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儒敎的) 법도에
충실했던 그에게
젊은한 여인을 향한 애정 한 편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소개(紹介)
합니다. 
 
퇴계 이황(李滉)은
48歲때 경치 좋은 단양(丹陽) 군수(守)로
부임(赴任) 했는데,
그 고을 관기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을 만난다.  
 
두향은 첫 눈에
대나무처럼 올곧은
퇴계를 연모하게 되었고, 
 
퇴계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공허한 가슴에
두향이 들어왔다.  
 
30년
세월(歲月)을 뛰어넘는
사랑의 교감(交感)이고,
반상(班常)의
신분(身分)을 뛰어넘는
로맨스다.  
 
두향은 詩(시)와 書(서)와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매화(梅花)를 좋아했다.  
 
그녀는 언제나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금:琴)를 타며
퇴계(退溪)의 얼굴에서
미소(微笑)가 떠나지 않게 한 여인(女人)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시작한지 꼭 9개월 만에
퇴계가 경상도 풍기(豐基) 군수로 전근 발령(發令)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한 충격(擊)이었고,  
 
관기(官妓)를 못 데리고
다니는 당시의 규율(規律)때문에 결국(結局)
두향을 두고 퇴계는 혼자 풍기로 떠나야만 했다.  
 
떠나면서 꾸린 짐 속에는
두향이 준 수석2개와
매화 화분(花盆) 한 개가 있었다.  
 
떠나기 전날 밤에
마주 앉아 주고 받았던
한시(漢詩)가 백미다.  
 
"死別己呑聲
(사별기탄성)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生別常惻測
(생별상측측)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네"  
 
그리고
퇴계는 말을 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期約)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詩 (시)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우는데,
어느덧 술도  비워 없어지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離別)은
결국(結局)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퇴계가 70세로
세상(世上)을 하직
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퇴계(退溪)가
부제학(副提學)
공조판조(工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승승장구(乘勝長驅)
하는데~ 
 
아마도
두향은 누가 될까하여
퇴계에 대한
두향의 배려였으리라.  
 
퇴계와 이별(離別) 한 후
두향은 관기(官妓)를 그만두고 퇴계와 즐겨갔던 남한강(南漢江)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平生)을 살았다.  
 
이별 후 이들은 만나지 못하고 서로 서신(書信)만 주고받았다.  
 
다음은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시다.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속에
좋은 말씀을 보면서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
빈 방에 홀로
조용히 앉았는데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
그대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고 한탄 말라  
 
퇴계는 말년(末年)에
안동(安東)에 있는
도산(陶山) 서원(書院)
에서 조용하게 지냈는데  
 
한 때는
병세가 위독해서
자신도 모르게
옷을 입은 채로
설사를 하게 되었다.  
 
그 경황에서도
그는 시중드는 사람에게
불결(不潔)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매화 화분을 딴 방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 매화(梅花)가 바로 두향이 준 것 이여서
각별(各別)히
애지중지(愛之重之)
하였다  
 
명종과 선조 임금이
항상 퇴계에게
큰 벼슬을 내리면서
조정으로 나올 것을
간곡하게 청했지만,
그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고
출세(出世)보다는
학문에 전력했던
군자(君子)였다.  
 
그러나
詩(시)와 음악(音樂)과
한 女人(여인)을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고,  
 
또 달과
山(산)과 江(강)과 梅花(매화)를
유달리 사랑했던
풍류객(風流客)이었다.  
 
기록(記錄)에 의하면
그가 병이 깊어
누워 있던 1570년
섣달 초여드렛날,
제자들이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창문으로는 눈부신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윗목에는
매화 화분 하나가
두세 송이 부푼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데,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이 말을 끝으로 선생은 미소 띤 표정으로 앉아서 이승을 하직 했으니,  
 
이때 선생의 나이 70세 였다.  
 
그날은 맑았는데
오후 다섯시쯤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더니 눈이 한 치
남짓 내렸고
조금 뒤
선생이 숨을 거두시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도 그쳤다.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이어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다.  
 
어느 날 두향이
안동의 퇴계에게
난초를 보냈다.
단양에서 두향과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차린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井花水)로
소중히 다루었다.  
 
어느 날 이 정화수가
빛깔이 변하는 것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 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 까지 4일간을 걸어서 돌아가신 님을 뵈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퇴계 종가(宗家)에서는
두향이 묘(墓)에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다.  
 
퇴계 선생의
파격적인 사랑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애달픈 사랑을
잊지는 않는 다는 것이
사람의 禮(예)인 모양이다. 
 
또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女子(여자)는 존경(尊敬)하는
님에게는 ••• 
 
변치않는
숭고(崇高)한 사랑으로
승화(昇華)시키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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