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皇帝는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져 놓고 나자, 그때부터는 낮이면 사냥을 즐기고, 밤이면 미녀들과 酒宴으로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 40세였다.
40평생을 战云 속에서만 살아왔으니, 天下를 统一한 지금에 와서는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승상 이사는 황제의 그러한 태도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하루는 이렇게 품한 일이 있었다.
"자고로 聖君은 天下를 끊임없이 순회하시며, 民情을 소상하게 시찰하시와, 모든 民愿을 정치에 반영시켰던 것이옵니다.
九重宫阙 속에 깊이 앉아 계셔서는 어찌 천하의 痼疾을 아실 수 있으오리까.
그러므로 황제께서도 전국을 친히 순회하시며, 민심을 널리 보살피심이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始황제는 그 간언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소.
그렇잖아도 짐은, 짐이 다스리고 있는 모든 국토를 짐의 눈으로 직접 순찰해 보고 싶소이다.
우선 陇西地方으로 떠나 보기로 할 테니, 짐의 행차에 불편이 없도록, 농서까지 새로운 길을 닦아 주도록 하시오."
함양에서 농서까지는 첩첩 태산이 가로막는 천리길이었다.
그 험난한 곳에 皇帝专用道路를 새로 닦아 놓자니 거기에 또 죽어날 사람은 백성들 뿐이었다.
만여 명이 한 달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가며 신작로를 닦고 있었건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와 같은 노고에는 추호도 배려함이 없었다.
이윽고 황제는 지방 순행의 길에 올랐다.
황제가 타고 다니는 <輼辌车>는 창문이 여섯개나 달려 있는 거대한 수레여서 거기에는 시녀들도 10명이나 동승하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앞뒤에는 5천여명의 기마대가 호위하였다.
그리고 온량차가 진행하는 좌우편 길가에는 황제를 전송하고 황제를 영접하는 백성들의 도열이 끝없이 계속되었고, 그들은 저마다 <시황제 폐하 만세.....>의 환호성을 올려야만 했다.
시황제는 그때마다 온량차의 창문을 열고 손을 들어 환호에 응하며, 백성들에게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을 聖者의 聖德이라고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영접하는 백성들은 모두가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어서 개중에는
"우리나라를 빼앗아 간 자가 바로 저자였구나!"
하고, 노골적으로 원한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건만,
시황제는 백성들의 그와 같은 원성을 개의해 본 일 조차 없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에게 나의 거룩한 얼굴을 직접 보여 주는 것 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자비로운 성군이냐.)
진시황 자신은 속으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황제의 순찰에는 大夫(비서실장) 趙高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일행이 농서에 도착하니, 城 안에는 환영 인파가 30만 명이나 운집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둡기만 하였다.
입으로는 환호성을 외치지만 얼굴에는 怨色이 넘쳐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이 새로운 통치자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다.
대부 조고는 그런 눈치를 재빠르게 알아차리고, 황제의 어전에서 젊은 청년 한명을 붙잡고,
"황제께서 지금 이 지방으로 순찰 나오신 것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청년은 황제의 발아래 엎드려 울면서 대답한다.
"聖恩이 망극하옵게도, 황제께서 저희 지방에 临御해 주시와, 저희들 民草는 눈물겨운 감격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조고는 그 대답을 듣고 시황제에게 품한다.
"이 청년의 말을 들어 보시옵소서.
황제폐하의 성덕은 방방곡곡까지 골고루 미쳐서, 만천하가 태평성대를 讴歌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시황제는 그 말을 듣고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고가 미리 꾸며놓은 造作剧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조고는 워낙 꾀가 많은 위인인지라, 황제를 기쁘게 해주려고 문제의 청년을 뇌물로 매수하여, 그렇게 대답하도록 미리 꾸며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비밀을 알 턱이 없는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부터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태평성대를 마음껏 즐기게 하리라."
농서에는 鸡头山 이라는 높은 산이 있다.
황제가 계두산 정상에 올라와 사방을 굽어 살펴보니, 저 멀리 하늘가에 오색이 영롱한 이상한 구름이 몇 조각 떠돌고 있지 않은가.
