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陵君은 그 편지를 받아 보고 나서는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食客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비장한 각오로 호소했다. 
"大王께서는 軍事同盟까지 맺어 놓고도 趙의 위급을 보고도 구하려고 아니 하시니, 우리들이라도 들고 일어나 趙를 도와 주기로 하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것이 우리들의 本怀(본회)이니 뜻 있는 분은 나와 행동을 같이 해주기 바라오."
그러자 食客들은 千에 하나같이 주먹을 불끈 쥐며 비장하게 외친다. 
"公子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저희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을 같이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3천여 명의 食客들이 맨주먹으로 수백 대의 수레에 나눠 타고 趙나라로 떠나려고 하는데, 별안간 侯生老人이 나타나 손을 높이 들어 出发(출발)을 저지하며 말한다. 
"公子께서는 出发을 멈추시고 소생의 말을 잠깐만 들어 주옵소서." 

信陵君은 초조한 마음으로 侯生노인에게 말한다.
 "우리들은 지금 갈 길이 멀고 바쁜데, 先生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아무리 바쁘셔도 제 말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 공자께서는 지금 선비들을 몰고 나가 맨주먹으로 秦軍과 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호랑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리까."
 "그렇다고 軍事同盟을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물론 군사동맹은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国境에 주둔 중인 晋鄙(진비) 장군의 10만 军事를 公子께서 직접 물려받아 가지고 싸우셔야 합니다." 
"진비 장군이 나에게 軍事를 물려줄 리가 없지 않소." 
"大王께서 가지고 계신 兵符를 가지고 나가시면 됩니다. 
大王께서는 그 병부를 寝殿에 보관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兵符를 훔쳐 가지고 나가셔서 진비 장군의 군사를 물려받도록 하시옵소서." 

(兵符란, 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할 때에 王이 证牌를 둘로 쪼개서, 한 개는 将军이 가지고 나가고 한 개는 王이 갖고 있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辞令狀 같은 것이다.)

信陵君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트이는 것만 같았다.
 "참으로 좋은 方策을 알려 주셨소이다. 
그러나 대왕께서 침전에 숨겨 두신 병부를 무슨 재주로 훔쳐 낼 수 있겠소?"
 "大王의 총애를 받고 있는 如姬后宫은, 그것을 쉽게 훔쳐 낼 수 있을 것이옵니다. 公子께서는 일찍이 여희 후궁의 부친 원수를 갚아 드린 일이 계셨기 때문에 공자께서 직접 부탁하시면, 여희는 두말 없이 병부를 훔쳐 낼 것이옵니다." 
그도 그럴 성 싶었다. 

여희는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信陵君은 의협심을 일으켜 원수를 갚게 해준 일이 있었던 것이다. 
信陵君은 侯生 노인의 지시대로, 如姬 後宫을 만나 부탁하니, 여희는 그날 밤으로 兵符를 훔쳐 내왔다.
 신릉군은 크게 기뻐하며 병부를 가지고 일선으로 달려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후생 노인이 옷소매를 움켜쥐며 다시 말한다. 
"장수가 일선에 나가 있을 때에는, 사정 여하에 따라서는 王命에 服从(복종)하지 않아도 무방할 경우가 있사옵니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부득이 晋鄙 장군을 죽여 없앨 수 밖에 없겠으니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푸줏간의 朱亥라는 청년을 꼭 데리고 나가시옵소서." 
"그 사람이 나를 따라가 주겠습니까?" 
"公子께서 직접 찾아가 사정을 말씀하시면 반드시 따라 나설 것이옵니다." 

신릉군은 후생 노인의 말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부랴부랴 푸줏간으로 주해를 만나려 갔다. 
주해는 마침 푸줏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릉군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여전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오늘은 왜 또 오셨소?" 
하고 대뜸 쏘아 붙인다. 

신릉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찾아온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주해는 신릉군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옷을 갈아 입으며 결연히 말했다. 
"그런 일로 오셨다면 따라 가겠습니다." 
义(의)를 위해서는 주저함이 없는 주해였다. 

주해와 함께 길을 떠나려니까, 후생 노인이 전송을 따라 나선다. 
"빨리 가야 하겠으니, 선생은 그만 돌아가시오." 
후생 노인과 作别을 고하는 신릉군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생 노인은 그 눈물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묻는다.
 "공자께서는 죽음이 두려워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납니다." 
"첫째는 大王의 뜻을 거역하는 不忠 때문이고, 둘째는 국가에 공로가 많은 晋鄙 장군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슬픔 때문입니다." 
후생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진실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忠诚에도 大忠이 있고, 小忠이 있는 法이옵니다. 
대충을 위해 소충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옵니다. 
大王께서도 公子의 높으신 뜻을 언젠가는 이해해 주실 날이 반드시 계실 것이니 안심하고 떠나시옵소서." 
그리고 10여리를 따라 나오다가 作别人事를 고한다. 
"소생도 公子를 따라 가고 싶사오나 너무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겠기에 이만 돌아 가겠습니다. 
그러나 公子를 따르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공자께서 晋鄙 将軍을 살해하고 군사를 넘겨 받으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저는 공자의 成功을 비는 마음에서 그날로 목숨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侯生노인은 그 後, 자기가 약속한 대로 自杀(자살)을 하였다) 

信陵君은 부랴부랴 일선으로 달려가서 진비 장군에게 兵符을 내보이며 军事를 물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晋鄙 장군은 군대를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国境을 수비하는 것은 大王께서 나에게 부과하신 거룩한 책무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诏书(조서)도 없이 兵符 한 조각만 가지고 오셔서 다짜고짜로 군대를 맡겨 달라고 하시니, 제가 그 말씀을 어떻게 믿고 군대를 맡겨 드리겠습니까?"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朱亥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몸에 숨겨 두었던 40斤짜리 铁槌를 꺼내어 진비 장군을 살해하고 10만 대군의 사령관으로 취임하자, 모든 군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布告文을 발표했다. 

"너희들 중에 父子가 같이 나온 사람이 있거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兄弟가 같이 나온 사람이 있거든 兄은 돌아가고 아우만 남으라, 
그리고 외아들인 사람도 집에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도록 하라." 
그 모양으로 민심을 돌려놓으니, 10만 軍事가 8만으로 줄어 들었다. 그러나 8만 군사들은 지휘관의 자애로운 온정에 감동되어 사기가 크게 앙양되었다. 

그 무렵, 秦軍은 趙都 邯郸城(한단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성 안에 우박같은 攻击(공격)을 퍼부어서, 邯郸城의 함락은 경각에 처해 있었다.

...♡계속 23회로~~~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철스님 일화  (0) 2020.05.05
● 楚汉志.23●  (0) 2020.05.05
❤삶에서 꼭 기억 할 일❤  (0) 2020.05.04
● 楚汉志.21●  (0) 2020.05.02
● 楚汉志.18●  (0) 2020.05.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