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贲은 주야로 쉴새없이 행군하여 20여일 만에 遼东에 이르자,
斉나라의 수도인 임치성이 눈앞으로 굽어보이는 산중에 진을 치고 적진의 정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한편, 斉나라는秦과 지리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秦王이 아무리 포악한 침략자라도 자기 나라만은 침략해오지 않으리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진이 40만 대군으로 내습해 왔다고하니, 斉王建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군신들을 모아 놓고 말한다.
"진은 침략군을 40만이나 몰고 왔다고 하는데,
10만 밖에 안되는 우리 군사로서는 적을 막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군신들은 한숨만 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진군이 대거 침입해 오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斉王은 한숨을 쉬며 다시 말한다.
"경들은 왜 말이 없소.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게 아니오?"
그러자 백발이 성성한 중신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적이 비록 40만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수천리를 행군하여 왔기 때문에 모두가 지쳐 있을 것이옵니다.
게다가 40만 군사에게 군량을 보급하기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다행히 우리는 성안에 10년 먹을 식량을 비축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수비만 견고하게 하다가 적이 지쳐서 돌아갈 때에 후방에서 공격을 가해 가면, 적을 무난히 섬멸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제왕은 그 의견을 옳게 여겨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요소요소에 군사만 배치해 놓았다.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장기전 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왕분은 화력의 우세를 믿고 임치성을 연달아 공격하였다.
그러나 임치성은 지역적으로 难攻不落의 아성이어서, 외부에서 공격만 해 가지고는 화력만 소모할 뿐이지 도저히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40만 대군의 군량을 보급하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시일을 오래 끌어 가다가는, 적을 섬멸시키기는커녕, 우리가 자멸할 판이 아닌가.)
왕분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제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적을 성밖으로 끌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성안에 笼城중인 적을 무슨 수로 끌어 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왕분은 며칠을 두고 老心焦思 하다가, 마침내 좋은 계교 하나를 궁리해 내었다.
(秦王의 이름으로 가짜 和亲书를 斉王에게 보내보자. 그렇게 하면 적은 반드시 무슨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 같다.)
왕분은 즉시 가짜 화친서를 만들어 가지고, 斉王에게 使臣을 보내 보았다.
그러나 적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사신조차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왕분은 여러모로 생각하다가, 화살 꼬리에 글발을 메어 성안으로 쏘아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大秦帝国의 大王께서 斉王에게 和亲使를 보내 오셨으니, 斉国은 大秦帝国과 화친할 의사가 있거든 화친사를 맞아들여 화친을 도모하라.
거부할 경우에는, 우리는 백만 대군으로 斉나라의 모든 강토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리리라.
斉王建은 화살에 매달려 온 이상과 같은 통고문을 읽고, 곧 중신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워낙 중대한 일이기에 중신들은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왜들 말이 없으시오. 입을 봉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어서들 기탄없이 좋은 의견을 개진해 주시오."
그러자 중신들 중 하나가 출반주하여 아뢴다.
"매우 송구스러운 말씀이 오나, 우리가 화친에 응하지 않으면 백만 대군으로 우리를 송두리째 쳐부수겠다고 선포해 왔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화친에 응해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자 다른 중신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소신도 화친에 응함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하고 찬동하는 뜻을 나타내 보였다.
중론이 그렇게 돌아가자, 백발이 성성한 중신 하나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대왕전하! 적이 화친책을 제의해 온것은, 싸우지 않고 우리 나라를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는 속임수임이 틀림없사옵니다.
새도 죽을 때에는 짹하고 소리를 지른다고 하였사온데, 싸워 보지도 아니하고 어찌 앉아서 망할 것이옵니까.
노신은, 이왕 망할 바에는 끝까지 싸우다가 玉碎하기를 주장 하옵니다."
이리하여 和战两论이 정면으로 대립되었는데, 主战论者는 늙은 중신 한 사람뿐이라서, 그는 화친론자들로부터 亡国者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斉王 자신 역시 나라의 명맥만이라도 유지해 가고 싶은 욕심에서,
"화친을 주장하는 중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중론에 따라 화친책을 채택하기로 하겠소,"
하고 선언 하였다.
그리하여 王贲이 보낸 使臣을 다시 불러들여 물어 본다.
"화친을 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겠소?"
사신이 대답한다.
"화친에 응하시려면, 斉王께서 몸소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咸阳으로 찾아 오셔서 秦王殿下에게 그 뜻을 직접 말씀드리라는 분부이셨습니다."
斉王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秦王을 만나기 위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함양으로 가려고 성을 나왔다.
그러자 성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王贲의 군사가 斉王과 문무백관을 모조리 죽이고,
40만 대군 모두가 임치성 안으로 노도와 같이 몰려 들어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순식간에 斉나라를 점령해 버렸다.
제왕과 중신들은 모든것이 속임수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은 苟安(구안:한때 겨우 편안함)에 연연하여 正道를 걸어가지 않으려다가 결국에는 나라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이었다.
이리하여 斉는 나라를 일으킨 지 7대 1백 11년 만에 亡하고,
秦은 마침내 天下统一의大业을 완수했으니,
그것은 秦王 26년, 기원전 2백 21년의 일이었다.
...♡계속 해서 44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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