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상대방 집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
○ 愛(사랑 애) 及(미칠 급) 屋(집 옥) 烏(까마귀 오) 
 
사랑이 상대방 집 위의 까마귀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한 사람을 사모하여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다. 
 
애급옥상오(愛及屋上烏), 옥상오(屋上烏)라고도 한다.  
 
중국 진한 시기 경학자인 복승(伏勝)의 저서 《상서대전(尙書大傳)》에 나오는 말이다. 복승은 전국을 통일한 시황제가 법가사상에 빠져 다른 제자백가의 문헌을 불사르고 많은 유생들을 구덩이에 산채로 파묻어 죽인 분서갱유를 단행하였을 때 유가(儒家)의 중요한 경전인 《상서(尙書)》, 즉 《서경(書經)》을 벽 속에 숨겼다가 한(漢)나라가 건국된 후 세상에 다시 공개한 사람이다. 《상서》는 원래 백여 편이었는데 대부분 소실되고 복승이 보존한 것은 28편이라고 한다. 이를 조조(晁錯) 등 복승의 제자, 후대 학자들이 당시의 문자[今文]로 다시 썼기에 금문상서(今文尙書)라고 한다. 《상서대전》은 《상서》 경문에 대한 복승의 주석과 경전과 관련한 일문들을 제자들이 편집하여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그 중 〈목서(牧誓)·대전(大戰)〉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고대 중국 상나라 말기 사치스럽고 방탕한 주(紂)임금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백성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이에 기원전 1046년, 서쪽의 희발(姫發)이 부패한 주왕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제후들과 부족들을 규합하여 상나라를 공격하였다. 희발의 세력은 주왕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패배한 주왕은 자살하였다. 그렇게 상나라는 멸망하고 희발이 무왕(武王)에 등극하면서 주(周)왕조가 시작되었다. 포학한 군주를 토벌하는 것은 성공하였지만 상나라의 유민들과 주임금의 옛 신하들을 어떻게 대우할지 고민되었던 무왕이 대신들을 불러 논의하였다.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殷)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먼저 강태공(姜太公)이 말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 지붕 위의 까마귀까지 좋아하기 마련이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담벼락의 모서리까지도 미워지는 법입니다[愛人者兼其屋上之烏,不愛人者及其胥餘.].” 무왕은 강태공의 의견이 탐탁지 않았다. 다음으로 소공(召公)이 말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죽이고 죄가 없는 사람은 살려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왕은 이 또한 옳지 않다고 여겼다. 다음으로 주공(周公)이 말했다. “그들이 예전부터 하던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살던 집에 그대로 살게 하고 원래 하던 일을 그대로 하게 하면 됩니다.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어질고 덕 있는 사람을 많이 기용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왕은 주공의 말에 동의하며 이렇게 넓고 열린 마음으로 유민들을 대해야 천하를 평온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주공의 의견을 채용한 무왕은 주왕의 아들인 무경을 은땅에 머무르게 하고 주왕의 이복형인 미자계(微子啓)에게 상나라의 제사를 계승하도록 하며 송 땅의 제후로 봉하는 등 상나라의 백성을 포용하여 통치를 하였고, 주 왕조 초기 중국 역사에 남을 만한 안정된 시기를 이끌었다.  
 
여기서 강태공의 말은 상나라를 완전히 없애는 멸상(滅尙)의 계책으로 폭군 주왕뿐만 아니라 그 신하들까지 모두 처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하여 애급옥오는 누군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기면 불길한 사물까지도 좋게 보이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열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옛 시구에도 많이 쓰였는데, 당나라 시인 두보의 〈봉증사홍이사장(奉贈射洪李四丈)〉에 “장인의 지붕 위에 까마귀가 있는데, 사람이 좋으니 까마귀도 좋다〔丈人屋上烏, 人好烏亦好.〕.”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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