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의 들판을 생각하며

일본의 농혼(農魂)을 엿보다.

-일본 농업 선도경영체 방문기-

손 승 호※

 

 

차 례

   . 일본의 문화 개괄(槪括)(槪括)

   . 사전 워크숍

   .  설국의 니가타현

   .  선도경영체 방문 강행군

   . 구로베 협곡 탐방/옛 마을 거리

   . 선도경영체와 총영사 관저 방문

   . 니가타 식량상 소개

   . 맺는 말

 

 

이 글은 안강 평야를 바라보며 성장하여 항상 우리나라의 농업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오던 차에 금회 농림축산 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주최하고 한국농업아카데미에서 주관하는 2017년 일본 농업 선도경영체 방문 국외훈련에 참가해서 인천공항을 출국하여 해단식을 할 때까지 일본에서 보고 느낀 문화를 포함한 종합적 체험내용을 비교적 진솔하게 기록한 것이다.

 

 

※ 안강 가마실 출생,, 철학박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상조회 이사 주)트릿지 파인더, 인권기자.

 

. 일본의 문화 개괄

 

일본의 수도는 동경(Tokyo), 면적은 380,000㎢로 한반도의 1.7배이고

인구는 128,085,000명 내외이다. 일본의 민족 구성은 다양하다. 홋가이도 북쪽에 거주하는  원주민 아이족의 경우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코카소이드 쉽게 말해 유럽 인종 계통이라는 설도 있고 러시아계라는 설도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경우 대륙에서 건너온 북방계와 남방계가 있다.

 

북방계라 함은 몽골, 한반도, 중국에서 대륙인을 말하고 남방계라 함은 동남아  쪽이나 태평양에서 이주한 대륙인을 말합니다.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이란 설이 많은 것에 놀랐다. 실제로 일본인의 유전자에서 한국인의 유전자가 많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일본 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한다.

 

해양성의 온화한 기후를 가진 섬나라 일본은 태풍이나 지진 등 각종 재난이 많기에 뭉쳐야 산다는 생각이 팽배하며 33 사람이 모여도 지도자(오야봉)를(오야봉) 뽑아 일사불란하게 대처하는 것이 특징이다.

 

종교는 신도와 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기타 종교가 있는데 방문 기간 동안 교회건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은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아기의 건강과 장래의 복을 빌고, 또 청년이 되어 혼인을 할 때는 교회나 천주교 등에서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치르며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불교적으로 치른다고 했다.

 

이처럼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여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룬 일본은 현대화적 이면서도 고도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면에 그들은 옛 모습의 운치 또한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돋보였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으로 2,800㎞에 걸쳐 길게 늘어져 있다. 국토는 혼슈, 시코쿠, 규수, 홋가이도(北海道)의 주요 섬과 4,0004,000여 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산지로 구성되어 있어 경작면적은 약 16%16% 정도이다. 현재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천황은 상징적 원수로 일본 헌법에서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125대 아키히토 (明仁天皇)이고 총리는 아베 신조이다.

 

행정구역상으로 47도도부현(都道府縣)47 도도부현(都道府縣)으로 나눠  동경도(東京都),홋가이도(北海道동경도(東京都), 홋가이도(北海道), 경도부(교토부, 京都府), 대판부(오사카, 大阪府) 등과 43개 현으로 이루어져 지방자치제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이 중에 니가타, 도야마, 나가노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일본의 화폐는 엔화로 현재  966원이다. 이웃나라이기에 시차는 없다. 그러므로 시계를 현지시간으로 맞추는 번거로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갔을 때 전기 전압은 100V 50HZ로 플러그를 사용해야만 했다.

 

. 사전 워크숍

 

대구에서 광명역까지 KTX로 이용하여 갔고 그곳에서 공항까지는 무정차 버스가 20분마다 운행하고 있어 바로 탑승하여 주변 경관을 보면서 이동하여 인천공항 1번 게이트에서 하차하여 영종도 로열 엠포 리옴 호텔 세미나실로 향했다.

일본의 식량산업 정책 등을 이해하는 사전 워크숍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항을 돌아서니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사진 1: 선명한 태극기가 주변 조경과 어울린다)

 

 

국외 훈련 단원은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처음으로 회의실에서 대면하였다.

한경대학교 이덕형 교수와 전북 김제에서 특수미를 생산하는 으뜸 농원의 대표이고 국내 농업마이스터 1호인 최남훈 전문가를 포함하여 기라성 같은 농업전문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혼자서 3333 핵타를 기계화 영농을 하는 전문가도 있었고,  400400 핵타의 간척지에 농업법인을 운영하는 전문가 등 대농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참여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단원들이 쌀은 농촌의 힘, 농촌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농민들도 이제는 생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탈피해 생산에서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차별화하고 체계화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관행적인 쌀농사로는 고소득을 올릴 수 없기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우리나라 농촌 현실을 직시하며 저출산과 농업인들의 고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여 그 해결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외훈련의 추진배경과 필요성은 대한민국 쌀 생산 조정제 도입 및 정책현안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있고 우리나라 식량산업의 정책과 농산업 현장이 원활한 소통관계를 형성하여 공동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일본 식량산업 정책 및 지원 사업 현황과 우리나라 지원정책을 비교 참고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또한 대한민국 쌀 생산자 단체 및 생산자 농민의 글로벌 마인드 재고 및 생산품목 다각화 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우수농가 및 선도 경영체의 현장 활동을 배울 필요성이 있고 국내 지역별 식량산업 종사자에게 다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선진 농업국의 우수사례를 공유하게 하여 새로운 정책제안이나 아이디어 도출이 필요하며 국내 쌀 생산 조정제도의 폭넓은 이해와 협조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외국의 사례를 학습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추진목표는 일본의 식량산업 정책과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농산업 현장 벤치마킹을 통한 국내 도입 가능한 아이디어 도출과 식량산업분야 첨단 기술 개발회사 방문을 통해 식량산업 분야의 첨단산업 도입과정 및 도입 후 성과 등을 학습하고 국내 산업에 도입 및 가능성 도출에 있다.

 

그리고 일본 니가타현 식량산업 농업인들의 우수사례를 공유하게 하여 새로운 정책제안 및 아이디어 도출과 쌀 전업농가에서 품목 다각화를 실천한 성공적인 일본 농가의 활동과 가공공장 및 식품 제조회사 벤치마킹을 통한 아이디어 발굴을 목표로 하며 부가적으로 다각화 사업을 실행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기계 현황을 파악하여 국내 다각화 사업에 필요한 품목의 자동화 기계 도입 및 개발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어서 일정계획을 설명 듣고 방문 기관에서의 예절과 유의사항을 주입시켰다..

 

다음은 조를 구성하고 조별 연수목표를 토의하는 시간이었다. “하나, , .”하는 사이 팀장을 손가락으로 지정하는 순간 나는 거침없이 대농을 하는 한 사람을 지목했다. 하지만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의 손이 나를 가리키고 있음을 확인하고 실망하여 즉시 스스로 자격미달을 이유로 사양의 뜻을 표현했으나 받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해외훈련에 참가할 바에는 우리 팀이 화합하고 단결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자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석식을 마치고 다시 세미나실에 모였다. 전문가가 앞으로 나와 “일본 쌀 품종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실시했다.

