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통(憤痛)이 터진다.

 

 인권기자 손승호

 

2016 6 4일 오후 3, 인권기자단 일행은 인권기관 방문을 목적으로 중부경찰서 앞에 모였다. 오늘은 오후부터 이슬비가 내려 촉촉하게 대지를 적신다. 가까운 거리에 지붕이 검은색 기와로 된 일본식 목조 가옥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관 입구에서 무심코 천장을 쳐다보고는 놀랐다. 시공된 자재가 불탄 흔적이 역력했다. 아무리 역사보존도 중요하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오고가는 다중이용시설인데 이건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갔다. 그러나 지나친 과민반응인지도 모른다고 자제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안내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몰랐던 사실도 알고 큰 감동과 울분을 품으며 비교적 세세하게 관람(觀覽) 할 수가 있었다. ‘희움의 의미가 희망을 모아 꽃피움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따서 이루어진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운영하는 순수 민간시설임을 알고 그분들의 애정 어린 노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 김순악 할머니의 원예압화 작품

 

우리는 1층 전시실에서 그날의 기억을 비롯한 생생한 역사를 조명한 내용을 보았고, 2층 기획전시실에서 유품과 평화이야기 등을 관찰했다.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여 복도에도 피해자 분들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 액자로 걸려 있어 한 동안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하벙커에 내려가서 할머니의 조형물 손을 잡았을 때는 가슴이 울컥했다. 한편 2층 옥외에는 공연 등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리되고 차양막이 쳐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역사관을 방문한 소감은 멍하다는 느낌이었다. 귀가 길에 지하철 역사에서 안심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내 발걸음은 대곡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귀 기우리면 할머니들의 절규가 들린다. 눈 감으면 나라 잃은 약소국의 딸로 살아 온 그날의 비참한 생활상이 보인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남 것 손 안 대고 남한테 해코지 안 하고 내 몸뚱이로 이제껏 살아왔다 말이다! 그런데도……. 가슴에서 불이 올라온다 말이다. 이런 불이!” 김순악 할머니를 비롯한 증언은 절규(絶叫) 바로 그 자체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의 만행을 견디며 고통을 감수한 숭고한 삶에 저절로 고개가 떨어진다.

 

      

             ▲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대구경북 지역 피해자 할머니는 26명이지만 현재는 5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간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赤裸裸)하게 파헤쳐 그들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범죄를 인정하여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완전한 사과를 받고 합당한 배상을 비롯한 7가지 요구사항이 관철되도록 가일층(加一層) 힘을 모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리라.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 다시는 약소국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리라.

 

가해자는 이웃나라 일본, 그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작태(作態)를 이어가는 한, 우리 국민 모두가 분노를 넘어 불타는 적개심(敵愾心)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여기 역사관에는 일본정부가 일본군인들을 위하여 일본군인, 행정요원, 순사들에 의한 집행으로 강제 연행당한 꽃다운 소녀들의 가련(可憐)한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강제라는 말이 누락된 위안부라는 말은 틀린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된다.

 

      

                       ▲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여성들이 있었던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잊지 못할 역사적 비극을 되새겨 새로운 다짐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진실에 근거하여 용의주도하게 기획된 전시실을 이동하는 동안 켜켜이 쌓인 할머니들의 피맺힌 한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중 일부나마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한 역사관 관계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건물의 이면에는 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라일락 한 그루가 한 많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대변하듯이 그렇게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봄에는 하얀 꽃을 피운다고 했다. 내년에 라일락꽃이 만발하여 흩날리는 봄날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리라 약속하며 분통 터지는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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