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해 기슭에 자리 잡은 그 조그만 도시는 지금 봄볕이 한창 따사로울 것이다. 조개껍질 들이 널린 모래강변에선 잔잔한 실물결이 밀려들고 밀려 날 것이고 물새들은 오늘도 이 도시의 거리 우를 낮추 날아 일 것이다.
나는 이 부산 가까운 남해의 한 조그만 도시를 잊을 수 없다. 그 맑은 하늘, 초록빛 바다의 선연한 아름다움도 그 한 가지 모국어이면서도 반쯤 밖에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도 그리고 옛 왜적과의 싸움터였다는 뒷산에 올라 바라보던 쟁반 같은 대보름달도……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이 바닷가에 소도시를 고향으로 가진 한 친근한 벗을 잊지 못한다.
그의 말도, 행동도, 이름도 잊지 못하려니와 더욱이 그의 신념과 지향을 잊지 못한다. 그는 수수하고, 은근하고, 소탈하고 활달한 사람 이였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정열이 있었다. 조국과 제 겨레에 대한 사랑이 강했다.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와 내가 한 직장에 다니였던 때문에 만도 아니다.
그의 집도, 내 집도 북악산 가까이에 있었다. 밤이면 서로 오고 가며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밤이 깊도록 많은 말을 주고 받았다. 고난과 고민에 대하여,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희망과 이상에 대하여, 진리의 운명에 대하여… 오랜 세월이 흘렀으되 그가 한 때 자못 흥분한 속에 자기의 온 정신의 기저에 놓인 오직 한 가지 진리를 받들고 살아 가리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진리를 위해 살겠다고 일백번 맹세하던 그의 어떤 한 친구가 진리의 진로에서 눌러서 거짓 속에서 허덕이게 되자 극도로 분개하여 펄펄 날뛰던 그의 얼굴빛은 오늘도 내 뇌리에 사라질 줄 모른다. 그는 실로 깊은 사색으로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문장이 심이 창발 하였으되 난발하지 아니 하였다.
작품으로 이름 할 문장은 희소하였으나 주옥으로 비길 만 하였고 많이는 기사류를 썼는데 이런 것들은 실로 경종의 역을 놀았다. 이것을 칭양할 때면 겸손한 그는 이것을 달가이 받지 아니 하였다. 그는 스스로 마음속에 무엇을 믿고 기약하는 사람으로서 살아 나가는 사람이었으며 가슴속 깊이 높고 큰 것을 길러가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해방 전 그와 내가 서울에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때인가 우리는 함께 부산에서 소증기선을 타고 하룻밤이 걸려 이 조그만 바닷가의 도시로 간 일이 있었다. 사천인가 진주로 가던 도중이었는데 그는 나를 이끌어 이 도시의 교외에 있는 한 옛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갔다. 그는 여기서 한동안 이 옛 애국자를 추모하고 나서 사당 밖으로 나오며 흥분된 율조로 <한산섬 달 밝은 밤에…>의 시조를 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먼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걸음을 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 서로 헤어진 후로는 나는 그의 글도 읽지 못하였고 그의 불같은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어는 때 나는 남조선 어느 한 출판물에서 뜻밖에도 그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무척 반가웠다. 출판물에서 나는 그가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소도시에서 학교 교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가 자기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가 미제 침략자들에게 아부하는 군사 깡패들의 썩고 썩은 교육정책을 그대로 받들어 나아갈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는 이것을 지극히 증오하고 저주하고 드디어는 반항할 사람임을 알고 있다.
민족의 장래를 걸머지고 나아갈 청소년들을 미제의 더러운 손길에, 더러운 정신에 그냥 내맡길 수 없어 그가 학교에 나선 줄 안다. 그는 그 위치에서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와 슬기로운 민족의 기개에 대하여 가르칠 것이다. 향토에 잠긴 옛 애국자들의 역사의 한 토막, 그 애국자가 원쑤에 대하여 퍼부은 증오의 노래 한 줄거리라도 수집하며 외우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 소년들에게 우리 인민의 철천의 원쑤가 누구인가를, 우리 겨레를 치고 죽이고 하는 미제의 만행에 격분을 느끼게 할 것이며 드디어는 주먹에 불을 쥐게 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확신한다, 그러기를 원한다.