그는 농진 종묘(주)육종연구소(주) 농장장으로 근무하다가 1996년 논에 나가시던 자신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사고에 기인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그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벼농사 최고의 장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남들이 다 하는 일상적인 농사기법으로는 “농촌에서 희망이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종묘회사 근무 시 출장 등으로 알게 된 일본인 농사꾼들을 찾아 농사에 대한 선진기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일본 NHK방송을 시청하다가 항암 효과가 높은 유색미와 관련한 내용을 보고 그 특수미 종자를 구하기 위하여 한걸음에 일본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일본에서 쌀 소비 트렌드가 고품질 쌀에서 특수미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는 현미식 전용 쌀인 “밀크 퀸”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 품종은 당뇨병과 대장암에 효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이어 신장병 환자에 도움이 되는 저글 루테린 쌀을 생산하기도 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이론으로만 농사를 지으면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라고 우려 섞인 눈초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예측한 그대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기능성 쌀은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일반 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비싼 값으로 그것도 전량 직거래로 팔리고 있다.

 

소비 패턴의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며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201711월 현재 현미 식용 저아밀로스 쌀, 신부전증과 신장병 환자를 위한 저글 루테인 쌀, 항산화 작용 성분이 있어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녹원찰벼, 적색 찰벼를 생산하는 등 기능성 쌀 생산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매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전량 계약판매로 생산량 전체를 소화하고 있다. 그는 고객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개별적인 계약판매를 통하여 서울권역에서 90% 이상을 소비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재고가 쌓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생산량을 초과하는 주문이 폭주하여 주변 이웃 농가의 쌀까지 팔아 준다고 한다.

일본의 쌀 품종은 고시히까리로 연구를 거듭하여 개량품종이 나오고 있다는 말로 특강을 마쳤다.

 

예정된 워크숍은 오후 8시를 넘겨서 종료되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안동에서 참여한 40대 초반의 여주농업전문대를 졸업한 청년 농업인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정을 나누고 소통을 하기 위하여 호텔 인근의 호프집을 찾아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수기간 내내 성실하게 임할 것을 다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주변을 살펴보니 영종도의 구석진 곳으로 허허벌판 속에 우리는 그렇게 서 있었다.

바닷바람이 매섭게 볼을 때린다. 이슬비마저 흩날리는 인천에서의 하루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내일은 06:00시 정각에 모닝콜이 울린다고 공지했다.

 

. 설국의 도시 니가타

 

아침이 희뿌옇게 밝아 오는 순간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서둘러 세면을 마치고 식사를 한 후 에둘러 떠날 채비를 마쳤다.

07:10분경 짐을 싣고 셔틀버스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영종대교의 교각 상판이 운무 속에서 마치 꿈틀거리는 뱀의 비늘처럼 번들거리며 보였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공항 1번 게이트 앞에 당도했다.

우리는 입국 수속을 완료하고 다시 18번 게이트로 이동하여 탑승 대기 장소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가타행 항공기는 현지 기상 사정 악화로 2시간 연기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차분하게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잠시나마 한국농업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저 출산 고령화의 심각한 문제가 엄습하여 우리나라의 농촌생활을 점점 피폐하게 만들고 농민들의 삶을 서서히 옥좨올 것은 자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무대책이 대책인 것처럼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업분야 선 지식인이 발 벗고 나서고 정부 관계자는 이 다급한 현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심각하게 고민하여 상응한 해결책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은 무엇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역동적인 국제공항의 면모를 갖추고 외국의 무수한 손님들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광경이 흐뭇하다. 청소를 하는 로봇이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이 경이롭다.

 

 

 

 

(사진 2:)

우리는 예정시간을 2시간 넘겨 기내에 오를 수가 있었다. 행운번호 43D 좌석은 본인이 좋아하는 창가 쪽이다. 잠시 후 KE763기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창밖에는 새털구름이 새하얗게 여러 모양으로 변신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다.

기내 중식인 도시락이 배달되어 맛있게 먹었다. 1시간 50분(서울-대구간 KTX 소요시간과 동일) 정도) 지나 항공기는 나가타 공항에 착륙했다. 인터넷 일기예보와는 달리 바람은 심하게 불지 않았고 이슬비만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가타 공항은 예상과 달리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옛날 김포공항의 30% 수준으로 지방공항의 초라함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일본의 입국 수속은 다소 까다로웠다. 나는 허리에 찬 혁대까지 풀고 철두철미한 검색을 2회나 반복한 후에야 게이트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소 기분이 상하지만 테러 방지를 위한 자구책이라 여기고 이해하니 마음이 편했다.

 

 

나가타에 첫발을 디디며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 해방 직전까지 일본의 오사카 등지에서 수년간을 살아오셨기에 모종의 상상을 하면서 하늘도 쳐다보고 밟고 있는 땅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일본의 니가타현은 면적 12,582㎢의 도시이고 중심도시는 8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니가타시이다..

이곳에는 3개소의 온천이 있다. 먼저 에치고 유자와 온천은  일본의 소설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 설국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온천수는 약알칼리성 단순천으로 온도는 32도에서 83도이다.

 

그다음은 세미나 온천으로 1904년 석유 발굴 탐사 시 우연히 발견된 온천으로 지금도 온천수가 10m10m 이상 뿜어져 나오고 있다. 세미나 온천 지구에는 작은 수족관이 있고, 근처에 자연공원이 있어 온천 후 산책하기에도 좋다. 온천수는 식염천으로 온도는 70도에서 90도로 표기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치 오마타 온천은 일본의 온천중에서 라듐 함유량이 많은 온천으로 예부터 고 다카라 노유로 알려져 있다. 고 다카라 노유라는 말은 자식을 얻게 해 주는 온천이란 뜻이다. 온천수가 미지근해서 밤새도록 탕 속에 들어가 있는 풍습도 있다. 방사능 온천수로 온도는 39도 정도이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이용하여 약 2시간 걸리고 경도 및 위도가 우리나라 경기도의 여주 이천과 비슷한 위치 선상에 있는 니가타는 쌀을 비롯한 질 좋은 식재료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그것을 이용한 맛있는 향토음식이 만들어지는 ‘식재료와 미식의 보고’로 전해진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에서 가장 눈이 많은 지역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쌓인 눈은 봄이 되면 녹아서 깨끗한 물로 변하여 니가타의 대지를 적시고 그 대지에서는 각종 질 좋은 식재료들을 생산한다.

특히 쌀은 일본에서 생산량 최고를 자랑하며 그 맛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쌀로 빚어지는 일본 주는 1922년에 창업한 청주 학 가이 잔(八海山)을(八海山) 비롯하여 90개 이상의 양조장이 서로 경쟁하며 맛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맛있는 쌀을 이용한 떡을 비롯한 각종 가공식품,  달콤하고  살살 녹는 듯 맛있는 북쪽 분홍 새우,, 우리나라 청도의 감처럼 씨가 없는 오코사 감을 이용한 술과 서벗 등 다양한 식품들이 개발되어 있었다.

 

. 선도경영체 방문 강행군

 

일본 연수 훈련 단원들은 첫 일정으로 니가타현 농업종합연구소 작물연구센터를 방문했다.

이 연구소는 1874년 네가 탄현 수예장으로 나카 칸바라 군 시모 토코 로지 마신 덴에 설치되었고 1895년 농사시험장이 나카오카 혼죠 오오 아자사 카노우에 에 창설되었다. 1950년 니가타현 농업시험장으로 개칭하여 1997년 농업종합연구소와 작물연구센터로 재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구 방침은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농업과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현장과 하나가 되어 기초적이며 선도적인 연구를 효율적으로 실시한다. 그와 동시에 산학관과 보급기관의 연계를 한층 강화하고 지역성을 중시한 영농인의 싱크탱크로서 연구를 추진하여 기술혁신과 새로운 기술 창출을 지향하고 있었다.

