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 당한 나무들의 아우성(말은 못하지만...)

 

형제봉 등산로 그리고 쉼터의 개선을 제안한다.

- 결박당한 나무들의 아우성

   

9기 인권기자 손승호

   

망우당 공원은 대구시민의 대표적 휴식처이다. 요즘 이 일대에는 은은한 꽃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신 곽재우 장군의 동상 앞에 서서 숙연(肅然)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신록(新綠)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등산복차림으로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어디론가 간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들의 뒤를 따랐다. 화랑교 입구를 가로 지르는 도보교를 지나니 지근거리에 서울의 숭례문에 견줄만한 대구 읍성의 남대문인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 위용(威容)을 뽐내고 있었다.

   

이어서 인터불고 호텔로 진입하는 도로를 횡단하니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있다. 그 측면에는 사이클 경기장이 있는데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맑은 공기를 내뿜고 있어 우울하던 기분도 어느새 상쾌하게 변했다. 새삼 나무의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잠시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경부선 철로위에 구축된 육교를 통과하니 저만치 정겨운 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저기가 접근성이 탁월한 동구와 수성구 주민을 비롯한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형제봉이다. 종합안내도에는 제봉(弟峰)과 형봉(兄峰) 그리고 모명재(慕明齋)로 가는 등산로(登山路)가 비교적 잘 표기되어 있다.

   

초입에 들어서니 상큼한 아카시아 꽃향기의 여운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다. 지나가는 봄이 아쉬워 마지막 여력을 발산하는 모양이다. 이곳은 가벼운 등산 코스로 적당하다. 그래서 아이들도 노인들도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산을 오른다. 산의 흙길이 깨어진 거울처럼 반들반들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의 휴식을 원하기 때문에 이 길을 왕복한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흔적이다.

   

조그만 능선을 하나 넘으니 숲속에 제봉건강쉼터가 보였다. 찻집도 있고 헬스장도 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다가 정말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등산객을 위해서 누군가가 그네를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두꺼운 밧줄을 이용하여 살아있는 나무를 칭칭 감아 돌리고 묶고 틀고 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하여 완성해 놓았다.

   

                                    ▲ 누군가 나무와 나무를 옴짝달싹 못하게 결박하여 그네를 만들어 두었다

   

할머니 한 분이 그네를 탔다. 안락한 즐거움에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참나무는 비명을 질렀다. “끼익 끼익” 난데없는 쇠 소리가 난다. “찌그덕 찌그덕” 아픔을 견디는 나무의 아우성 소리가 들린다. “삐익 삐익” 알 수도 없는 몸부림의 괴성이 송운(松韻)과 더불어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나무가 부패하면서 실재 조금씩 말라 들어가는 것도 보였다.

   

잘 정리된 헬스장, 찻집의 천막, 등산로 주변의 사이사이에 일정한 나무들은 모두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소나무에는 못질을 하거나 철사로 결박한 곳도 있다. 느티나무에는 기(氣)를 받기 위해서 고무줄로 이상한 기구를 만들어 두었다. 줄을 잡고 힘을 가하여 당기고 등으로 나무를 쾅쾅 치도록 설치 된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에는 나무를 덧대어 못을 쳐서 사람들이 짚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도 아카시아는 마른 꽃잎에서 향기를 뿜고 있다. 그 양태가 한없이 애련하다.

 

   

▲ 소나무에 못질을 하거나 철사로 결박하였다.

   

살아있는 나무에 못질이나 결박을 하는 이런 행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바로 개선(改善)되어야 한다. 관할 수성구청이나 대구시는 찻집의 주인이나 헬스장의 관리인을 탓하지 말고 이른 기간 내에 현장을 확인하고 불특정 다수 시민들의 휴식권을 위하여 바로 개선 작업을 집행했으면 좋겠다.

   

최소의 예산을 투입하여 강관 파이프 등을 활용하여 용접작업을 한 다음에 도색을 완료하면 생나무에 밧줄의 그네와 같은 쉼터의 흉한 실상(實相)을 단시간에 만족할 수준으로 교체 할 수 있다. 나무들은 참혹한 고문(拷問)으로 부터 해방(解放)해서 좋고 사람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산소를 공급해 줄 뿐만 아니라 꽃을 피워 향기를 피우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나무에 못질을 하여 거울을 달고 오르막길에는 안전을 목적으로 한다는 구실로 밧줄로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난간 줄로 삼고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이 한 두 장소가 아니다.

   

 

                                   ▲ 생나무에 못질을 하여 거울을 달고, 오르막길에 밧줄로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난간 줄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 형제봉에는 전설이 숨 쉬는 곳이다. 제봉에 적힌 내력을 요약하면, 아주 옛날에 힘이 장사인 남매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오빠와 누이가 서로 자기가 힘이 세다고 다툼을 벌이다가 누가 정녕 힘이 센지 높은 산을 쌓는 내기를 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오빠는 저고리로 누이는 치마폭으로 흙을 날랐다. 서산으로 해가 사라질 무렵에 오빠가 옆을 훔쳐보니 누이가 쌓은 산이 훨씬 높은 것을 보았다. 심술이 나서 동생의 산을 밟아 버렸다. 그래서 동생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이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힘은 천하장사이지만 인성은 부족하구나! 나의 부덕의 소치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실망했다. 오빠가 쌓은 높은 봉우리가 형봉(192m)이고 밟힌 모양의 작은 봉우리가 제봉(170m)이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이를 바라보는 형상의 봉우리가 모봉(母峰:149m)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속이 상해 집을 떠나 고개를 넘었는데, 막상 남매 걱정에 집을 향해 뒤돌아 보았다하여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 자를 써서 고모령(顧母嶺)이라 부른다. 또한 명나라 최고 풍수지리가 ‘두사충’이 최고의 명당으로 꼽은 길지이다.

   

사람들에게 시사(示唆) 하는 점이 많은 전설을 간직한 형제봉에 녹색의 바람이 불어온다. 산 아래 금호강의 물결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린다. 오리배가 동동 떠다닌다. 새들이 풀밭에서 여기저기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가 결박당한 나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으로 하산했다.

   

조만간에 여기 형제봉의 생나무에 박힌 못은 제거하고 밧줄과 철사도 풀어서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실질적인 개선효과를 진솔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결론적으로 결박당한 나무를 보호하는 작은 정성으로 세세한 정비를 한다면 대구시민의 건강지킴이 형제봉은 훌륭한 등산로와 쉼터로 변모(變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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