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지금 부산행 열차를 타고 있다.

작년 6월 대구 중앙공원 인근에 위치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방문했다. 1층과 2층을 오가며 원통한 우리 할머니들의 통한이 서린 비극의 역사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깨달음을 얻은 지 1년 만에 소녀상을 뵙고자 주한 일본대사관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부산역에서 내려 우측 초량동 방향으로 걸었다. 5분 남짓 걸어가니 도로 건너편에 충장공(忠壯公) 흑의장군 정발(鄭撥)의 동상이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가까이 다가가니 그 위용이 대단하다.

임진왜란 때 부산으로 상륙한 왜군에 대항하여 부산진성을 사수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충신이 아니던가.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게도 지척에 일본대사관이 서 있었다. 나는 복장을 단정하게 점검하고 곧은 자세로 소녀상 앞에 이르렀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서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소녀상은 보도 끝선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의 벽을 보고 다소곳하게 앉아 계셨다. 소녀상 바로 옆에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꿈 많은 청춘, 꽃보다 아름다운 소녀시기에 그 꿈을 펼치기도 전에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가 고통과 비명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들의 회한을 생각하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치미는 통탄을 지체할 길이 없었다.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으로 아주 적절한 위치에 섬세한 표현으로 잘 건립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에서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일본대사관의 벽에 설치한 불법시설물도 아닌 정당한 행위에 대한 도전이고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주장은 필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속담과 일치하는 허언(虛言)일 뿐이리라.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니 소녀상을 지키는 한 분이 있었다.

경남 고성에서 올라와 60대 후반의 나이를 잊어버리고 분기 넘치는 활동을 하시는 소녀상 지킴이 김상금 선생이다.

 

그는 일본 정부가 역사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사죄하지 않고 10억 엔의 화폐로 과거의 책임을 면탈하려는 얄팍한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결단코 소위 위안부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제 위안부 할머니들을 한낱 성매매 범으로 몰아가는 적반하장의 조치로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있을 수 없는 나쁜 행동이라고 일갈했다.

 

때마침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특사단이 친서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여 6월 10일부터 이틀간은 다우치 치즈고 여사가 3천여 명의 고아를 돌보며 일생을 마친 전남 목포의 보육시설 ‘공생원’을 방문하고 그 다음날 우리 정부를 예방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향해 겉으로는 우호국으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연막을 치면서 수시로 망발을 일삼는 행위를 중단하고 피해 당사자인 강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일 합의를 거부하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책임 있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나는 지킴이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는 인사를 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구로 귀향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일본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속죄하고 청산하지 않는지 한없이 의아스럽기만 하다.

 

모름지기 소녀상은 그냥 위안부 소녀상이 절대 아니다. ‘일본군 강제(强制) 위안부 소녀상’이다.

권력이나 위력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속임수 등으로 저항능력이 없는 연약한 소녀를 억지로 끌고 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강제(强制)라는 단어를 반드시 기재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기자단 손 승 호 기자

'기사송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망의 언덕을 넘어...  (0) 2020.03.11
단어형성법 대조, 그 차이점과 공통점 설명  (0) 2020.03.10
퀴어문화축제 현장 탐방  (0) 2020.03.09
혐오표현과 인권  (0) 2020.03.08
경주의 변방  (0) 2020.03.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