 

국제화에 따른 산지 간 경쟁에 대응한 전략적 품종 개발,, 저비용과 고품질 생산기술 및 농산물 브랜드화 기술, 소비자와 지역의 니즈를 기초로 한 지역농업시스템의 확립과 영농인 중심의 복합영농 추진을 위한 경영관리기술과 지원 기술,,

 

안전, 안심, 건강지향과 환경보전 등을 배려한  다양한 기술과 자원절약, 순환형 농업기술, 새로운 산업분야의 창출, 육성을 위한 바이오테크놀로지, IT 활용 등 고도의 첨단기술을 연구 항목에 포함하고 있었다.

 

조직도를 보니 농업종합연구소는 소장과 부소장 그리고 관리부 기획정보부 기반연구부 AGRI FOODS BIO 연구부 전문기술지도 실이 있었고 작물연구센터는 육종과 와 재배 과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요 부서를 설명하면 기반연구부는 농업경영관리, 농축산물 유통 및 상품화의 경영 유통이 있고, 환경부하 저감을 위한 농경 관리기술을 재배환경에서 토양보전기술은 토양보전에서 다루고 농업농촌정비기술, 기계화작업을 위한 기술은 생산공학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바이오 연구부에서는 원예육종 공학에서 대량증식 및 유전자해석 과 단리기술을 벼 육종공학에서 조직배양 및 유전자 해석에 의한 신품종육성을 다루고 미생물공학에서 미생물 농업 및 식품공업 이용기술을 담당했다.

 

작물연구센터 육종과는 품종육성으로 수도 신품종 개발을 담당하고 품종 선정에서 장려품종 결정 조사 주요 농작물 종자생산기술을 책임지며 밭작물은 밭작물의 우량품종 선정과 안정생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재배과는 재배와 품질은 수도의 안정생산과 품질평가기술, 작물 영양은 작물 영양진단과 시비개선 기술,, 병해는 주요 농작물의 병해 방제기술,, 충해는 주요 농작물의 충해 방제기술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진 3:)

 

유관기관은 원예연구센터가 세이 로오 마지에 있고 축산연구센터는 산죠오시,, 식품연구센터는 카모 시,, 고랭지 농업기술센터는 쯔난마찌,, 중산간지 농업기술센터는 카와 구찌 마지,, 사도 농업기술센터는 사도시에 위치하여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다.

 

 

살펴보니 정말 촘촘하게 업무를 분담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물연구센터의 경우만 보더라도 육종과는 수도 우량품종의 개발(인공교배), 육성된 품종 계통의 특성과 지역 적응성 조사 및 우수품종의 선정(포장 선발,(포장선발 식미선발), 품종 특성 유지와 양질의 원종 공급(원원종( 파종작업), 대두와 맥류의 우량 품종 선정 및 재배기술(대두 장려품종 결정 조사)을) 하고

재배과는 고품질과 우수 식미 쌀 안정생산을 위한 기술개발,, 저비용 대규모 경영대응기술 개발(수도 고온처리 시험),), 토양 및 비배관리 기술의 개선(도열병균의 접종), 병해충 발생 예찰과 방제기술 개발(페로몬 트랩에 의한 방귀벌레 발생조사)을) 하고 있었다.

 

시설물을 둘러보니 고시히까리 기념비, 나미카와 상이 우선 보였고 연수관, 육종 합리화 시설, 교배 세대촉진 온실, 바이 테크 육종 온실, 고시히카리고시히카리 BL 종자저장고, 격납고, 농기 실험실, 첨단 원예작물 연구 온실, 원종 건조 조제 시설, 도열 병균 레이스 검정 온실, 업무동, 관리동, 연구동 건물이 용이 주도(용이 주도하게( 잘 배치되어 있었다.

 

고시히카리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수도(水稻:논벼) 품종()로 농림 1호를 부()1944년에 교배되었다. 1948년부터 후쿠이현 농업시험장에서 계통 육성이 계속되어 1956년에 농림 100호로 등록되었고, 고시노쿠니(고시노 쿠니(니가타에 길이 빛나기를 바라는 뜻에서 고시히카리로 명명되었다..

니가타현은 누구보다 앞서 고시히카리의 식미성에 주목하여 일본의 다른 어떤 지방자치단체보다 먼저 장려품종으로 지칭하였으며 재배기술의 개선에 힘스며 적극적으로 보급하였다.

현재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로 일본의 38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1979년 이후 계속해서 일본 경작면적 1위를 자랑하고 있으며(1994년 현재) 경작면적은 5353만 핵타에 달하고 있다. 올해는 고시히카리가 니가타현 농업시험장에서 교배된 지 50년째에 해당하는 해이며 또한 니가타현 농업시험장 창립 100 주년이 되는 기념할만한 해이다. 이에 고시히카리의 빛나는 기록을 만들어 낸 선대의 공적을 기리고 후대에 새로운 우량품종의 개발을 기원하며, ()에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바이다.

 

1994. 11. 길일

 니가타현 농업시험장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협찬 회장

   니가타현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쿠리하라 유우이치

 

다른 설명을 듣지 않아도 비문에 고시히카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미카와 상()

 

나미카와 세이시와 벼 품종 스이토오 노 오린1(水稻農林1)

1920년대 니가타 쌀은 품질이 나빠서 도시의 소비지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이에 나미카와 세이시 등의 육종 그룹은 모리타 와서 품종과 리쿠우132호 품종을 조합시켜 1931년에 노 오린1(農林 1号)1号) 품종을 만들었다.

 

이 노 오린1(農林 1)는 당시로써는 수확시기가 빠르고 수량도 많을 뿐만 아니라 쌀의 품질과 맛도 뛰어난  훌륭한 품종이었다.

1931년부터 니가타현은 이 노오린 1(農林 1)를 널리 농가에 추천하였다.. 그 후 이 품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고시히카리, 고시지와세고시지 와 세. 호오넨와세, 히츠 니시키 등의 품종을 탄생시켰으며 오늘날의 니가타 쌀의 성과를 드높여 왔다.

1952년에 이 노 오린1(農林 1)를 육성한 나미카와 세이시의 흉상을 이 땅에 세우고 오래도록 그 공적을 기리게 되었다.

 

 

고시히카리 BL 종자 저장고가 있었는데 고시히카리 BL은 니가타현 내의 도열병균 레이스의 분포 상황에 따라 높은 방제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BL품종 수 품종을 일정 비율로 혼합한 원종을 종자장에 제공한다. 그러므로 고시히카리 BL은 계획한 대로 생산하며 품종마다 대량으로 확보하고 보존해 둘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이 창고에서 고시히카리 BL의 일반재배용 종자생산의 바탕이 되는 원종을 대량으로 저온에서 저장한다.

사양은 온도 10도씨 습도 제어는 없고 저장실 면적은 132, 저장능력은 60,000kg이다.

 

바이 테크 육종온실은 생명공학을 벼의 품종개량에 응용하여 오랜 세월을 요하는 품종개량 기간을 단축하고 획기적인 우량 신품종을 육성하기 위한 시설이다. 배양실험실, 무균실(clean room), 배양실, 순화 육성 온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일련의 기능적 배치가 이루어져 있었다.

