이 한단성으로 진격해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진군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조군은 죽은 듯이 성안에 틀어박힌 채 일체 응전을 하지 않았다. 인상여가 예언한 대로 진군은 20만 大军을 끌고 왔기 때문에 군량이 몹시 궁핍하였다.
게다가 때마침 겨울 철이어서 군사들은 冻伤과 혹한으로 연달아 죽어 나가고 있었다.
몽오 장군이 그 사실을 본국에 보고하니, 본국에서는 <37개 성을 점령한 것 만으로도 흡족하니, 즉시 회군하라>는 왕명이 내려 왔다.
몽오는 <명년 봄에 다시 와서 한단성을 기필코 함락시키고야 말겠노라>는 장담을 남기고 돌아오니, 荘襄王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우선 37개 성을 점령한 것 만으로도 나의 원한이 많이 풀렸소.
吕丞相과 将军들이 모두 힘을 합쳐 나의 뜻을 받들어 준 결과이니 고맙기 그지 없소이다."
이리하여 吕不韋는 丞相으로서 공로를 크게 세운 셈이 되었다.
여불위는 세 장군을 따로 불러서, 그들의 전공을 극구 치하해 주기를 잊지 않았다.
그 모양으로 진나라의 국세가 크게 확장되어 나가자 吕不韋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吕不韋는 재수가 억세게 좋은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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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楚汉志.18●
2020. 5. 2.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