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의 꽃'이라 별칭하는 꽃이 있다.

이 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옛날, 복숭아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궁궐의 한 곳에 처소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정을 주고 간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의 처소에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우같은 심성을 가진 빈이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일 궁리를 했겠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는가?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나게 되었으나,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다가 돌아가지나 않을까 싶어 담장 주변을 서성이며 기다리기도 하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로 마음을 쏟으며 안타까운 세월을 흘려보냈다.

 

 

 

여름이 막 시작되는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과 영양 실조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버젓하게 치러졌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 소화는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라고 한 그녀의 유언에 따라 담밑에 초라하게 묻혔다.

온갖 새들과 벌 나비들이 꽃을 찾아 모여드는 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는 듯 입을 넓게 벌린 불그스름한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그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 하였다. 가슴에 한을 품은 채 가엾게 죽은 소화의 이름을 따 사람들은 그 꽃을 '능소화'라 부르게 되었다.

 

 

능소화 (凌霄花,

Chinese trumpet creeper) 능소화과의 낙엽활엽덩굴나무로 학명은 Campsis grandiflora이고 금등화(金藤花), 자위(紫葳)로도 불린다.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절에 주로 심어왔으며 민가에서는 관상용으로 심는다. 높이는 10미터 정도이며, 잎은 깃모양 겹잎이다. 여름에 깔때기 모양의 누르스름한 꽃이 피고 열매는 네모진 삭과(蒴果, 익으면 껍질이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로 가을에 익는다.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꽃은 6월말∼9월 말경까지 피어 개화 기간이 길뿐 아니라 꿀도 많아 양봉 농가에 도움이 되는 나무이다.

이 꽃의 특징은 덩굴의 길이가 10m에 달고 줄기 마디마디로 부터 뿌리가 생겨 다른 사물에 잘 달라붙는다.

 

 

능소화 꽃가루가 독성이 있어 눈에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웹에도 그런 글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꽃가루 그 자체 성분은 독성이 전혀 없고
 꽃가루에 갈고리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까 갈고리모양의 수술에 있는 독이 피부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성인과 달리 아기들은 피부가 약해서 경우에 따라 붉은 반점같은 것이 생기는 수가 있다. 꽃을 만지다가 눈을 비비는 것은 해롭다고 한다.'

 

 능소화는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을 것 같다.

 

 

능 소 화 / 김선우 시인

 

꽃 피우기 좋은 계절 앙다물어 보내놓고

당신이나 나나 참 왜 이리 더디 늙는지

독하기로는 당신이 나보다 더한 셈

꽃시절 지날 동안 당신은 깊이 깊이

대궁 속으로만 찾아들어

나팔관 지나고 자궁을 거슬러

당신이 태어나지 않을 운명을 찾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머니를 죽이러

우주 어딘가 시간을 삼킨 구멍을 찾아가다

그러다 염천을 딱! 만난 것인데

이글거리는 밀랍 같은, 끓는 용암 같은,

염천을 능멸하며 붉은 웃음 퍼올려

 

몸 풀고 꽃술 달고 쟁쟁한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능소화야, 능소화야!

모루에 올려진 시뻘건 쇳덩어리

찌챙찌챙 두드려 소리를 깨우고

갓 깨워놓은 소리가 하늘을 태울라

찌챙찌챙 담그고 두드려 울음을 잡는 장이처럼이야

쇠의 호흡 따라 뭉친 소리 풀어주고 

근 소리 묶어주며

깨워놓은 소리 다듬어내는 장이처럼 이야 아니 되어도

능소화야, 능소화야!

염천을 능멸하며 제 몸의 소리 스스로 깨뜨려

고수레― 던져올리는 사잣밥처럼 뭉텅뭉텅 햇살 베어

선연한 주홍빛 속내로만 오는

꽃대궁 속 나팔관을 지나고 자궁을 가로질러

우주 어딘가 시간을 삼킨 구멍을 찾아가는 당신

타는 울음 들어낼 귀가 딱 한순간은

어두운 내게도 오는 법,

덩굴 마디마다 못을 치며

당신이 염천 아래 자꾸만 아기 울음소리로 번져갈 때

나는 듣고 있었던 거라

향기마저 봉인하여 끌어안고 꽃받침 째

툭, 툭, 떨어져 내리는

붉디붉은 징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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