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청 바쁩니다. 마음이, 몸이....
일주일에 24학점을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터이지요.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됩니다.
실제로 심적인 부담보다는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에 제약을 받는 것이 힘듭니다.


오늘 낮 아내가, 반그릇 비우는게 익숙한 아내가 언제나 한그릇을 비우는 식당,
성주의 왜관식당에 갔습니다.
거기서 초등학교 동기, 그것도 회장님 가족들과 조우를 하였습니다.
운동 마치고 맛집을 찾아온 초등학교 동기의 가족들과 우연히 만나니
정말 인연이 따로 없다 싶었습니다.
그 친구가 동생, 매부와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낮은 더욱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의 개벽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재학 시절, 안경 쓴 친구가 멋있어 보여
안경을 끼고 싶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시력을 어찌하겠습니까?
일부러 볕 안들어오는 곳에서 엎드려 책을 보기도 하고,
밤중에 전등을 끄고 책을 보기도 하고
눈이 쉴 시간을 주지 않고 하루 종일 책에서 눈을 떼지 않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써 보았지만 1.2~1.5의 시력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의 시력이 40대 중반까지는 잘 갔던 것 같습니다.
매년 신체검사를 받아도 항상 1.2 정도는 유지했으니까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금만 오래 책을 보거나 TV를 보면 눈이 침침해지고
소주병의 술 도수를 표기한 글씨가 흐려져 안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눈에 워낙 자신이 있던터라 안경 안껴도 되냐는 지인들의 얘기에도
덤덤하게 아직은 필요없다고 장담을 했었지요.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 잔 글씨는 찌푸려도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안경을 맞추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결국 지난 주말, 새로 문을 연 동네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었습니다.
안경점 종업원이 "몇년 전에 맞추셔야 했는데 조금 늦으셨네요" 하면서
미간에 세로로 생긴 주름은 시력이 떨어지며 생긴거라더군요.
그 말에 아차 싶으면서도
사실 맞추면서도 얼마나 좋아질까, 내 눈이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닌데 싶었습니다.
하지만 웬걸, 안경을 찾아서 집에 와 껴 보니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불을 환하게 켜고도 엉키거나 퍼진듯이 보이던 글씨가
해질무렵의 자연광 속에서도 선명하게, 그것도 볼드체처럼 굵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다초점렌즈가 아니어서 이 안경을 끼고 조금만 시선을 돌려 멀리 보면
어리어리해지는게 사물이 김 서린 거울 보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지만
책 속의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정녕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내 눈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을 조금만 줄였으면,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만 하였더라면
눈도 덜 나빠졌을테고 미간의 주름도 덜 잡혔을텐데
미망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불편함 속에 살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내 삶 속에서도 이렇게 미망 속에서 놓친 부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력이 조금만 떨어져도 이리 불편하고
안경으로 조금만 더 잘 보여도 이리 기쁘고 세상이 달리 보이는데
시각장애우들은 불편한 세상 속에서 사물과 주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머리 속에 세상을 그려갈까 궁금해지면서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헬렌켈러가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글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자기 생각대로 보고 자기 생각대로 듣는다고 하지요.
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고
내 마음을 잘 열어
나의 생각을 통해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글 전체가 감동적이지만
특히 아래 구절이 머리 속에 오래 머뭅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사흘만 볼 수 있다면(모셔온 글)=======================
(전략)
첫째 날은 아주 바쁠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모아
그들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그들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의 증거를 가슴에 새길겁니다.
또한 아기 얼굴 위에 오래도록 시선을 둔 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을 아직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렵니다. 
(중략)
첫째 날 오후, 나는 오래도록 숲을 산책하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이는 사람들에겐 끊없이 펼쳐져 보이는 자연의 장대한 영광을
단 몇 시간안에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첫째 날 밤, 나는 하루 동안의 기억들로 머릿속이 가득차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겁니다.