지난 4.19의 의로운 거사가 있었을 때 벗의 힘과 지혜는 조국의 운명 앞에 응분의 의무를 다 하였을 줄로 나는 생각하고 싶다. 벗의 정열로써는 봉기한 군중 대열의 진두에 서서 깃발을 휘둘렀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벗의 지모로써는 이 의거의 한 운전 간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벗의 굳센 정의감과 뜨거운 민족의 피와 맑은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진리에 대한 신념은 이와 달리는 행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행동했을 벗을 눈앞에 그려보니 참으로 기쁨을 금할 수 없다. 벗은 오늘 우리 조국의 놓인 정세를, 북반부의 웅장한 모습도, 미제의 발굽에서 신음하는 남쪽 땅의 사정도 다 잘 알 것이다. 남반부 인민들 앞에 놓인 운명을 잘 알 사람이다.
그는 우리 민족이 이에서 더는 미제 침략자와 군사 깡패들의 행패를 방임할 수 없다는 것과, 그 만행을 묵인 할 수 없다는 것과, 그 죄악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부산과 목포로, 군산과 인천으로 미제 침략자들의 배 뿐만 아니라 강도 왜놈들의 배들도 들어오리라. 그의 고향 소도시로도 원쑤들은 기어 들리라. 내 벗의 눈은 크게 부릅떠 질 것이고 그 큰 주먹은 굳게 쥐어질 것이다. 그는 부산으로 목포로 달려 갈지도 모른다. 오래 동안 멈춰졌던 제 갈 길에 그는 결연히 뛰여 오른지- 이미 오랜인지 모른다. 벗은 그 어느 암굴에서 살인 백정 박정희 도당을 쓸어 눕히라는 삐라를 찍고 있을지도, 불타는 글을 쓰고 있을지도, 그 어느 마을에서 거리에서 인민들과 함께 불구대천의 원쑤 미국놈들에게 한 모금의 물도 주지 말라고 웨칠지도 모른다. 그 어느 정거정 거리에서, 그 어느 항구에서 기어드는 왜놈들 앞에 우리 민족의 백대지 원쑤 왜놈들이 우리의 거룩한 국토를 또다시 더럽히게 하지 말라는 프랑카드를 깃발같이 들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벗은 그 어느 곳에서나 민족 천추의 원한을 대변하며 민족 만년의 운명을 개척하는 고난의 길에 서서 나아 갈 것이다. 벗은 투철하고 건장한 필력이 있으면서도 그 붓을 놓은지 그 몇몇해… 나는 벗의 붓의 광채를 보지 못하고 있다.
더욱 높이 또 멀리 날기 위해 날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벗의 침묵을 지켜보고 있다. 그 침묵이 크게, 장하게, 그리고 눈부시게 폭발하기를 간절히 대망한다. 물론 침묵은 항거의 한 징표일 수도 있다. 나의 벗의 침묵이 이런 침묵일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인제는 침묵이 폭발 되여야 할 때가 이르렀다. 때가 되어서는 오히려 깨처날 줄 모르는 침묵을 우리는 경멸하고 무시한다. 벼린 칼도 쓰지 않으면 녹이 쓰는 법이다. 벗의 침묵이 이렇게 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벗!나는 벗이 쓴 글도 기억하고 있으며 기사체의 글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벗은 글에서 움직이는 인간을, 용감한 인간을, 투쟁하는 인간을 얼마나 그리기 좋아 했던가! 그 어느 때인가 퍽이나 길게 쓴 기사를 나에게 읽어 주지 않았던가! 벗은 그런 기사가 발표된 후 비겁한 주위 사람들에게서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러면서도 벗은 거기에는 하나도 겁나하지 않았고 자기의 글에 자기의 신념과 사상을 밝히곤 하지 않았던가!
벗! 침묵을 깨치라 눈부신 광채를 뿌릴 벗의 붓이 미제와 군사 깡패들에게 내리치는 수백, 수천의 비수의 선봉이기를 나는 바란다. 조국은 이것을 바라고 또 명한다. 조국이 명하는 길에서 충실한 사람인 나의 벗이 그 붓으로 인민들로 하여금 이들을 쓸어버리게 하는데 도움을 줄 글을 써야 한다.
남녁땅에서 모든 붓들이 창검의 숲이 되어 미제와 박정희 군사 깡패를 몰아내고 쓸어 눕히기 위해 일떠 설 때는 왔다. 그 창검의 숲속에 남해의 나의 벗의 예리한 창검도, 눈부시게 빛날 것을 나는 믿고 바란다.<출전:『문학신문』1962. 3.23>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일지라도  (0) 2020.03.27
산다는 것  (0) 2020.03.27
내가 좋은 사람이면 모두가 좋은 사람..  (0) 2020.03.25
까만 밤 새들은 어디로 갔는지(오승영)  (0) 2020.03.22
솔섬에서  (0) 2020.03.22

+ Recent posts