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

 

 새마을 봉사단으로 파견 된지  1, 되돌아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충심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큰 꿈을 안고 여기 탄자니아에 왔지만

초기에 너무 낙담하여 중도귀국을 결행하려 다르살람 공항까지 갔다가 회귀했던 나는 확고한 신념에 역행하는 일들을 접하고는 좌절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짐승처럼 아우성쳤다.

 

  생각해보라!

봉사라는 이름으로 이국 만 리 타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도 부족한 시

간인데,

5주간 현지어 배우고, 임지에 오면 일을 해야지 일할 생각은 접고, 집을 구 한다는 명목으로 1개월 출근하지 않고, 귀국 1개월 전에 업무를 마치라고 하는데, 나머지 기간 동안 코이카에 정식 보고한 출장 및 휴가를 손꼽아 보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보라!

여기 봉사를 위해 일하러 왔는지? 아니라면 피크닉을 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출근부까지 거짓으로 기재하는 그들에게 시니어들을 통제하여 확인 서명을 하라고 경상북도에서 지시 할 때는 솔직히 죽고 싶은 심정이었음을 회고한다.

 

  1주에 한 번 출근, 그것도 선교사 집에서 장시간 지내고 밥을 먹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1주에 한 번만 출근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할 때만 출근하고 퇴근해요!”라고  말하는

사진만 잘 찍어 잘 보고하면 믿는... “수고 하시죠...하고 비위만 맞추는...

정녕 이것이 봉사란 말인가?  

 

 

 사정이 이러하니 제대로 사업이 될 리가 없다.

 

비근한 예로 1주에 1회 시행하는 급식활동을 보면서 과거에 내가 받았던 60년대 매일 매일의 정성스런 급식(옥수수 죽, 우유)에 새삼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공법을 모르는 공사로 일시에 블록기초가 붕괴되는 현장을 바라보며 한국인임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프리젠테이션이나 당초 사업계획에 없던 사업을 살그머니 집행하는 공사내역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 할 이야기가 많다.

 

심지어 축구 선수단을 버스와 배를 태워 멀리 잔지바르 섬에 데리고 가서 숙박을 시키고 경기를 시키는 예산낭비를 왜?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새로 오는 봉사단원들은 다시는 이런 행동에서 탈피하여 근면한 생활을 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

 

  나는 부임 이튼 날부터 순서에 준하여 도청과 군청에 인사를 마치고 바로 봉사활동에 돌입했다. 그리고 20110810일 마지막 전 일까지 일한다.

예산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부지기수다.

 

 

  다만 내 생각과 내가 한 모든 일만이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다. 하지만도 진실은 언제인가는 통한다는 강력한 신념으로 운동화를 6 개나 소모할 정도로 노력은 했다.

 

그런 의미에서 후회는 없다.

 

  나는 5432그루의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녹화사업을 집행하였다. 부수적으로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고, 그리고 진입도로를 개설했으며 배수로 작업을 구축하여 완전무결한 농장으로 만들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또한 나머지 시간에는 간호보건 사업을 도와 기초인구조사, 산악 오지를 돌며 방문 진료를 했었고,

삼삼오오 현지인들이 모인 곳이면 찾아가서 새마을 전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시행하는 나네나네 농기계박람회가 국가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지게 20, 물지게 2, 벽돌지게 1, 모래지게 1, 과일운반용 지게 1, 모심기 논을 고르는 서래 1, 타작용 도리깨 1개 등을 제작하여 출품하였고, 자원봉사자로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새마을 세대로서 피부로 체험한 노하우를 모두 전수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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