앞을 볼 수 있게 된 둘째 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전율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태양이 잠든 대지를 깨우는 장엄한 빛의 장관은 얼마나 경이로울까요.
나는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이라는 시대의 만화경을 들여다보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하루만에 보느냐? 박물관을 찾을 생각입니다.
나는 가끔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가서
거기 전시되어 있는 많은 것을 만져보곤 했습니다.
(중략)
다음 행선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입니다.
(중략)
나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일에 둘째 날을 바치고 싶습니다.
손으로 만져보고 알던 것들을 나는 이제 눈으로 봅니다
(중략)
둘째날 저녁은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습니다.
지금도 나는 온갖 연극을 보러 다니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친구가 손바닥에 써줘야만 알 수 있답니다.
그러니 햄릿의 모습과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극적 인물을 대표하는
뚱보 포스타프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햄릿의 우아한 동작과 폴스타프의 쾌활한 걸음 걸이를 눈으로 쫓을 수 있다면!
그런데 주어진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게 단 한 편 뿐이라면,
이만저만 고민이 아닐 수 없겠군요. 꼭 보고 싶은 연극이 너무 많거든요.
하여 둘째날 밤에는 희곡작품 속의 위대한 인물들이 내 눈에서 잠을 걷어내겠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에 들떠
또다시 새벽을 맞이할 것입니다.
나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겐 매일매일 밝아오는 새벽이
영원히 반복되는 아름다움의 계시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날은 내가 볼 수 있는 셋째 날이자 마지만 날이군요.
비록 상상으로 만들어낸 기적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후회나 아쉬움 따위로 낭비할 시간이 내겐 없답니다.
봐야 할 것이 너무나 많거든요.
첫날은 친구들과 가까운 동물들에게 바쳤습니다.
둘째 날은 인간과 자연의 역사를 공부느라 보냈습니다.
오늘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낼까 합니다.
그러자면 뉴욕만큼 활동이 왕성하고 수많은 상황이 연일 벌어지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뉴욕을 행선지로 정하겠습니다
(중략)
우선 아주 번화한 곳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미소를 보고 행복을 느낍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자부심을 가지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동정심을 느낍니다
(중략)
광명이 주어진 셋째 날이 이제 끝나갑니다.
남은 몇시간동안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날 저녁에
나는 아주 신나는 코미디 공연이 한창인 극장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군요.
그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인 요소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자정이 되어 암흑으로부터의 유예 기간인 사흘이 마침내 끝나면,
나에겐 다시 영원한 밤이 이어지겠지요.
물로 그 짧은 사흘 동안 내가 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볼 순 없습니다.
어둠이 다시 내린 후에야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빠뜨리고 보지 못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멋진 기억들로 가득 차 있어서
빠뜨린 것에 대해 아쉬워할 겨들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후부터는 만지는 것마다 사흘의 기적이 가져온 멋진 기억들이 따라와서
그 물건의 모습을 떠올려줄 테니까요
이상, 내게 주어진 광명의 사흘을 어떻게 보낼지를 계획해보았습니다.
이 짧은 계획은 만약 여러분이 갑자기 장님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세울 프로그램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확신하건대, 여러분이 실제로 그런 운명에 처해진다면
여러분의 눈은 이전엔 결코 본적이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며,
다가올 기나긴 밤을 위해서 그 기억들을 저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사용할 것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겁니다.
당신의 눈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을 어루만지고 끌어안을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제대로 보게 될 것이며,
새로운 미의 세계가 당신 앞에 그 문을 열 것입니다.

나는 장님이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힌트
- 시각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답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눈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감각기관에도 똑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십시오. 내일이면 촉각기 마비될 사람처럼 그렇게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십시오.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보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그렇지만 단언하건데 모든 감각 중에도 시각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축복입니다.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중에서

그녀의 소망은 앞을 보고 소리를 듣는 우리에겐 일상적이고 소박한 것들이다.
우리는 앞을 보고 소리를 을 수 있지만
얼마나 자주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눈을 맞추고 자연의 변화를,
눈부신 꽃들의 향연을, 단풍의 조화로움을 느끼는가?

'사흥을 볼 수 있다면'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내가 그런 대답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
그래서 비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녀였지만
사흘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느낄 것인지 미리 계획을 세웠고
그 글이 바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습니다.(좋은 글)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題江石 (강가의 돌에 적다)  (0) 2020.03.15
아버지 풀 되어  (0) 2020.03.15
봄의 소망-杜甫(두보)  (0) 2020.03.15
쉽지 않은 세상살이  (0) 2020.03.13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쉬킨  (0) 2020.03.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