 

교배 세대촉진 온실은 벼의 인공교배와 세대촉진을 하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벼는 자신의 화분을 수분하여 종자를 만들기(자기 수분)(자기수분) 때문에 품종개량을 하는 경우에는 인공적으로 다른 벼의 화분을 수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벼의 품종개량에서 효과적인 선발을 하려면 교배한 다음 자가수분을 반복해서 실시하여 세대를 거듭하여 유전적으로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통상 니가타현에서는 실외에서 재배했을 경우, 1년에 한 차례밖에 세대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시설에서는 인공적으로 습도와 햇빛이 드는 시간을 조절함으로써 1년에 3세대를 진행시킬 수가 있다.

 

육종 합리화 시설은 벼의 품종개량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시설이다. 니가타현의 벼 품종개량은 숙기(熟期)나 재배의 편의성 등 논에 있어서의 특성 외에 쌀의 모양이나 맛 등의 성질을 개량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이 시설에서는  현미의 외관 조사와 실제로 사람이 먹었을 때에 맛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 또한, 외관상의 품질과 식이 즉 맛에 대한 조사를 객관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대량으로 실시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기기를 사용하여 쌀의 맛과 관련된 성분과 물리적 특성 등의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첨단 원예작물 연구 온실은 배양 조작을 통하여 농작물을 대량으로 늘리거나 단기간에 품종을 고정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배양 조작을 위한 재료를 재배한다. 또한 배양 조작에 의해병속에서 재생한 식물을 바깥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한 시설로도 사용된다.. 재배실과 기계실을 합하여 136.8㎡이다

 

마지막으로 도열병균 레이스 검정 온실은 니가타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작물의 병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재배조건이나 약제의 종류 및 처리 시기 등을 바꾸어 재배한 작물에 병원균을 접종하고, 발병 상황을 조사하여 보다 효과적인 방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실외에서는 봄철과 가을철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육묘기(育苗期)에 발생하는 병해 실험 등도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연중 실시할 수 있다. 또한 2005 년부터 니가타현 내에 도입된 품종인 고시히카리 BL을BL 이용하는 데 있어 니가타현 내에 어떤 종류(레이스)의 도열병균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존재하는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니가타현 내에서 수집한 도열병균을 레이스 판별용 품종 균에 접종하여 균의 레이스를 조사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고시히카리는 키가 다소 크기 때문에 태풍에 넘어가지 않게 시비를 조절하여 키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과 도열병 등에 강한 고시히카리 BL13(2년 전)까지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고시히카리의 과잉 재배로 인하여 신품종 신노스끼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사실도 알았다. 쌀을 주식용, 국수용, 빵용, 술 주조용, 사료용 등 다양하게 선택하여 제배한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우리는 벼 수확 후 벼로 보관하지만 일본은 현미로 보관한다고 말했다. 수매 시 등급 판정도 현미로 한다고 하면서 먹기 직전 정미로 도정해서 밥을 짓는다고 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 품종을 비교하여 설명을 듣고 질문을 많이 하여 궁금한 점들을 순서대로 해결해 나갔다. 연구소 직원들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근면 성실하게 제복을 입고 전투에 막 나가는 사람처럼 직무에 충실히 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 이탈리아 켄으로 들어왔다. 이 호텔은 약 140년 전에 설립되어 3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으나 시설물이 새 건물처럼 깨끗하고 친절한 서비스가 두드러진 곳이었다. 현재는 증손자가 경영을 맡고 있다.

 

 

 

(사진 4,5: 호텔 창업자와 현재 경영자인 증손자)

 

우리는 석식 후 다시 모여 분임토의를 했다. 나는 오늘 방문한 연구소 및 작물연구센터에 대한 단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팀원들과 동행하여 인근 술집으로 들어갔다. 팀의 단합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일본의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일본의 밤은 어두침침하였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전등불도 일찍 꺼져 버렸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전기를 절약할 요량인가 생각했다. 그들의 절약정신은 몸에 베여 있었고 그것보다 ‘밤은 밤다워야 한다.’는 평범한 논리가 깔려 있었다.

 

거리에는 차들이 없었다. 차고지 증명이 있어야 차를 출고할 수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차고로 들어가고 거리는 질서 정연 했다. 차번호를 살펴보니 그린 색상은 영업용. 흰색은 자가용, 그리고 노란색은 경차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고급차는 거의 보이지 않고 경차가 굉장히 많이 눈에 보였다.

 

 

집은 고층건물이 없고 거의가 2층 이하 박공형으로 작게 설계된 집이 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안전한 집을 짓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만 이외의 소박함에 의아했다. 집에 들어 가보니 화려한 구석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상데리아 등 고급 등기구도 보지를 못했다. 지진이 일어나면 바닥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이 다칠 염려가 크니까 그럴 것이다.

 

거리에는 붉은 색칠을 한 급수전이 많이 있고 집안에는 방마다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어 그들의 안전의식을 가늠할 수 있었다. 오늘 연구소 방문 후 오는 길에 건설현장이 보여 유심히 관찰하니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철저한 안전관리가 선행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일본에 와서 가장 궁금한 것이 있어 한국교포 2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찌하여 일본에는 담장이 보이 지 않습니까?”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다. “도둑이 없으니까요.

도둑이 없으니 담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제야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본인을 앉혀놓고 훈계하면서 교육하시면서 하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일본에는 길을 가다가 보석이 떨어져도 자기 것이 아니면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절대로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마라.”라고 강조하셨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급한 일로 세워 놓으면 내일도 모래도 그 자리에 있다고 하던 말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선술집에 들어가 화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고 룸에 들어오니 새벽 2  주변은 고요한 밤 그 자체였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날이 밝아오는 시간을 기다려 운동복을 갈아입고 거리를 나섰다. 다소 피로 하지만 일본의 여려 측면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호텔과 접한 측면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다름 아닌 납골당 시설이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혐오시설이라고 난리를 쳤을 텐데 일본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문화였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진 6:)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고 그 유골은 집 근처 납골당에 안치하는 데 한기에 2,500엔(2,500엔(우리 돈 2,500만원내외) 한다고 알려 주었다.

 

납골당 사원을 통과하여 거리를 산책해 보니 여기저기 비슷한 시설이 보였다. 그리고 거리는 깨끗하고 차들은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어도 철저하게 정지선을 지켰다. 이슬비가 내려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 장소로 갔다.

 

밥을 먹으며 고시히카리 쌀 맛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음식도 간결하면서도 맛이 있었고 식사 후 설거지하는 사람을 배려하여 한 그릇에 담아 식사를 하는 세심함이 보였다. 종업원들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수치로 여기는 좋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07:30분경 다음 방문지로 이동했다.

우리는 아사히 농업법인에 도착했다.

아사히 농업법인은 200716명으로 설립되었으며, 주요 작물재배로 고시히까리 쌀 품종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회사이다.

평균 55세의 조합원들과 3535 핵타의 면적을 통해 발족된 아사히 농업조합법인은 설립 후10년이 지났으니 현재 65세의 평균 연령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영농후계자의 육성이 시급한 현안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95%를 고시히카리를 재배하였으나 현재 소비가 줄어 60%를 생산하고 있으나 유동적으로 조정한다고 했다. 왕겨는 공사장에서 일부 사용하고 볏짚은 캇터를 하여 토지개량용으로 전량 사용한다고 말했다.

선별기를 도입하여 쌀의 품질을 1등급으로 높이고 6년 전부터 쌀이 남아 영업활동을 하여 그 돌피 구로 싱가포르에 쌀을 수출하는데 내년에는 쌀 수출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에코팜, 즉 환경 친화적인 쌀 생산을 추구하며 비용을 줄여 이익을 내는 알찬 경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농약 화학비료도 5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벼를 심고 수확하는 것은 공동으로 하고 병충해 방제를 위한 농약 살포와 시비 등은 개인별로 하는 시스템이다.

