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東地方의 不遷位와 祭祀

1. 不遷位

조상이 죽으면 4대까지 기제사를 지내는데 이는 한 집안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조상의 범위를 가장 넓게 4대까지로 인정하여 제사지내고 5대가 되면 親盡이라하여 神主를 땅에 묻어 조매하게 되며 이후 로는 墓祭의 대상이 된다. 조선초기에는 4대봉사가 일반적이지 않았으며 성종 16년(1485년)에 완성된 經國大典 禮典 奉祀조에 문무관 6품 이상은 3대를, 7품이하는 2대를 , 庶人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차등화하였으나 중기이후로 품계무관하게 4대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百世不遷의 忌祭對象이 되는 분을 불천위라 하며 국가나 사회에 크게 기여를 한 忠臣이나 學文과 德行이 훌륭한 분을 나라에 서 인정하거나 지방의 儒林과 書院에서 공의를 거쳐 결정하거나 또 는 사사로이 각 가문에서 결정하기도 하는데 대개 國不遷位, 儒林不 遷位 또는 鄕不遷位, 私不遷位로 구분하기도 하나 이는 일반적으로 하는 표현이지 문서 등에 특별한 개념규정이 된 것은 아니다.

불천위의 인정은 그 대상이 死後에 3대나 4대 봉사의 일반 기제사 기간중에 공론화 되어지기도 하고 사후 수백년이 지나서 결정되기도 한다.

2. 安東의 不遷位

전국에서 가장 많은 50위의 불천위가 안동지방에 모셔져 이는 연 유는 안동지방의 각 씨족간 특수한 관계인 것으로 판단된다. 불천 위가간의 姻戚關係와 學脈이 그 주요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안동권씨 權希正의 세 따님중 맏은 興海裵氏 白竹堂

尙志에게 출가하여 7대손인 臨淵齋 三益이 퇴계제자로 불천위시 고, 둘째따님은 眞城李氏 軍器寺副正을 지낸 云侯에게 출가하시 어 아들부터 14대손까지 무려 9위의 불천위를 내었으며, 셋째

따님은 安東金氏 革에게 출가하시니 그 손자인 寶白堂 係行이 불 천위이며 또 보백당 係行의 따님이 豊山柳氏 10세인 子溫에게 출 가하니 그 손자인 立巖 仲郢, 龜村 景深, 巴山 仲淹 세 종반과 증 손자인 西厓와 謙菴 등 5분이 불천위이다.

學脈은 뒤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1) 각 관심사별 분석

① 出生時期別로 살펴보면 15세기 이전이 10분이고 16세기 23분 17세기에 9분, 18세기에 8분으로 16.17세기가 40분으로 이 시 기에 안동지방에서 유학이 꽃핀시기라 할 수 있다.

생몰연대로 보면 가장 오랜 분이 眞城이씨 善山府使 楨이(1390년 대로 추정)고 가장 늦은 분이 全州柳氏 定齋 致明(1777-1861)이 며 가장 이른 년령으로 사망하신 분은 豊山柳氏 巴山 仲淹 (1538-1571)으로 34세이다

② 師弟關係로 살펴보면 退溪弟子가 12분으며 再傳제자를 합한다면 더욱 늘어날 것이고 다음은 閑山李氏 大山의 제자가 4분이다(龜 窩 굉, 定齋 致明, 后山 宗洙, 尤園 禎國)이다

퇴계제자:구백담,권송소,금성성재,김학봉,류서애,류겸암,류파산,

배임연재,이간재,이동암,조월천,김유일재

대산제자:김귀와, 류정재, 이후산, 이우원

③ 科擧及第者別 區分은 小.大科 모두 급제한분이 17분이고 大科 (文科)만 급제한 분이 28분이며 小科만 급제한 분은 27분이고

무급제자는 12분이다.

특히 이후산은 순수처사로서 불천위에 올라 영예로 치기도 한다.

문과(문과)급제자:구백담,권등암,권이우당,김죽봉,김보백당,김귀와, 류귀촌(2회),김제산,김허백당,김계암,김운천,김학봉,류서 애,류용와,이난졸재,류삼산,류입암,류정재,배임연재,변간 재,이반초당,이대산,이송재,이온계,이농암,이퇴계,이청옹, 하단계

소.대과급제자:구백담,권등암,권이우당,김죽봉,김보백당,김귀와,

김학봉,김허백당,류귀촌,류서애,류삼산,배임연재,이난졸재, 이송재,이온계,이퇴계,이청옹

④ 世居地別 分類는 臥龍面과 陶山面이 각 7분이고, 豊川面이

6분, 豊山面과 一直面이 각 5분, 臨東面과 臨河, 서후가 각

4분, 禮安과 祿轉面이 각 2분, 禮泉, 吉安, 月谷, 安東市가

1분이다.

