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의 발전은 요원한 일인가? 회갑맞은 안강읍승격 61주년에 부쳐

  2010년 05월 29일 (토) 19:43:09 편집부 press@srbsm.co.kr  
     
▲ 손승호 시민기자

2010년 5월20일은 안강이 읍으로 승격한지 61주년이 되는 의미 깊은 날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태어난 간지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뜻하는 61세가 되는 생일이다.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회갑(回甲)잔치가 성대하게 열리는 날이지만 안강읍에서는 아무런 기념식도 없었다.

 

안강읍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기념식은 10년마다 한 번 열린다고 했다.
다만 여느 도시의 동(洞)사보다 못한 초라한 읍사무소 건물이 쇠락(衰落)한 안강의 오늘을 잘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일부러 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강으로 향했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상가마다 학생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경산시 하양을 지나니 제4경마장을 유치해 연간세수 900억원의 기대수치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에 들뜬 희망의 함성이 진동하는 영천시에 정차했다.

그리고 3사관학교가 위치한 고경면을 지나니 어느새 안강의 경계를 알리는 시티재가 나타났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안강 들판의 농수를 책임지는 하곡저수지의 파구가 바람에 순응하여 찰랑거렸다.

 

길옆의 옥토에서는 성질 급한 감자꽃이 피었으며 간간히 농민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뒤편의 논에는 농번기를 알리는 황토색 물에서 윤기가 났다. 웃자란 수목과 잡초, 그리고 산새들만이 이 고장이 편안한 安康(안강)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강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읍내로 접어들면 상가는 한산하기 짝이 없고, 사람들은 그 표정에서 무언가 침울함이 풍긴다.

 

왜? 무엇 때문에 안강은 발전이 안 되는지? 심히 의아스럽기만 하다.


가까운 흥해읍은 1956년 곡강면과 흥해면을 합쳐 의창면으로 개칭 됐다가 안강읍보다 20여년 늦은 1973년에 흥해읍으로 승격됐으나 오늘날은 대형국책사업으로 전국의 투기꾼이 득실대는 곳으로 변화해 바다와 함께 흥한다는 그의 이름값을 하지 않는가.

 

같은 경주시 서부에 위치한 건천읍은 또 어떤가?  건천 강물이 배수가 잘 되어 물이 고이지 아니하고 건조하여 한발이 심해 건천이라고 하였다지만 이제는 경주 신역사가 들어서고 양성자가속기 부지를 유치하여 발전의 기폭제를 마련하지 않았는가.

 

때마침 안강 거리에는 지방선거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저마다 안강의 발전을 목청 높게 외치며 관심을 촉구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안강의 발전은 그때마다 구호로 끝나고 말았다.

 

경주의 변방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되돌아보면, 안강풍산금속 폭발사고, 쌀값하락에 절망한 농민들의 벼논 뒤엎기, 오리·닭 살처분 매몰, 구제역예방 등 우울한 사연들이 많다.
“미안하다. 다시 기회를 달라.”는 확성기의 유세소음에 그저 쓴웃음이 나온다.

 

정녕 안강의 발전을 충심으로 기약한다면, “제발, 가까운 읍민등산로 근계산에 올라가서라도 안강읍 전체를 한 번 쯤 세세하게 내려 보세요.”
그리고 얼마나 안강이 정체되고 있는지 되짚어 보았으면 참 좋겠다.

 

영천시민들은 경마장 유치를 위해 신청서 접수와 함께 단 3일만에 무려 2만6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마사회에 제출하는 결집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안강읍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강읍 승격 61년의 침체된 역사의 뒤안길에서 향후 안강의 발전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대오각성하여 발전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회갑(回甲)은 과거, 진갑(進甲)은 미래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년에는 현실의 안주 의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비약적 안강발전의 청사진이 제시되어 읍민들의 보다 밝은 모습을 기대해 본다.

손승호 시민기자 ssh305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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