무조건 큰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장비로 가동률은 높이는 실용적 경영을 하고 있었다.

조합을 결성하고 위탁경영을 하는 형식이며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뭉쳐 있었고 항상 해결책을 찾아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아사히 농업법인에서는 무엇보다 청결과 정리정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진 7:)

 

공구는 가지런하게 정돈되고 기계에는 흙 한 점 없이 반들반들하게 닦고 기름치고 하여 새것처럼 관리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는 장비를 정비하고 정리정돈을 철저히 하는 것이 관행이라 했다.

어떤 때는 일하는 시간보다 장비를 정비하고 정리 정돈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말했다.

 

다음은 야 미나미 농장을 방문했다. 이 농장은 레이호 요네야마와 가리와 구로히메 야마에 끼워져 있고 풍요로운 대지, 청아한 공기, 용솟음치는 청류, 풍부한 자연에서 혜택을 받은 수상 촌락에 있다. 수상 촌락에도 해마다 인구가 계속적으로 줄고 하여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장래를 보장하는 농업을 확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 대표이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농가가 되어 ‘촌락의 농업을 지키자.’라는 것이 야 미나미 농장의 시작점이다.

이 농장은 니가타현의 카시와자키 시에 위치해 있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찾아온 곳이다. 오는 길에 산을 보니 산마루에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7부 능선까지는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길가에는 측량기구 폴대 같은 것이 길게 연결되어 박혀 있었다.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겨울에 눈이 너무 왔어 운전자가 눈이 온 깊이를 가늠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라 한다.

 

산의 나무들은 우람하게 자라 있었는데 피톤치드 성분이 있어 건강에 좋고 건축용 자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일본말로는 히노끼 나무라 하는데 관찰해 보니 편백나무다. 1년에 1 센티미터 정도 자란다니 50년 이상 되어야 제대로 사용이 가능하다. 일본은 50년 수령은 많고 400, 500년 수령의 히노끼 나무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장성에 나무 선각자가 집중적으로 편백나무를 심었는데 약 40년의 수령이 된다고 들었다.

 

이 농장의 대표는 2세 경영으로  40세 남짓한 젊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마중을 나왔고 어느 폐교로 안내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중식을 해결하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학교는 일본도 출산율 저하로 농촌 학생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여 12년 전  학생들이 없어 폐교하여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학교 출신인 젊은 대표가 시 당국자를 찾아가 애절하게 건의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제가 다닌 추억의 학교입니다. 수년 후에도 저 학교에 다닌 것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폐쇄, 철거하지 못하도록 요구하여 받아 들어져서 지금은 농촌공방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8:)

 

마치 1960년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실 구조와 비슷하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추억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9:

 우리는 향토 시골 풍취가 풍기는 그곳에서 직접 재배한 메밀로 요리한 메밀국수로 중식을 먹었다.

참 맛이 있었다. 보통 외국에 나가서 음식을 소리 내어 먹으면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등 뒤에서 욕하는데 일본의 문화는 소리 내면서 취식해도 괜찮다고 일러 주었다. 여기저기 쭉쭉 빨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야마나미 유한회사는 테니스 선수를 꿈꾸는 평범한 젊은 사람이 경영하지만 배울 것이 참 많은 농장으로 나는 회고한다..

우선 농촌이 담긴 강한 정신력과 지역 주민들과의 화합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110 핵타를95%를 임대로 임대하여 집행하고 지역 주민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농지를 확장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지역주민의 발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해결책의 방향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어려운 농촌의 실상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정신, 지역민을 먼저 배려하는 정신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이 농장도 역시나 청결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농장 안에 트랙터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어 가서 살펴보았다. 다름 아닌 내년도 못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트랙터는 가장 늦은 저속으로 가고 있었다. 땅을 다지고 수평 작업을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모판은 비닐하우스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성을 고려하고 튼튼한 모종을 자연 생장시킨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우리는 트랙터로2회에 갈지만 이 농장은 1회에 거칠게 갈아서 산소공급을 잘 되게 하여 뿌리가 튼튼하게 하는 일종의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농사를 하고 있다. 촉이 나는 시기까지는 부직포를 덮어 놓아 보온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이 농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종업원이 임금 문제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운영한다는 점이다.

 

일 년 365일 가동하는 것이다. 통상 11월에서 3월은 농한기로 손을 놓아야 하지만 이 농장은 일거리 창출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니까 트랙터 연결고리에 제설 장비를 붙이고 시()로부터 위탁받아 눈을 치우는 작업을 하는데 직원들이 모두 자격과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농어촌 공사에서나 할 일인 농지정리 구획사업을 이 농장의 구획사업을 샘플로 하여 이 농장에서 다른 지역 농장으로 가서 구획정리사업을 한다는 것이다. 농한기에는 떡을 가공하여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대충대충이 아니라 일등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활성화에 노력하여 어린이, 학생들을 초빙하여 체험활동도 시키고 농업도 하나의 직업이고 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각인시키는 6차 산업의 일부분도 수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의 질문에 답변하기를 농촌 고령화로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을 때가 가장 힘들고 반대로 아이들이 농촌체험을 마치고 함박웃음을 남길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답했다.

어린 학생들과도 소통하고 공생하며 좋은 농업의 추억을 일찍 인식시키는 일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농장은 부채를 계획적으로 탕감하는 것도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 준다.

결국은 새마을 정신과 유사한 자조, 자립, 협동의 정신으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지역주민과의 신뢰가 관건이 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농장이 365일 가동하듯이 우리나라도 충남지역 이하는 겨울에도 -10-10도 이상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하우스 시설 경작이 가능하며 복합영농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우리는 농촌 활성화와 지역민과의 공생이라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 더 보고 살피고 싶었으나 다음 일정에 쫓겨 젊은 농부와 작별했다. 그는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니가타현 조에쓰 시로 이동하여 후루사또 미라이 농업법인을 방문했다.

 

이 농장은 농업을 통해 다양한  고용 기회를 만들어 지역발전과 식량문제에 공헌하고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도모하고 있다.

2007년 농사 조합법인을 설립하여 약 5252 핵타의 농지를 운영하였으며, 2012년부터 논을 이용하여 노상에서 채소를 재배하였다. 2016년 조합에서 주식회사 형태로 조직을 변경하여 마을 전체 논을 집적하여 11 집락 11 농장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후루사또 미라이가 고향의 미래라는 뜻이다. 깊은 뜻과 걸맞게 이 농장의 사장은 첫눈에 확고한 신념에 불타는 사람이라고 나는 느꼈다.

그는 사무라이처럼 회사 제복을 입고 끓어 앉아서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우리에게 농장의 실태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사진 10:)

 

그를 보고 느낀 것이 있다. 일본인은 검소하고 근면하고 성실하며 특히 ‘~척하다.’를~척 하다. 절대 하지 않는 점이다.

잘난 척,, 많이 배운 척, 건강한 척을 절대 하지 않았다.

 

10년 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작업은 모여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쌀과 콩은 3월에서 10월까지만 재배하고 그 이후는 생활보장도 없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 기간에 다른 도시로 가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서 농사철이 되면 다시 모여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6년 전, 농한기의 탈출구로 하우스를 설치하여 토마토를 재배하고 겨울에도 잎채소를 재배하여 일을 계속적으로 함으로써 매상을 하고 수익을 창출했다고 했다.