⑤ 官職別 分類는 政2品 이상이 17분, 贈職이 25분, 순수처사는 后山 李宗洙와 巴山 柳仲淹 두 분이다. 巴山은 비지 南致利와 함께 溪門의 顔子로 비유되며 이농암의 증손서이기도 하고

후산은 퇴계의 종조부인 遇陽의 12대손이다.

⑥ 文集發刊한 분은 43분이며 특히 禮書를 남기신 분은 11분이다.

예서: 이농암(周禮,祭禮), 이퇴계(溪書禮輯), 김학봉(鄕校禮輯,儀禮 倒,居鄕雜儀,童子禮), 류겸암(追遠雜儀), 이간재(家禮註釋),

류서애(喪葬質疑), 이고산(二先生禮卨), 권병곡(漫錄), 이대산 (四禮常變通攷), 이후산(禮儀箚錄),

⑦ 시호 받으신 분은 12분으로 文烈(하단계), 定獻(김보백당),

孝節(이농암), 貞愍(이온계), 文純(이퇴계),文敬(류겸암),

文端(구백담),文忠(김학봉), 文忠(류서애),

文貞(김계암), 淸憲(이난졸재), 文敬(이대산)

 

2) 각 성씨별 불천위

①. 眞城李氏

8분으로 가장 많으며 퇴계 기준 증조부 善山府使 楨, 조부

判書公 繼陽, 숙부 松齋 堣, 중형 溫溪 瀣, 퇴계 본인, 손자 東巖 詠道, 숙부 松齋공의 玄孫인 反招堂 溟翼, 퇴계 종조부인 遇陽의 12대손인 后山 宗洙인데 특기할 만 것은 퇴계 자신으로부터 위 로 연4대에 5분이 불천위라는 점과 후산 종수는 급제하지 않은 순수한 처사로 불천위의 영예를 얻었다는 점에서 벼슬보다는 학 문을 중시하는 안동지방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②. 義城金氏

5분으로 청계 璡의 5대조인 居斗가 안동에 입향하여 그 손자인 漢哲, 증손에서 萬謹, 萬愼, 萬欽을 만근은 仁範과 禮範을, 예범 이 靑溪 璡의 父이다. 靑溪 璡 자신과 5형제중 넷째 학봉 成一, 청계의 2자 귀봉 守一의 아들인 雲川 涌, 청계 장자인 약봉

克一의 현손인 霽山 聖鐸, 그리고 청계 종조부인 萬欽의 6대손인

龜窩 굉 다섯분이다. 청계로부터 연 3대가 불천위이다

③. 豊山柳氏

5분이며 節을 시조로하며 7세 고려조 工曹判書 從惠가 풍산에서 하회로 입향하여 그 증손자인 子溫이 4형제를 두니 公綽,公權,

公奭,公季이고 공작의 아들 立巖 仲郢과, 공권의 아들 龜村 景深 과 공계의 아들 巴山 仲淹 삼종반이 불천위이고 立巖 仲郢은

장자 謙菴 雲龍과 차자 西厓 成龍을 두니 삼부자가 불천위이다

④. 全州柳氏

濕을 시조로 하며 8세 城이 외가인 영주에서 의성김씨 청계 璡 의 사위가 되면서 처향 가까운 무실로 입향하여 장자인 岐峰公 復起의 둘째손자인 백졸암 稷과, 맏손자인 櫹의 손자인 奉時의 장자인 慵窩 升鉉 그리고 奉時의 2자인 陽坡 觀鉉의 고손자

定齋 致明과 三山 正源과 그 손자 好古窩 徽文이 불천위이다

⑤. 安東權氏

幸을 시조로하여 10세에 15개파로 분파되고 副正公派는 就正 을 파조로 하는데 20세에 藤巖 徵은 이시애난에 순절하고 불천 위 되고 그의 증손인 인재 大器의 다섯 아들중 장자인 松巢

宇와 4자인 二愚堂 寏 등 세 분이고, 知瑞州公波 花山 柱(퇴계 처조부)의 7대손인 屛谷 榘가 불천위이다

⑥. 豊山金氏

文迪을 시조로 하며 8세 子良이 왕자의 란에 피화되자 동생 子 純이 한양에서 풍산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게 되며 11세 虛白堂 楊震과 그 증손 悠然堂 大賢과 悠然堂의 4자인 慶祖의 증손인 竹峯 侃 등 세 분이다

⑦. 閑山李氏

목은 이색의 후손인 文英이 서애의 사위가 되면서 일직 소호리 에 정착하여 아들 睡隱 弘祚와, 수은의 고손자인 大山 象靖과 小山 光靖 형제 등 세분인데 대산과 소산은 형제이다

⑧. 禮安李氏(全義李氏)

棹를 시조로 하여 8세에 混이 禮安君에 봉군되면서 그의 후손 은 예안으로 이거한다. 孤山 惟樟과 懶拙齋 山斗 그리고 尤園

楨國 세분이 불천위이다.

