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의 평등'과 '대표 선출 공정성'이 法治와 民主 본질

대통령의 민주공화국 원리 파괴, 국민의 票로 罰해야

강천석 논설고문

국가 지도자의 발언은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지도자가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애매모호한 발언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도자 자신이 해당 사안(事案)의 성격과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다. '경제와 고용의 질(質)이 개선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반복되는 경제 관련 발언이 그런 사례다. 국가 지도자의 겉말과 속뜻이 다를 경우 또는 지도자가 자신의 발언이 앞뒤 모순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도 알쏭달쏭한 말이 튀어나온다.

1957년 6월 마오쩌둥(毛澤東)은 고위 당직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중국이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중앙집권적이면서도 민주적이고, 기율(紀律)이 엄격하면서도 자유스럽고, 뜻을 하나로 모으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분방(奔放)하게 발휘될 수 있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봄이 찾아왔다. 반동(反動)이란 딱지가 붙어 무수한 사람이 희생된 엄동설한(嚴冬雪寒) 뒤의 봄이라서 지식인들은 특히 환호했다. 주석(主席)의 뜻이 '민주적' '자유스러운' '개성이 분방하게 발휘되는'이란 단어에 있다고 믿은 일부는 공산당의 비(非)민주성을 개혁하라는 데까지 나갔다. 봄은 갑자기 끝났다. 수천 명이 처형되고 수만 명이 감옥에 갇혔다. 이것이 '뭇꽃이 핀다'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결말이다. 이런 결말이 마오(毛)가 의도적으로 덫을 놓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산당 독재에 대한 불만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가 비판의 홍수에 당황했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작년 7월 25일 대통령은 신임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줬다. 조국 민정수석도 배석했다. 좋은 말이 넘쳤다. 잔칫상의 한 접시에는 새 총장에 대한 칭찬과 기대가 담겼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지 않고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게 검찰의 시대적 사명이다. 총장은 적폐(積幣) 수사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이 됐다. 앞으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로 임해 달라. 그래야 검찰 중립을 국민이 체감(體感)하게 된다."

다른 한 접시에는 이런 말을 담았다. "정치검찰의 과거 행태를 청산하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지 말고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검찰 개혁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 논리보다 국민의 눈높이다."

대통령은 본심(本心)을 두 접시 가운데 어느 접시에 담았을까. 검찰총장은 또 대통령 발언을 어떤 의미로 들었을까. 사태 전개를 보면 대통령이 새 검찰총장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말 같지는 않다. 그렇게 보기엔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대응이 너무나 무모하고 황당하다.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이란 말이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검찰 고위 간부와 중간 간부 인사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수사팀 해체다. 청와대가 법원이 발부한 압수 수색 영장의 집행을 거부한 것은 자살골이다. 이젠 어느 국민도 영장 집행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다. 공수처가 발족하면 검찰총장부터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말은 공수처가 딛고 설 명분을 아예 밀어버렸다. 수사본부라고 할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새로 심은 인물은 수사팀 견해에 번번이 딴지를 걸어 '이것이 정치검찰의 얼굴'이라고 보여줬다.

대한민국은 '법의 지배(rule of law)'에서 '법을 앞세운 지배(rule by law)'로 후퇴했다. 민주공화국을 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졌다. 청와대 담장 안에선 무시되는 법을 청와대 밖 국민이 지킬 까닭이 없다. 이젠 '주먹'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게 됐고 법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정권에 국민도 주먹을 내밀 것이다.

민주공화국을 받치는 다른 한 기둥은 지난 연말 선거법을 여당과 준(準)여당이 합세해 일방 처리함으로써 이미 부러졌다. 국민이 법과 정책에 승복(承服)하는 이유는 자신이 뽑은 대표가 법률과 정책을 만들기 때문이다. 선거법은 국민이 대표를 뽑는 방법을 규정한 법이다. 현재 권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바꾸면 국민이 승복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두 사태로 민주공화국의 지붕은 기둥 없이 공중에 떴다. 지붕이 내려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평화적으로 민주공화국을 방어할 수단은 표(票)의 심판밖에 남지 않았다. 국민은 종(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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