 

이어서 블로코리와 논에서 풋고추 등을 생산하여 쌀과 대두를 주력으로 생산활동을 하면서 부가적으로 다른 품종을 재배하여 수익 창출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당근과 생강을 시험재배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항은 일본의 농협은 우리나라 농협처럼 동리 별 단체 수매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한 포기의 배추도 그것이 할머니가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가지고 나왔던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수매를 능동적 적극적으로 받아 준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균등하게 수매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나라 농협이 배우고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농장에서는 년 중 농업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생산 종목을 스스로 찾고 판로도 스스로 개척한다는 점이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다른 기관에 기대거나 혹은 농협이 아닌 제3의3 거래처를 개척하는 정신이 놀랍다. 내년에는 실수요자와 계약재배로 생산량의 90%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기록 관리하고, 젊은 근로자는 모바일로 기록 저장하며, 심지어 일용직은 작업지시를 배부하고 일을 마친 후 수거하여 모니터링을 통하여 다음 해에 수정하고 시정할 것은 시정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이 농장은 일반농가와 차별화한 기술로 쌀 등 을 생산하고 하우스 시설재배로 1년 내내 수입창출 활동을 하고 판로를 직접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농장은 정부의 직접직불금 이던지 아니면 변동직불금이던 정부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생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내년도부터 일본에서는 쌀 생산조절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쌀은 직불금 등 보조금 제도가 전면 폐지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후계자를 육성하는 차원에서 젊은 청년 귀농인을 영입하여 직책을 부여해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시키는 것이 감동적이다.

특이한 농법은 로터리 작업을 거칠게 1회만 하여 뿌리의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이 농장의 사장은 농업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고 자조 자립의 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오늘의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도야마현 우나즈키 그랜드 호텔로 이동했다. 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일부러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깨끗했다 그러나 시설은 우리나라 휴게실과 비교했을 때 음악까지 흘러나오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화장실이 최고라 여겨졌다.

 

주차장에는 경차가 즐비하고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통행하고 주차공간이 따로 있는 점이 우리와 달랐다.

차에 오르면서 기사가 일일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기에 나도 기사에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그를 보니 무엇인가 적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은 기록 문화라고 하더니만 기사는 하루 일과를 차곡차곡 기록했다. 어디서 출발하여 몇 시에서 몇 시까지 운행하고 어디서 쉬고 주유는 얼마를 하고 차량 점검은 이상이 없었고 등 깨알 같이 기록하는 것이 운전보다 훨씬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 밖을 응시하며 잘 정돈된 농토, 나지막한 집들을 보며 많은 것을 관찰했다.

 

(사진 11:)

2시간을 달렸는데 고속도로 통행요금이 132,000원이 나왔다. 우리보다 엄청 비싸다. 물어보니 통상 일반물가도 비싸고 한국보다 3배나 비싼 가격도 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일본은 퀵서비스 제도가 없다고 했다.

 

어느 학교 앞을 지나갈 때 나는 학생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학생들의 모습과 태도가 우리나라 학생들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학생들은 치마를 입었는데 치마 길이는 분명 무릎 아래 15cm까지 덮어 있었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남학생도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었는데 두발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것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 학생은 하교를 하면서 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주우며 가는 것이 목격되었다.. 여기서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교하는 것은 자제해야겠다. 그냥 어딘지 모르게 확실하게 틀린다는 점만 언급한다.

우리는 정해진 호텔로 들어가 석식을 해결하고 다시 분임토의를 했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경청하는데 무게 중심을 두었다. 그리곤 또 팀원들과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온천지대라 나는 일본식 의복인 유카타를 입고 당당하게 온천탕에 들어갔다. 나는 누군가 유카타를 입을 때는 맨 몸에 입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속옷을 입고 그 위에 유카타를 걸치고 끈으로 허리를 두 번 돌려 태권도 도복을 입듯이 끈을 매고 게다를 신으면 된다.

단지 입을 때 주의할 점은 우리나라 복식 예절에도 한복을 입을 때 좌임(左袵)과 우임(右衽)이 있는 것처럼 왼쪽 옷섶을 오른쪽 위에 올리고 끈을 돌리면 된다. 반대로 할 경우 죽 은자가 입는 옷이 되어 뒤에서 낄낄거리고 비웃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온천물에 들어가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노천탕으로 이동하니 찬 기운을 느낀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404 호호 룸으로 돌아와 안동에서 온 젊은 농부와 캔 맥주를 마시며 한국의 농업과 6차 산업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구로베 협곡 탐방/옛 마을 거리

 

06:00시 일어나라는 모닝콜이 울렸다. 창문을 여니 산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었다. 장관이다. 설국에 온 것 같다.

여기는 도야마현 구로베(黑部) 시이다.(黑部)시이다. 온천지대다.

 

(사진 12:)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척에 있는 구로베 협곡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에서 가장 험준한 V자 협곡 사이로 댐을 막고 전력 생산 자재를 옮기기 위하여 건설된 선로다. 공사가 완료되고 여기서 생산된 전력이 오사카까지 간다고 한다. 그 후 이 철로는 철거 대신에 관광선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강원도 폐광지역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수는 없는지 이것을 보고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우나즈키 역에서 탑승하여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도롯코 열차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산마루에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먼저 진홍 철교 신야마비코 다리가 보였다. 열차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온천마을에 울린다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바로 큰 댐이 보인다. 2001년에 완성한 댐이다. 홍수 조절과 발전을 목적으로 축조된 댐이다.

 호반에 선 로마의 오래된 성같이 보이는 신아나 기가와 라 수력 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13,아름다운 산과 댐)

 

 조금 지나니 멀리 철사로 연결된 이상하게 생긴 좁은 현수 다리가 보였다. 우나즈키 호수 위 15m 정도의 높이에 설치된 이것은 야생 원숭이를 위한 인간의 배려다. 원숭이들이 건너편 강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로베 강 옆에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선 석불을 닮은 모양의 호토 게이시 천연바위가 보였다.

 

플랫폼 일부가 구로 나기 강에 걸린 구로나기 역을 통과하니 그다음으로 높이 60m 길이 64m로 연선에서 가장 깊고 험한 계곡에 놓인 다리다. 오래전 입산자가 너무나도 계곡이 깊어 뒷걸음질 쳤다는 것이 아토비 키다리의 유래다. 이어서 구로 나기 온천이 보였다. 1645년에 발견된 온천으로 산기슭의 우나즈키 온천의 원천이다. 큰 노천탕은 당일치기 온천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조금 더 오르니 높이 200m인 네즈미 가에시 암벽이 보인다. ‘고양이에게 쫓긴 쥐도 오르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위압적인 대 암벽이다.

 

사방의 산들이 모두 아름답다. 눈과 단풍이 조화를 이루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여섯 개의 봉우리가 자웅을 겨루듯 솟은 다시롯포 바위산이 보이고 이어서 어느 산 보다 먼저 눈 단장을 한다고 하여 ‘사키가케산’이라 불리는 산 나비 키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이어서 히가시가 네 쓰리산이 보였다. 이 산은 산 전체가 정질 석회암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바위산이다. 그다음은 가네쓰리 삼존상이다. 구로베 강의 범람을 막고 홍수로부터 하류에 있는 집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안치시켰다고 전한다.

열차는 가네쓰리 역에서 정차했다. 이 역은 일본 내에서도 진기한 ‘스위치 백’을 체험할 수 있는 역이다.  우리는 이 역에서 하차하여 건너편 강가에 내려 쌓인 눈이 티라미스처럼 보이는 구로베 만년설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며 천천히 걸어서 가네쓰리 강변으로 내려갔다.