 

⑨.光山金氏

興光의 4대손에서 光리, 英利, 成利, 安利, 天利 5형제가 있는 데 둘째 영리계열의 6대손인 潭庵 用石이 순천 김유온의 사위되 어 九潭에 입향하여 그 아들 惟一齋 彦璣가 불천위이고, 천리계 에서 6대손 溪巖 坽 등 두 분이 불천위이다

⑩. 永川李氏

聾巖 賢輔와 종손자 艮齋 德弘 두 분이다

그 외 한분의 불천위를 모시는 씨족은 綾城具氏(柏潭 具鳳齡),奉化琴氏(惺惺齋 琴蘭秀),安東金氏(寶白堂 金係行),興海裵氏(臨淵齋 裵三益),原州邊氏(簡齋 邊中一),固城李氏(淸翁 李後榮),安東張氏(敬堂 張興孝),淸州鄭氏(竹軒 鄭枓),橫城趙氏(月川 趙穆),晉州河氏(丹溪 河緯地) 10姓이다.

3. 不遷位祭祀

1) 祭廳

불천위제사를 지내는 공간은 초기에는 안대청에서 하였으나 타성 남성들과 주인집 여성들과의 불편함으로 인하여 후에는 사랑대청에 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천위 아닌 일반 기제사는 주로 안대청에서 지낸다.

안동에서는 충효당과 학봉종가에서는 안대청에서 지내고, 청계종 가와 금역당(용길. 임연재의 아들)종가에서는 사랑대청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2) 祠堂

사가에도 4대봉사를 하면 사당이 있는데 불천위 신주를 사당내에 4대 조상과 같이 모시는 경우가 있으나 그 사이에 隔板을 쳐서

차별화하고 있다. 대개 불천의 신주는 별묘를 두나 풍산류씨 입암 중영과 그 아들 겸암 운룡 부자는 아들인 겸암은 별묘에 부친인 입암 중영은 사당에 신주를 모시고 있는데 아마도 입암은 체천되 기전에 불천위로 인정되어서 원래 모시던 사당에 모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양정씨 우복 정경세 집 또한 같다. 우복은 사 당에 6대손인 입재 정종로는 별묘에 모신다 . 퇴계의 조부 노송정 계양도 별묘없이 사당에 신주 모시고 있다.

신주간 서차는 사당내 최좌측이 최상대 조상이고 다음 차순으로 신주 모시고 있다.

사당은 종택 동쪽의 가장 높은 장소에 지어져 있다.

3) 兩,單設

단설: 불천위 고위나 비위 기일에 해당되는 분위 신주만 모시고 제사지내며 퇴계종가와 풍산류씨가 대표적이다.

양설: 고위 기일에 비위 신주도 같이 모시나 비위 기일에는 고위 신주를 모시지 아니하는 것은 부계사회의 여필종부사상을 반영 하고 있는 것 같다. 학봉종가와 보백당종가, 광산김씨 설월당종 가는 단설한다고 한다

4) 神主

신주는 사람의 모습으로 주신과 받침대로 구분되며 주신은 분면 하는 전신과 함중이 있는 후신으로 구분할 할 수 있다.

전신의 분면에는 후일 봉사손이 바뀔 것에 대비하여 수정할 수 있 도록 아교를 갠 분칠을 하여 아무리 많은 글자라도 한줄로 쓰게 되며 후신의 함중에는 망자의 정체성 즉 품계, 본관성씨,이름,자 등을 적는데 이는 절대로 고칠 수가 없다.

4. 맺는 말

안동지방에 특히 불천위가 많은 것은 조선중기후 안동에서 유학이 활발했으며 이 유학은 자신의 인격수양을 위한 공부였으며 이는 곧 지역사회백성을 교화하고 선도하는데 큰 역할을 한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지역내의 이중삼중의 복잡한 혼맥과 학맥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불천위제사를 불천위대제 또는 큰제사라고도 하는데 후손은 물론 외손 그리고 제자의 후손까지도 참사하며 문중의 결속과 동질성을 확인하며 우월감을 갖게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1. 배영동(2008),「종가사당을 통해본 조상관」,『유학과 현대』제9집, (사)박약회 대구지회.

2. 안동민속박물관(2002), 「안동의 제사」, 『학술총서』8, 안동민속 박물관.

 

<안동의 불천위> 출생 연도순

 

(2008.07 이창환 연구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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