"저게 무슨 구름이냐.
저 구름이야말로 이상한 구름이로구나."
시황제가 묻자, 조고가 대답한다.
"글쎄올시다. .....
수행원 중에 宋无忌라는占星士가 있사오니, 그를 불러 물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점성사 송무기가 즉시 불려와, 구름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대답한다.
"구름에는 祥云, 彩云, 霁云, 庆云 등의 여러가지 구름이 있사옵니다.
저것은 구름이 아니옵고 단순한 云气일 뿐이옵니다.
저 운기에는 妖气가 감돌고 있사온데, 저 요기를 제압해 버리려면,
황제께서 남방으로 행차하시어, 邹峄山(추역산) 위에 거대한 돌로 황제의 功德碑를 세우셔야만 좋으실 줄로 아뢰옵니다."
시황제는 妖气가 발동했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는 것만은 기쁜 일이기에, 즉석에서
"그러면 지금부터 <추역산>으로 가보자"
하고 명령하였다.
<추역산>은 笼西에서 동남방으로 5백여리나 떨어져 있는 太山이다.
황제 일행이 추역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황제 전용 도로>를 다시 만들어야만 하였다.
이윽고 황제 일행이 추역산으로 행차하다가 도중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그리하여 황제는 길가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황제는 그 느티나무에게 <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왕조때에 세조대왕이 속리산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소나무가지가 가마에 걸리자 가지가 저절로 올라가 길을 비켜주어, 그 나무에게 正二品 벼슬을 내린바 있는데, 그것은 진시황의 故事를 본딴 것이다.)
시황제가 추역산에 도착해보니, 추역산은 정상에서 동서남북으로 2백여리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명산이었다.
시황제는 점성사 송무기를 불러 물어 본다.
"鸡头山 정상에 감돌고 있는 요기를 제압해 버리려면 이 산 꼭대기에 짐의 공덕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것다?"
송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예, 그러하옵니다.
허공에 배회하는 요기를 제압할 수 있는 방도는, 오직 이 산 정상에 성상의 위업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는 길 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면 이 산 정상에 짐의 공덕비를 세우도록 하라.
공덕비를 세우려면 거대할수록 효과가 있을 것이니, 이왕이면 거대하게 세우라."
이리하여 추역산 정상에 시황제의 거대한 공덕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그 비분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황제, 天位에 임하시사,
官制를 새롭게 제정하시고, 法度를 분명히 밝혀 놓으시니, 만천하의 백성들이 한결같이 복종하여, 사상처음으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도다.
이로써 治世의 道를 천지와 더불어 운행하시니,
大义가 昭明하여, 만백성들은 생업이 날로 번성해 갔도다.
황제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신 이후, 날이면 날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주무시지 아니 하시고,
오로지 国利民福에만 전념하시니, 贵贱이 융통하고 상하가 융합하여, 황제의 德化는 천지와 더불어 무궁하도다.
시황제는 거대한 비석에 아로새겨진 자신의 공덕 비문을 읽어보고 적이 만족스러워 했다.
시황제는 함양으로 돌아 오다가, 之罘山에도 들러보았는데, 지부산도 경치가 매우 빼어나므로, 그 산 위에도 똑같은 공덕비를 또 하나 세우게 하였다.
그냥 그 뿐이랴,
琅玡山에 들렸을 때에는 눈앞에 보이는 황해 바다 경치가 너무도 뛰어나, 그곳에 석 달간이나 체류하면서 그곳에도 또 하나의 공덕비를 세우게 하였다.
공덕비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전제 군주들의 공통적인 생리인지도 모른다.
...♡계속 해서 46회로~~~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 조명 (전체) (4) | 2020.05.21 |
|---|---|
| 다시 보는 단심가 와 하여가 원문 (0) | 2020.05.20 |
| ●楚汉志.(44)● (0) | 2020.05.20 |
| 💙박눌 이야기~❣ (0) | 2020.05.19 |
| ●楚汉志.43● (0) | 2020.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