 

가끔은 곰이 나타난다고 역무원이 말을 하는데도 무서운 줄 모르고 자연경치에 감복하고 강물이 흐르는 강가에서 폴폴 김이 솟는 신기함에 정신 줄을 놓았다. 손을 넣어 보니 정말 따뜻한 온천물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가면 또 하나의 고아 다이라 댐이 보이고 바바 다니 강이 보이며 여러 개의 이름 없는 외진 온천과 족탕을 즐기는 장소도 있다. 강폭이 좁고 옛날 원숭이가 뛰어넘었다 하여 이름 지어진 사루토비 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정말 좋다.

 

 

(사진 16,17,18: 단풍과 산 그리고 댐)

 

그다음에는 구로베강 본류에 놓인 주철 다리 오쿠가 네 다리가 보이는데 34m 높이의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절경 중에 절경이다. 마지막으로 크게 벌린 입 같은 아주 박력 있는 암벽을 접하는데 그 이름처럼  사람을 삼키는 것처럼 보이는 히토구이 바위가 있다. 이곳에는 어떻게 대자연 속에 이렇게 온천이 많은지 참으로 신기하고 의아스럽다.

 

 

우리는 다시 열차에 몸을 싣고 역행하여 우나즈키 역사로 되돌아왔다..

흐르는 맑은 물과 단풍이 물든 산을 바라보니 연수중 강행군의 피로는 풀어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다시 호텔에서 대기한 차에 탑승하여 보쿠 시 도오리(옛 마을( 거리) 문화탐방에 나섰다.

보쿠 시 도오리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옛날의 그 시대로 달려갔다.

여기는 유자와 우오누마 지역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열어 통치를 시작하여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주기까지의 에도시대(江戶時代) 에도(현재의 도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따라 역참 마을(宿所)로(宿所) 번영해 온 곳이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지역주민들이 그 역사와 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재현의 노력을 한 결과 2011년 도시경관대상, 2015년 아시아 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

또한 ‘설국의 구전’을 재현한 사마귀 오브제와 세련된 카페들도 있다.

 

(사진 19,엣 마을 거리의 모습)

나는 비 오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엣 거리를 살펴보았다.

에도시대 거리를 복원한 상점가가 우리나라 민속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거리에는 옛날 이발소, 음식점, 양조장,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에도시대 농민들은 오공 오민,, 육공 사민이라 해서 전체 수확량의 50%~60%는 영주들이 세금으로 거두어 가서 생활이 궁핍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적으로 농민봉기 횟수가 무려 3,000회라고 하니 미루어 짐작이 간다. 영주는 혈세를 받아 큰 저택에서 부를 누리고 반대로 평민은 비참한 삶을 살았다고 조선통신사 신유한 등이 기록으로 남겼다.

 

 

 

 

. 선도경영체와 총영사 관저 방문

 

우리는 잠시 후 시간에 쫓겨 키노 메 자카 호텔로 이동했다.

이동 간에 차에서 우리나라 포항에서 5.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나는 내 고향 안강이 무사하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우리는 또 어김없이 분임토의를 했다. 그리고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이튼 날 아침 서둘러 다음 방문지로 출발했다.

 

오늘은 니가타현 토카 마치 시에 있는 삼가 무라 조합 법인부터 방문하였다. 삼가무라 법인은 20091월에 설립되었으며, 3개의 촌락이 합쳐진 26 농업 가정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의 법인이다. 수 많았던 농민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농지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줄게 되는 위기의식을 통해 조합 법인이 탄생한 것이다.

눈 내린 미끄러운 비탈길에 차를 세우고 농장에 들어갔다. 펀 백 나무 향기가 참 좋다.

 

(사진 21:)

 

10여 년 전에 큰 지진을 겪은 곳이라 건물은 두꺼운 철골로 단단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 건물도 그 당시에 피해복구비를 지원받아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 농장에서는 오리지널 고시히카리를 재배하여 인터넷 판매 등으로 수매가의 다섯 배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했다. kg7,000원에 판매하니 수익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농혼을 담아 특수한 살을 생산하면 경쟁력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 농장에서는 건조기로 건조를 하고 현미로 포장을 하는데 홍백 색상을 넣어 독특하게 포장하여 답례품용 등으로 판매를 하며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기 위하여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양과 염소를 키워 비탈면의 풀을 가축에게 먹이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4개 마을이 있었지만 고령화와 탈 농촌 현상으로 1개 마을은 없어지고 현재는 3개 마을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역시 이 법인에서도 겨울에는 트랙터에 제설 기구를 연결하여 제설작업을 위탁받아 시행하여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사진 22,23:)

 

우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차에 탑승하여 니가타현 쌀 정보센터로 출발했다. 역시 매우 친절했으며 작별인사는 문밖에 서서 우리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니가타 쌀 정보센터로 이동하여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필요한 질문을 하여 의문점을 해결했다.

이 정보센터는 니가타현과 관계 농업단체가 일체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 쌀 관련 새 정책 정보나 쌀 정책 기본정보, 수급 유통정보, 재배기술정보, 현 농업 재생 협의회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3층 회의실로 들어서니 단순하면서도 잘 정리된 회의실이 있었다. 회의장에는 니가타현 식량 담당 공무원 다키자상과 센터 직원이 자리를 잡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요점은 2018년부터 쌀 보조금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조금 대신 융자로 전환하고 농업인 본인 스스로 알아서 고품질의 쌀, 팔 수 있는 쌀을 생산하라는 내용이다.

1인 가구 증가 등 전반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로 주식용 쌀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어떻게 수급조절을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는 맛이 좋은 쌀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고시히카리 쌀도 더 맛있게 생산하여야 판매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농민들은 다른 가공식품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남은 농지는 다른 작물과 사료용 재배 등으로 국가 생산목표를 정하지 않아도 그 복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들은 내년부터는 일본의 농업정책이 확 바뀌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탑승해서 구보다 농기계 회사로 출발했다.

그 회사는 어느 산업공단에 있었는데 여기도 담장은 없고 낮은 조경수를 심어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농기계의 대표적 생산 업체는 이세끼(ISEKI), 구보다(KUBOTA) 얀마(YANMAR)이다. 앞서 방문한 농장들도 거의 3개 회사의 농기계를 신품 혹은 중고로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들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보다 농기계가 정비를 하고 있다.

잘 정돈된 기계들이 질서 하나는 철두철미한 일본인들의 사고를 대변하듯이 오열이 칼날 같았다.

 

(사진 24:)

 

공장 내를 자유 견학하면서 사무실을 잠시 훔쳐보았다. 역시나 가지런히 열과 선이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제복을 입고 근무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약속 시간에 쫓겨 방문을 종료하고 초청을 받은 한국총영사관으로 신속히 이동했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높은 빌딩에 들어갔다. 총영사관저택은 19층에 있었다.

조건희 총영사는 출입구에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준비된 차와 다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총 영사는년간 일본에 근무하면서 고시히카리 쌀밥을 먹었는데 식은 밥이 더 맛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 1인 가정 증가, 탈농현상이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 일 간 공동연구를 통한 대안 마련과 우호증진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좌담회를 마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고 다시 대회의실로 모여 종합적인 토론회를 열었다.

어떤 사람은 발언권을 얻어 글루텐 함양, 건조온도 등 핵심 기술은 말하기를 꺼려하더라고 토로했고,, 쌀 품종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는 일본 연수 국외훈련에서 기술을 배운 것도 중요한 성과지만 그보다 더 일본 농민들의 자립 자조 정신을 배웠다고 개인적인 소견을 강조했다.

