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治主义者 李斯(법치주의자 이사)
여불위가 식객들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거니와, 그 많은 식객들 중에서도 학문이 각별히 뛰어난 선비가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한사람은 한나라 출신인 韩非였고,
다른 한 사람은 초나라 출신인 李斯였다.
그들의 统治哲学论은 거의 비슷하여, 위정자는 모름지기 法制를 개혁하여 나라를 법으로써 통치해 나가되 유능한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하여 富国强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학설이 비슷한 관계로, 경쟁의식이 남달리 치열하였다.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해 본다면,
한비는 문장력이 풍부하여 자기 학설을 논리적으로 절묘하게 전개해 나가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현실에 대한 적응력과 구변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고,
이사는 문장력이 부족한 단점이 있는 반면에 현실을 능수 능란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므로 학문에 있어서는 한비가 언제나 이사보다 한걸음씩 앞서 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한비란, 오늘날 동양철학의 고전으로 되어있는 韩非子라는 명저를 저술한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矛盾이라는 말을 흔히 써오고 있는데,
모순이라는 말을 지어 낸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닌 한비였다.
이것은 여담이 되겠지만, 모순이라는 말이 생겨나게된 유래를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어느날 한비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노라니까,
창과 방패를 팔고있는 장사꾼이 이런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이 창(矛)으로 방패(盾)를 찌르면,
어떤 방패라도 반드시 뚫어지게 마련이오."
그리고 나서 다음 순간에는, 똑같은 입으로
"이 방패는 어떤 창으로 찔러도 결코 뚫어지지 아니한다오."
한비는 그말을 듣고 즉석에서,
"여보시오, 그렇다면 하나 물어봅시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그 질문에 장사꾼은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경우를 모순 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것은 지금부터 2천 2백 삼십여 년전의 일이었지만, 모순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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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어쨌든,
여불위는 3천 명의 식객들 중에서 두사람의 특출한 인재를 진왕에게 특별히 천거하였는데,
그 두 사람이 한비와 이사였다.
진왕은 두 사람을 모두 등용하기로 하고,
한비가 저술한 韩非子라는 책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하였다.
"이런 훌륭한 책을 저술한 학자라면 높이 받아들여, 나의 스승으로 삼아야 하겠다."
진왕의 입에서 그런 찬사가 나오자, 이사는 크게 놀랐다. 그렇잖아도 평소부터 선후를 다투어 오던 판에, 한비가 王师로 등용되는 날에는,
자기 존재가 비참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사는 어떤 모략을 해서라도, 한비의 등용을 방해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나서서 모함하다가는 오히려 뒤잡힐 것 같아서 大夫 耀嘉(요가)라는 친구를 내세워,
진왕에게 이렇게 품하게 하였다.
"우리는 머지않아 韩나라를 정벌할 계획이옵니다.
그런데 한나라의 선비인 韩非를 중용하셨다가,
후일에 그가 우리를 배반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면 어찌 될 것이옵니까?
어쩌면 한비는 우리의 내정을 염탐하려고 왔는지도 모르오니,
차제에 그를 엄벌에 처해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진왕은 그 말에 크게 놀라며,
"그 자를 당장 하옥시켜라."
한비가 옥에 갇히자,
이사와 요가는 곧 독약을 보내 한비를 독살시키고 말았다.
진왕은 얼마 후에 생각을 달리하여 한비를 다시 만나 보려고 불렀으나,
그때에 한비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이사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이사는 본시 楚나라의 上蔡라는 시골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있던 사람이었다.
하루는 변소에 갔더니,
쥐란 놈이 똥을 먹다가 사람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에는 창고에 들렸더니,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공간에서 쥐란 놈이 곡식을 마음대로 파먹으며,
살이 피둥피둥 쪄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이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쥐는 다같은 쥐이건만,
어떤 쥐는 변소간에서 전전 긍긍하며 똥이나 주워먹고 있고,
어떤 쥐는 곡간 속에서 배불리 먹으며 유유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
결국은 그 쥐가 처해있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 아닌가.
사람도 그와 같은 것이니, 나는 가난한 공무원 생활을 때려 치우고,
대성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자.)
그리하여 대학자였던 荀子(순자)를 찾아가 统治学을 배워가지고, 강대국인 진나라로 달려와 당대의 세도가인 여불위의 식객이 되었던 것이다.
이사는 한비를 죽인뒤, 长史라는 벼슬에 오르자 秦王이 天下统一의 야망에 불타고 있음을 알고
이렇게 품하였다.
"옛날부터 위대한 통치자는, 상대국의 혼란한 국정을 이용하여 무자비하게 정벌해야 한다고 하였사옵니다.
대왕의 능력으로서는 천하를 통일하기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라고 생각되오니,
때를 놓치지 마시도록 하시옵소서."
통일 천하의 야망에 불타고 있는 진왕에게는,
이사의 간언이 지극히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이사와 함께 통일천하를 하루속히 달성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사를 일약 客卿(外国出身大臣)으로 등용하였다.
말하자면, 파격적인 대승격이었던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고 보니,
진나라의 중신들은 불평이 없을 수 없었다.
(이사라는 자가 어디서 글러먹은 말 뼈다귀이길래, 남의 나라에 와서 대뜸 객경으로서 정치를 좌지우지한단 말인가.)
진나라 중신들은 이사를 몰아 낼 공론을 하고 있는 중에,
마침 좋은 구실이 하나 생겼다.
그당시 진나라는 영토를 개발할 생각에서,
한나라의 유명한 水工인 郑国(정국)이라는 사람의 권고를 받아들여 秦韩 국경에 커다란 运河를 파고 있었다.