 

 

(사진 25:)

 

그날 밤 팀원들과 호텔 밖에서 화합의 시간을 보내며 일본문화를 체험했다. 특히 느낀 것은 우리나라는 기본 반찬 등 많은 종류의 음식으로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가 많이 나오는데 반해 상대적으로 일본은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시켜서 깨끗이 비우기 때문에 그 량이 월등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그 이튼 날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후로 사토 바자르관으로 이동했다.

짐을 싣는 일과 운전은 연세가 지긋한 드라이버상이 했는데 우리를 안전하게 이동해 주시고 장시간 운전으로 피로하실 텐데 내색하지 않고 보여 주시는 그 따뜻한 친절함은 내 기억 속에서 잊을 수가 없다. 차에 오를 때도 내릴 때도 사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했고 차 안 의자에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쓰레기를 남겨도 불평 없이 깨끗하게 치우고 우리를 맞이했던 완숙한 인격자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호텔을 나서는데 3대째 여주인이 기모노를 입고 출입문 밖에 나와 역시 우리 일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좌우로 힘차게 흔들며 아쉬운 작별의 정을 표했다. 바깥공기도 찬데 말이다.

 

후로 사토 바자르관은 많은 특산물이 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마트와 유사한데 바로 옆에는 일본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우리와 달리 포장단위가 소포장이 많다는 점이 확실하게 달랐다. 쌀을 예로 들면 우리는 10kg, 20kg 등이 주로 팔리지만 일본에는 500g 등 소포장에 포장도 색상을 넣어 답례품으로 선물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배추도 2등분~4등분으로 쪼개서 팔고, 대파도 1~3개로 포장하여 팔았으며 과일도 아주 적은 단위로 파는 것이 우리와 달랐다. 이러한 사례는 바로 우리 시장에도 곧 전이될 것이라 생각된다.

 

 

(사진 26,27,28:, , 쌀의 진열)

 

박물관에는 조상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1~3층까지 부스마다 입체적으로 잘 설치해 두었다.

 

 

(사진 29: 우리나라와 유사한 옛 조상의 생활)

 

우연히 창밖을 보니 아름다운 연못이 보였다. 그런데 그쪽을 바라보는 순간 물고기가 하늘 쪽으로 1m1m 이상 뛰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혹 지진의 전조 증상은 아닌지 하고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강행군을 통하여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훈련 단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니가타 공항으로 갔다. 일본은 테러 때문에 단체수속은 금지하여 출국 수속을 개인적으로 마치고 기내에 탑승했다.

잠시 후 대한항공 KE 764기는 니카타 공항을 이륙하여 안전하게 인천공항에 착륙시켜 주었다.

 

 

. 니가타 국제 식량상 소개

 

나는 대한민국 총영사로부터 국제 식량상이 있다는 정보를 알고 우리 안강 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농업인 중에 수상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내용을 게재하며 올해 아니면 내년 혹은 그다음 해를 기약하고 싶다.

 

1. 니가타 국제 식량상 제정 취지

니가타는 열악한 여건을 이겨내면서 식량 증산 및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일본 유수의 식농(食/農)(食/農) 모델도시로서 식량분야의 국제적 공헌이 있는 개인 또는 단체를 선발하여 지역을 조명하고 표창하여 국제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해 니가타현내 민관산학 분야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제정함.

 

 

일본 유일의 식량분야 국제상으로 니가타 지역 농업환경 개선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노 토 자부로를 기념하여 재단을 만들고 제2의 사노 토자부로 탄생을 염원하며 2010년부터 격년으로 시상 중임

 

과거 니가타시는 저습지대에 위치한 수렁논으로 경작에 상당한 애로가 있었으나, 사노 토 자부로(1923~1994)씨가(1923~1994) 이러한 환경을 개선, 수렁논을 일본 최고의 쌀 재배 논으로 개량하는 데 성공함.

 

뿐만 아니라, 사노 토 자부 로씨는 니가타 논 개량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흑룡강성 ‘삼강(三江)’ 평원의 식량 증산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짐.

 

2. 평가 기준

세계적/지역적/개별적 시도나 활동으로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업적일 것.

새로운 발견이나 개발 등 장기 지속형 시도로서 인류 생활 향상에 기여하고 국제적으로 강한 영향력이 있을 것.

실적, 지명도가 낮더라도 장래성이 있을 것.

 

3. 수상 내역

대상: 1, 상장 및 기념 공예품, 상금 1,000만엔(1,000만 엔(우리 돈 1억원)

시노 토 자부로 특별상: 1, 상장 및 기념 공예품, 상금 200만엔(200만 엔(우리 돈 2천만원)

21세기 희망상: 2건 이내,건이내, 상장 및 기념 공예품, 상금 100만엔(100만 엔(우리 돈 1천만원)

 

4. 수상자 자격

국적, 성별, 종교 불문, 생존자로 한정

각국 정부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자나 기관 본래의 임무 수행 일환으로 달성한 업적은 원칙적으로 비대상. , 업적이나 공헌이 기관의 기본적 임무를 초월하여 현저한 경우는 예외

 

과거에 다른 국제상(노벨상, 국제 식량상, 일본상, 교토상 등)을 수상한 적이 없는 개인 또는 단체.

 

5. 시상식

201811, 니가타시에서 개최될 예정

 

6. 추천/응모방법

추천/응모기간: 2017.09.01.()~12,25()

추천서 송부: 추천서를 전자양식 또는 우편으로 송부

송부처: 동 재단 사무국(http://www.niigata-award.jp)

 

. 맺음말

 

나는 고향이 안강이지만 현재는 대구에 거주하면서 퇴직 후를 생각하여 청도 등에 소규모 농지를 보유하고 귀농을 은근히 꿈꾸며 쌀 생산, 과수재배, 경제수목, 조경목(느티나무)조경목(느티나무) 식재 및 관리, 곤충사육(3: 밀웜, 귀뚜라미, 고슴도치, 미니피그, 악어거북 등 파충류 포함) 그리고 6차 산업 분야 등 농업의 다각화 방법을 남모르게 조금씩 연구하며 미미하지만 지속적으로 용감하게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 농업 선도경영체 방문 국외훈련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5박65박 6일간 동행하면서 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자평하고 싶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의식에서 잠시 벗어나 실재 상황을 직시하면서부터 비판과 부정적 시각에서 상당한 변화를 일으킨 것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특히 질서와 청결, 정리정돈, 철두철미한 안전의식, 그리고 일본 농민들의 자조 자립 협동정신이 확실하고 농민들이 정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고 자기와 자신들의 법인보다 지역주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진정한 농혼을 엿보았다.

 

그리고 투명한 일본 농협의 긍정적인 역할이 어려운 농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부여하는 촉매제 역할은 한다고 판단된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1인 가정 증가, 생산량 조절 실패 등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처한 농업의 과제이다.

어제도 전북 고창의 한 농민이 배추와 무값의 폭락에 반발하며 탐스럽게 자란 배추를 트랙터의 칼날에 잘게 부서지게 하여 바닥에 흩날리게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안강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인가 추수할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은 사건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농업이 성장하는 좋은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사진 31:() 한자를 디자인 한 옷)

 

 

 

 〈참고자료〉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2002

이경남 역,, 한국교육출판공사한국 교육출판 공사, 1986

다나구치 지로, 『에도 산책』, 애니북스, 2014

김숙자 외,, 시사일본어사시사 일본어사, 2016

기타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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