토목 전문가인 정국의 말을 고지식하게 믿고 운하를 파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국이 그런 공사를 일으키도록 권장한 목적은, 순전히 자기나라의 国利를 도모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첫째,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키게 하여 진나라의 국력을 집중 소모시키면 국력이 약해져서 침략할 힘이 없어질 것이오,
둘째, 국경지대에 그와 같은 운하를 파 놓으면,
남에게 침략을 받을 경우에는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술책을 썼던 것이다.
그러한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진나라 중신들은 그 사건을 좋은 구실로 삼아,
이사를 쫓아내려고 진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문울 올렸다.
"무릇 외국인으로 진나라에 와서 벼슬을 하려는 자들은, 모두가 자기나라의 국리를 도모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와 있는 자들이 오니, 대왕께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차제에 그런 자들을 모조리 추방하시옵소서.
만약 그런 자들을 언제까지나 중용하시다가는 국가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게 되실 것이 옵니다."
진왕은 그 상소문을 읽어보고 李斯를 추방하려고 하였다.
이사는 그런 기미를 알아채고,
즉시 진秦王에게 다음과 같은 长文의上疏文을 올렸다.
"臣이 듣자 옵건데, 근자에 일부의 우매한 중신들은 외국에서 온 관리들을 모조리 추방하려는 논의가 있는 듯싶사온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인 줄로 아뢰옵니다.
일찍이 缪公께서는 어진 선비를 널리 구하시어,
由余를 戎에서 취하셨고,
百里奚를 宛에서 얻으셨고,
蹇叔을 송나라에서 맞아 오셨고,
丕豹와 公孙支를 晋나라에서 불러 오셨습니다.
이상 다섯 사람은 모두가 외국인 이었지만 缪公은 그들의 보필을 받아, 秦나라를 오늘과 같은 강대국으로 키우신 것이옵니다.
그리고 또 孝公께서도 外人인 商鞅을 등용하시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심으로써 국정을 크게 개혁하셨고,
惠文王께서는 외국인인 张仪를 채용하심으로써 국토를 크게 확장하셨고,
昭王께서는 외국인인 范睡를 등용하시는 반면에 穰候와 華阳君의 두 왕족을 제거 시킴으로써,
왕족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왕실의 권위를 크게 선양하셨던 것이옵니다.
이상과 같이 秦나라의 王业이 오늘날처럼 번영하게 된 것은,
모두가 외지에서 온 신하들을 높이 쓰셨던 결과이온데,
이제 앞으로 국외의 인물을 일체 배격하신다면,
大王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대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오리까..... "
秦王에게 올리는 上疏文은 아직도 계속된다.
"비단人事 문제점이 아니옵고,
物质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옵니다.
大王의 龙袍는 崑崙山(西藏) 에서 나온 名玉으로 장식되어 있사옵고, 대왕께서 허리에 차고 계시는 名剑은 太阿(楚)에서 구해오신 물건이옵고,
대왕께서 타시는 名马는 织离(趙)에서 사들인 良马이옵니다.
그나 그뿐이옵니까?
지금 군대에서 쓰고있는 북의 원료는 모두가 灵驼(魏)에서 사온 가죽이온데,
만약 그런 물건들을 外来品이라는 이유로 모두 배격하신다면 무엇을 가지고 나라를 꾸려 나갈 수 있으오리까.
그것이 어찌 물질에 관한 문제뿐이오리까.
음악이 그러하옵고, 문화가 또한 그러하옵니다.
자고로 땅이 넓으면 수확이 많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고, 군대가 많으면 졸병들도 용감해지듯이,
통치자는 모름지기 도량이 넓으셔서,
청탁을 가리지 아니하고 외객을 될수록 많이 포섭하셔야 王道乐土(왕도락토)를 기억하실 수 있는 법이옵니다.
만약 일부 지각 없는 중신들이 말하듯,
외객들을 모조리 추방해 보이시면,
대왕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통일천하의 성업을 완수하실 수 있으오리까.
臣 李斯는 대왕께서 그 점을 신중히 고려하시옵기를 간청드리는 바입니다."
진왕은 상소문을 읽어보고 크게 감동하여,
이사를 불러 말한다.
"경의 충고가 없었던들, 나는 腐儒들의 말만 믿고 커다란 과오를 범할 뻔하였소.
이제 앞으로는 国机万般(국기만반)을 경과 더불어 처리해 나가기로 하겠소.
천하를 신속히 통일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지, 경의 경륜을 한번 들어 보기로 합시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천하를 통일하시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놓으셔야 합니다."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겠소."
"法制를 개혁하시어,
전국을 郡县 제도로 바꾸어 놓으시되, 모든 권력을 대왕께서 집중 장악하시도록 하셔야 합니다.
강력한 中央集权制로 개혁하지 않으면, 힘이 집중되지 않아서 천하를 통일하기가 매우 어렵사옵니다."
"그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천하를 통일해야 하겠소."
"여섯 나라를 한꺼번에 정벌하시려면 공동저항력이 강할 것이므로, 약한나라부터 하나씩 각개 격파를 해나가셔야 합니다.
우선 가깝고도 가장 약한 韩을 먼저 치시고, 그 다음에는 魏를 치시고, 그 다음은 趙를 치시고...
그런 식으로 나가면 10년안에 천하를 통일하고야 말 것이옵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요"
이리하여 李斯는 국가의 법제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서,
철저한 중앙집권제의 법령을 새로 제정하는 동시에,
모든 권력을 오직 秦王 만이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계속 해서 33회로~~~
●楚汉志.32●
2020. 5. 9.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